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대상이 될 권리
이런 얘기들을 했지만 러버인 사람들이 꼭 나쁘기만한건 아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트랜스젠더를 인격체가 아닌 성적인 대상으로만 보고, 트랜스젠더와 성관계를 하기 위해서 무례하고 불쾌하게 접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건 사실이다. 그러나 ‘도구’ 로서 좋아하는 것도 일단 호의는 호의다.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부정하고, 정신병이라고 조롱하고, 트랜스젠더임이 밝혀지면 온갖 쌍욕과 조롱과 혐오발언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태반인 이 사회에서, 러버들은 트랜스젠더를 성적인 대상으로만 여기는거라고 해도 어쨌든 필요로 한다는거니까.
어떤 트랜스여성 방송인이 여러 남자들과 한 명씩 소개팅을 하는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남자들은 모두 처음에는 수려한 외모와 차분한 말씨를 가진 그 분에게 여성으로서 금방 호감을 느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무르익자 작은 쪽지 하나가 남자들에게 건네지고, 이에 남자들은 매우 당혹스러워하며 “전혀 그런 분인줄 몰랐다”, “호감이 있었는데 없어졌다”는 등의 말을 남기고는 소개팅이 전부 종료되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기획을 한건지,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매우 불쾌한 영상이었다. ‘호감을 가지던 여성이 트랜스젠더인걸 알게되면 남자들은 어떤 반응일까?’ 하는 식으로 트랜스젠더를 구경거리와 가십거리로 취급하는 꼴이지 않나. 기획 자체도 불편하지만 거기 참가한 남자들의 무례함과 찌질함에도 화가 났다. 트랜스젠더도 같은 사람이고, 트랜스여성도 여성인데(심지어 말하기 전엔 몰랐으면서) 자신이 가진 무지와 편견에 휘둘려 그런식으로 말을 내뱉다니.
이거는 미디어에서 비춰주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영향이 큰 거 같은데,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얘기하도록 하겠다.
나 역시도 34장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남자들로부터 거부당하는 경험이 많았다. 솔직히 말해서 내 기준에서는 다들 형편없고 별 볼일 없는 남자들이라 거부를 해도 내가 하고 싶었는데 그 거부할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보통의 다른 여자들처럼 ‘이러저러한 남자들이 대시했는데 다 별로여서 깠다, 어디 좋은 남자 없나?’가 나는 안 되는 것이다. 형편없고 별 볼일 없는 남자들이 여자들 앞에서 쩔쩔매는 것을 볼 때 한심하면서도 동시에 박탈감도 들었다. 아무리 연애시장에서 도태된 남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정의하는 ‘여자’라는 기준은 있는거니까.
그리고 외모가 뛰어난 트랜스여성에 대해 주제넘게 품평질하는 남자들도 종종 있는데 그건 그거대로 또 화가났다. 볼품없는 당신들에게 품평당하려고 트랜지션하는게 아니라고.
아무튼 그래서 나는 러버들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내가 소위 말하는 ‘완트’ 라고 나를 소개하면 “힘드셨을텐데 그동안 고생많으셨겠어요.” 라고 하거나 “어려운 결정일텐데 용기를 갖고 그렇게 한다는게 멋져요” 라고 해주는 러버들도 종종 있었다. 일반 사회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말이기 때문에 그게 고맙게 느껴졌다. 또 어떤 러버는 내 가방에 달려있는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뱃지를 보고 “응원한다” 라고 해준적도 있었다.
러버들도 보통 남자들처럼 여성스럽고 예쁘장한 사람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느끼기엔 보통 남자들보다는 그래도 그 기준이 조금은 더 관대한 편인 것 같다. 어차피 트랜스젠더라는걸 알고서 만나러 나오는거니까, 완벽히 여성으로 보이지 않아도, 조금은 ‘남성적’인 부분이 있어도 성적인 끌림을 느끼는 데 있어서 크게 지장을 받지는 않으니까. 본질적으로는 나는 러버들이 ‘사회적 여성성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끌리는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성성을 수행하고 있으니 여성이다’ 라는 관점은 꽤나 진보적이고 퀴어 프렌들리하지 않은가? 조금 직관적으로 표현하자면 ‘편견없는 성욕’ 이랄까.
생물학적인 염색체 운운하며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러버들이 백만배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신을 러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단순히 섹스하는걸 넘어서 젠더,섹슈얼리티,성적 지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자신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인권운동에 함께 연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너무 이상적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