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수 Dec 04. 2023

<나의 트랜지션 일기>36장: 마이 '러버' 스토리 2

제가 여자로 보여요?

[36장: 마이 '러버' 스토리(2)]



생각보다 러버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꽤 많았다. 앞에서 잠깐 소개했던 트랜스 커뮤니티 용어(CD,쉬멜,완트)는 러버들이 자기 취향에 맞는 트랜스젠더를 찾으려고 할 때도 쓰인다. 트랜스젠더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성적인 호기심만을 가지고 다가오는 러버들이 좋게 보일리는 없다. 나도 겪어보니 꽤나 당혹스러웠다.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mtf인데 친구를 구한다’ 라고만 글을 올려도 수많은 러버들에게서 만나자는 쪽지가 온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서로 알아가고 친해지는 일말의 단계도 없이, 그저 나이/키/몸무게 등의 숫자정보만 교환하며 만남여부를 결정한다. 진지하게 친구나 연인으로 지내려는 목적이 아니라 하룻밤 성관계가 목적이니까 그런 것 같다. 대체로 작고 여린 체구와 긴 머리카락, 치마와 스타킹 등 사회적으로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외형을 선호한다.


나한테 쪽지를 보내오는 러버들과 대화를 좀 해봤는데 아무리 하룻밤 성관계가 목적이라고 해도 처음부터 너무 무례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안녕하세요” 인사도 없이 바로 “님 제가 따먹어주고싶네요” 라고 빤스부터 내리는 수준이 많았다. 이 사람들도 사회에서는 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긴 할텐데..아무리 섹스를 좋아한다고 해도 사회의 일반적인 시스여성들한테는 이렇게까지 함부로 하지는 않을거 같았다. 이것 또한 그들이 트랜스젠더를 뭔가 열등하거나 함부로 해도 되는 만만한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 취급을 많이 받다보면 트랜스젠더 스스로도 자신을 귀중하게 여기기가 힘들다.     

나는 성관계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거나 쾌감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하물며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 처음보는 사람과 섹스를 하는건 나에게 별로 내키는 일은 아니다.       


다만 남자들로부터 여성으로서 대우받고 여성으로서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나의 그런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러버들을 찾아나섰다. 온라인으로 대화해보고 그나마 최소한의 상식을 갖춘, 최소한 나에게 폭력을 저지를 것 같지는 않은 사람들을 추려서 몇 명 만나보았다. 그들을 만나 키스하고, 애무하고, 손이나 입으로 그들을 사정시켜 주었다. 내가 남자를 성적으로 흥분시킨다는 것, 남자가 나로 인해 발기하고 사정한다는 것이 나에게 만족감과 쾌감을 주었다. 남성은 주로 여성을 욕망하면서 남성성을 형성하는 데 반해, 여성은 남성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스스로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 되어가면서 여성성을 형성한다는 것을 직접 겪게된 셈이다. 그때는 남자들이 얼마나 나를 성적으로 욕망하느냐가 곧 나의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처럼 여겼다.     


또한 러버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분명한 성별위계를 느꼈다. 러버들은 그저 트랜스젠더를 욕망할 뿐, 자기자신의 매력자본을 가꾸거나 어떠한 자기검열도 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너를 이만큼이나 좋아하고 이만큼이나 너랑 섹스를 하고 싶다를 어필하는게 전부다. 반면 나는 여성스러워 보이기 위해, 상대가 나를 여성이라고 느끼게 만들기 위해 외모와 옷차림을 신경쓰고, 화장을 하고 꾸미는 등의 여성성 수행을 해야 했다. 그들은 대체로 나를 마음에 들어하긴 했지만 나는 얼굴과 체형, 옷차림, 신체부위 곳곳이 얼마나 ‘진짜 여자 같은지’를 품평당하는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성관계를 할 때도 나의 욕망이 아닌 상대 남성의 욕망이 중심이 되었다. 어디를 어떻게 애무해달라 라던지, 스타킹을 신어달라 라던지 같은 성적 요구들을 받았고, 나는 그들과의 섹스에서 내 자신이 소외됨을 느꼈다. 그들 앞에서 나는 그저 ‘진짜 여자’ 행세를 하는 마네킹에 불과한 것 같았다.      


단순한 위계의 차이를 넘어서 불쾌하고 무서웠던 순간도 있었다. 성관계를 요구받는게 싫어서 언제는 성적인거 없이 그냥 친구로 지낼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쪽지가 와서 대화를 해보니 괜찮은거 같아서 직접 만나게 되었다. 분명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대화가 오갔고, 나는 정말 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줄 알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를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차에 태우고 나자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였다.

나를 야릇한 시선으로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갑자기 나보고 “뽀뽀해도 돼요?” 라고 물어보는게 아닌가. 그전까지는 대화에서 전혀 성적 텐션이 없었고 나도 전혀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자 그 사람은 내 동의없이 내 볼에 입술을 접촉하고는, “여자네~” 하고 나직하게 읖조렸다. 자동차 라는 밀실된 공간에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여 나에게 성적인 접근을 하는 그 상황도 굉장히 공포스러웠고, 여자네 어쩌네 하면서 나를 품평하는 말은 너무나도 불쾌했다. 내가 여자로 보이냐고 묻자 그 사람은 “당연하죠” 라고 하면서 나보고 밤을 같이 보내자고 하였다. 그렇게 여자로 대우받고 싶어했던 나였지만 그때만큼은 그 사람이 나를 ‘여자’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이대로 나를 집에 보내주지 않고 나를 강간할까봐 두려웠다. 나는 최대한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애쓰며, 오늘은 피곤하니 다음에 또 만나자고 완곡하게 거절하였고 그는 다행히도 별 말없이 나를 집에 보내주었다. 집에 도착하고 나니 안도감과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고민하다가 카톡으로 불편한 심정을 남기고 연락을 끊었다.      


러버들과의 대화. 보통은 만나기 전부터 노골적으로 성적인 요구를 하는데(왼쪽), 그 목적이 이뤄지지 못할거라고 판단되면 이내 곧 시들해진다.(오른쪽)


‘성적대상화조차 되지 못하는’ 위치에서 박탈감을 느꼈던 나였지만 원치않게 대상으로만 취급되고 성적 주체성을 침범당하는 경험은 역시나 유쾌한건 아니었다. 시스젠더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게 이런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건 무엇일까. 나를 기습추행하던 그 남자 앞에서 ‘여성’ 이었던 나의 위치와 내가 느꼈던 공포에 대해 오랫동안 곱씹으며 괴로워했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트랜지션 일기>35장: 마이 '러버' 스토리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