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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Apr 23. 2024

<나의 트랜지션 일기> 57장: 언제부터였어요?

글쎄요.

[57장: 언제부터였어요?]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많이 받는 질문중 하나가 바로 “언제부터였어요?” 이다. 이 질문은 단순히 정체화 시기만을 묻는게 아니라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된 사연을 전반적으로 듣고싶어하는 마음인 경우가 많다. 남자든 여자든 보통은 주어진대로 사는데, 굳이 힘들게 고생고생해서 그걸 부정하고 바꾸려고 하는 모습이 보통 사람들 입장에서는 신기해보일 것이다.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궁금해하는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건 아니지만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마음의 부담이 느껴진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때부터요’ 뭐 이런식으로 단순명료하게 답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 ‘내가 어떠어떠한 사람인데, 이전에는 어땠다가 어느 시기에 어떤 일을 겪고 어떻게 심경변화가 일어나 어떠어떠한 시간을 보내며 어떻게 얼만큼 고민하고 어떤 마음으로 결심하게 되었다’ 하는식으로 구구절절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야 설명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설명해도 충분하진 못하다. 예를 들어 ‘당신은 10년 전의 당신과 같은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입니까? 같다면 무엇이 같고 다르다면 무엇이 다른가요?’ 라는 질문이라던가, ‘당신이 왜 지금 당신인지 설명해보세요’ 라는 요구를 받는다고 생각해보라. 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궁금해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건 아니다. 서로 다른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려는 노력은 필수적이다. 다만 그런 질문은 당사자들이 일상적으로 무수히 받고있다는 점, 뉘앙스에 따라 ‘당신의 존재를 내게 납득시켜봐라’는 고압적이고 무례한 태도로 비칠수도 있으니 조심해주었으면 좋겠다.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질문을 해보겠다. 나는 앞서 어린 시절부터의 나의 이야기를 다 적었다.

자, 나는 언제부터 여자였을까요?


1. 태어났을 때부터

2. 스스로를 여자라고 정체화한 이후부터

3. 의료적 조치(호르몬치료,수술)를 받은 이후부터  

4. 법적 성별정정을 한 이후부터

5. 여자 아님


5번을 선택하신 분들은 내가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으니 조용히 돌아가주시면 된다.

모든게 증명되고 국가에서 법적으로 인정하면 본인도 인정해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4번을 골랐을 것이다. 실제로 “법적으로 여성이 되기 전까지는 여자화장실 쓰면 안 되는거 아니에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화장실을 신분증 내고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무슨. 당사자는 하루하루가 절박한데 성별정정 전까지 자신을 계속 부정하라는건 너무나 가혹하고 폭력적이다.

그리고 법적 성별정정은 가정법원 판사의 권한에 달려있는데 그 판사 개인의 말 한 마디로 사람의 성별이 좌지우지된다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그렇다면 3번은 어떨까. 이것도 사실 좀 애매하다. 성별정체성은 성기에 달려있지 않기 때문에 수술 여부와는 무관하다. 수술을 해서 여자가 된게 아니라 여자로서의 나의 성별을 확립시키기 위해 수술을 한 것이니까. 그럼 수술이 아니라 호르몬치료를 기준으로 하면? 글쎄, 호르몬치료는 성적으로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긴 하지만, 성기나 염색체를 기준으로 사람의 성별을 두 개로 나눌 수 없는 것처럼, 호르몬의 양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호르몬으로 나눌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51장 참고). ‘호르몬치료 n일차부터 여자다!’ ‘에스트로겐 수치 n이상부터 여자다!’ 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럼 이제 남은건 1번과 2번이다. 1번의 경우, 실제로 트랜스여성이나 트랜스남성 분들 중에는 ‘나는 태어날 때부터 여자였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남자였다’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 보통은 트랜스젠더라는 말의 의미를 몰랐을 아동기 시절부터 남들이랑 다르다는걸 느끼니까. 근데 나는 어떨까? 내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나는 어렸을때는 나를 여자라고 느끼지 않았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옛날의 나를 만나 묻는다면? 여자애같다고 놀림받던 초등학교 시절의 나, 남자애들과 잘 어울리고 싶어서 억지로 강한 척하던 중고생 시절의 나, 어리바리한 고문관이라고 온갖 욕을 먹던 군대 시절의 나에게 성별을 물어본다면 단연코 남자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회에서 남자로 자라왔고 사람들이 남자로 여겨왔는데 스스로도 남자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면 그 당시엔 (아직은)남자였지 않았을까? 따라서 나는 나를 ‘여자로 태어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자로 태어났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저 남자로 지정받았을뿐이라고 답하겠다. 그럼 1번도 아닌 것이니 정답은 2번인걸까?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사람은 ‘성별은 남이 정해주는게 아니라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남성이라고 지정받았어도)자신이 여성이라고 정체화했으면 여성이다’ 라고 말한다. 나도 물론 동의하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힘을 빼앗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다만, 두 가지 측면에서의 고민이 있다.


