러버란, 트랜스젠더를 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좋아하는 사람이 트랜스젠더에요’ 와
‘트랜스젠더를 좋아해요’는 전혀 다른 범주인데, 러버는 후자에 속하는 것이다. 왜? 냐고 묻는다면 일단 내가 러버가 아니기 때문에 다 이해는 할 수 없다. 일종의 페티시 같은게 아닐까 싶다.
러버는 주로 거의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이다. 본인들을 확고하게 남성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본인들을 확고하게 여성을 좋아하는 이성애자라고 여기고 있다. 그들은 트랜스젠더여성에게 성적으로 끌림을 느끼는데 특히 성기수술을 하지 않은, 페니스가 있는 여성을 오히려 더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을 좋아하는게 아니므로 게이는 아닌거고, 본인들도 스스로를 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러버들도 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보편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보통의 남성들과, 자신을 러버라고 ‘정체화’한 남성들은 트랜스젠더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남성집단에서 트랜스젠더의 지위는 게이남성과 거의 같다. 이성애자 남자들이 게이에 대해서 ‘더럽다’ 라고 보는 시선이 트랜스여성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트랜스여성과 게이남성을 잘 구분하지 않기도 하고, 구분한다 하더라도 상당수의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자들은 트랜스여성을 여성으로 취급하지 않는다.예컨대 트랜스젠더여성 방송인에 대해 조롱과 혐오를 일삼는건 비율적으로 봤을 때 여성보다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물론 여성 중에서도 스스로를 ‘래디컬 페미니스트’ 라고 참칭하는 이들은 누구보다 트랜스젠더혐오에 앞장서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반면 러버들은 트랜스여성을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성에 대한 성관념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트랜스젠더라는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혐오자들 보다는 훨씬 낫다. 가벼운 성적 호기심일수도 있고, 좀 더 진지한(?) 취향일수도 있는데 안전함만 보장된다면 내 입장에서는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보단 차라리 성적 대상화되는게 나은 것이다.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면 이런 쪽지와 댓글이 많이 온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러버들을 실제로 만날 일도 없고 그들에 대해 몰라도 사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트랜스젠더(중에서도 특히 트랜스여성)들은 좋든 싫든 러버에 대해 최소한 한 번 이상은 들어봤거나 접할 수 밖에 없다. 러버들이 트랜스젠더를 만나기 위해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찾아오기도 하고, 혹은 아예 그런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커뮤니티가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통해서 러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트랜스젠더를 성적으로 좋아한다니 무섭고 찝찝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남자한테 예쁘다는 말을 듣고싶고 여자로서 대우받고 여자로서 남자에게 성적인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었다. 근데 일반적인 남자들에게서는 그런걸 얻어내기가 쉽지 않으니까, 러버를 만나면 나의 그런 결핍 내지 욕망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좀 무섭기도 했지만 러버를 만나보기로 했다.
러버와의 만남을 처음 시도했을 때는 호르몬 시작한지는 반 년 정도에, 머리는 약간 애매한 단발길이였을 때였다. 그러니까 이러나 저러나 충분히 여성스러운 외형을 갖추지 못했을 때였는데, 이런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던 러버가 있었다. 나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먼 거리에서 지하철 타고 굳이 내 동네까지 오겠다고 했다. 진짜 올까 싶었는데 진짜로 약속장소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숨어서 쓱 봤는데 덩치도 크고 인상도 험악한 남자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 내가 힘으로 안될 것 같았다. 그대로 도망칠까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이 기회를 놓치면 아쉬울거 같아서 만나러 갔다. 그 때는 날씨가 몹시 춥던 한겨울이었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춥죠..?” 라며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뒤, 근처에 있는 호텔에 들어갔다. 호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남자가 내 손을 슬쩍 잡았다. ‘아, 러버란 이런거구나! 나랑 섹스하고 싶어서 온게 맞구나!’ 라는게 실감이 되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시작하였다. 살아오면서 남성인 사람과 그렇게 본격적인 스킨십을 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처음에 겁먹었던 것과는 달리 딱히 강압적이거나 무서울만한건 없었다. 다만 이 사람도 무언가 기대를 하고 나왔을텐데, 내가 충분히 여성스럽지 못하고 예쁘지 못해서 실망한건 아닐까하는 걱정은 들었다. 직접 물어보기도 하였는데 전혀 실망하거나 그런건 없다고 하였다.
아마 내가 손으로 사정을 시켜줬던가? 그 남자는 사정을 하고나니 곧바로 쿨하게 옷을 챙겨입고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러버와의 첫 만남은 무사히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