첫째, 내가 여성이라고 정체화한다고 해서 그 순간 바로 내 모든 것 – 외모,내면,살아온 경험 등 – 이 사회에서 ‘여성’이라고 일컫고 있는 것과 일치하게끔 바뀌는가? ‘저 오늘부터 트랜스젠더여성으로 살아가게 됐어요’ 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시스젠더여성들과 똑같이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는 말이다. 예컨대 49년을 ‘남성’으로 살다가 50살이 되어서 여성으로 정체화한 사람과, 영유아기 시절부터 여성으로 지정받아 평생 여성으로 살아온 사람의 ‘여성’으로서의 경험치의 차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mtf 트랜스젠더는 여성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신이 여성이라는걸 아느냐, 여성의 삶을 모르는데 왜 여성이라고 인정해줘야 하느냐’ 라는 논리다.   그런데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트랜스여성이 일반여성의 삶을 잘 모를 수 있다는 ‘진단’은 그들과 비슷하지만 – 무엇을 ‘일반여성의 삶’으로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는 차치하고 – 이에 대한 ‘처방’이 그들과 다르다. 트랜스여성이 일반(시스)여성들의 삶을 잘 모르기 때문에 여성의 자격이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여성임에도 여성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기에 ‘평범한 여성의 삶’을 모를 수밖에 없는, 그렇기에 취약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이 구조를 문제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태어났을 때 남성으로 지정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이 경험하는 일을 경험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문제 말이다. ‘트랜스여성들은 (시스)여성들이 겪는 성차별이나 성폭력을 안 겪어봐서 모르지 않느냐’라고 하지만, 여성으로서 성차별이나 성폭력을 겪으려면 우선 ‘여성’임을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트랜스여성들도 트랜스혐오에 더해 성차별과 성폭력을 많이 겪지만 이건 다음에 자세히 다루겠다.)

그러니까 트랜스여성이라고 정체화한 사람이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으려면 이 사회 구성원들이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싶다.      


둘째, ‘스스로를 여자라고 정체화한 시기’ 자체가 애매하다. ‘나는 2020년 7월 9일 10시부터 여자라고 정체화했다’ 라는 식으로 일시를 특정할 수가 없다. 특정한다고 한들, 그럼 7월 8일까지는 남자였던건가? 그렇게 계산(?)하는 것도 이상하다. 조금 철학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우리는 매일매일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 않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와는 또 다를 것이다. 매일매일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지식과 경험을 쌓고, 그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거나 성장하고 있다. 같은 갈림길에 놓여있어도 5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다른 선택을 하는 내가 또 다시 또 다른 내가 되고 그런거 아닐까. 그렇게 다양한 가능성과 연속성을 가진 우리이니만큼 성별정체성도 그렇게 딱 before와 after로 잘라 나누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자. “언제부터였어요?” 라는 질문이 언젠가는 무의미해졌으면 좋겠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성별대로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성별정체성 확립에 대해 딱히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굳이 ‘태어날 때부터 이랬다’라고 강조하며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이 놓여진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을 찾아갈 수 있는 사회, 나는 그런 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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