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젠은 동네북
“트랜스젠더가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는가?” 하고 물어봤을 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트랜스젠더가 겪는 차별이나 억압을 모르거나, 혹은 알고 있다고 해도 ‘본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인데 왜 그걸 우리가 배려해줘야 되느냐’ 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선택’ 이라..우선은 이 부분에 대해서 얘기해보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성별을 ‘바꾸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살고자 하는 것 뿐인데 사회에서 봤을때는 성별을 바꾸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단순히 바꾸기로 ‘선택’ 할 수 있는 문제라면 뭐하러 이 모든 위험과 고생을 감수하겠나.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굳이 선택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트랜스젠더는 살기로 선택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저 내 삶을 살기로 한 선택에 대한 대가로 그 모든 차별과 억압과 혐오를 감당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트랜스젠더 혐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혐오는 단순히 감정적으로 미워함(hate)뿐만 아니라 여성혐오(misogyny)처럼 소수자를 향한 구조적인 배제와 억압을 포함한다. 사실 이 챕터야말로 내가 세상에 가장 하고싶은 이야기다. 당사자로서 피부로 겪는게 너무나도 많으니까.
트랜스젠더 혐오는 성별에 따라 그 양상의 차이가 있는데, 각각 나눠서 적어보겠다.
1. 시스남성집단의 트랜스여성혐오
다들 알다시피 시스(헤테로)남성 집단이 여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가장 극심하다. 트랜스여성에 대해서는 어떨까? 그들은 트랜스여성을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트랜스여성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들에게 트랜스여성은 여장남자에 불과하다. 이 여장남자는 남자로 태어난 주제에 여자행세를 하는 역겹고 혐오스러운 존재이다. 주류 남성성을 수행하지 않는 지정성별남성에 대한 혐오라는 점에서 게이혐오와 궤를 같이한다. 또한 여성성을 수행하는 사람에 대한 혐오라는 점에서 여성혐오이기도 하다. 예를들어 트랜스여성 방송인에 대해 ‘저렇게 뚱뚱한게 무슨 여자냐, 똥꼬충 역겹다’는 식의 악플들이 달리는데 이건 게이혐오+여성혐오인 것이다. 트랜스여성은 이렇게 교차적인 억압을 받는 위치에 놓여있다.
일반적인 여성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는 남자들이 트랜스여성을 여성으로서, 동등한 사람으로서 대하는건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다. 간혹가다 ‘트랜스젠더도 존중한다’고 하는 남자들도 있지만 사실 그건 자기랑 상관없다고 여기는 데서 나오는 무관심에 가깝다. 남자들이 여성이나 페미니즘에 대해서 욕을 하는건 여자들이 자기들 뜻대로 – 이를테면 연애나 섹스 – 해줬으면 좋겠는 마음 때문인데, 트랜스여성은 여성이라고 여기지 않으므로 굳이 욕할 필요도 못 느끼는 것이다.
2. 시스여성집단의 트랜스혐오
시스여성집단은 어떨까? 남성집단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나아보일 수는 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극심한 사회이다 보니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여성,노동자,아동,노인,장애인,동성애자 등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이 상대적으로 높긴하다. 단, 트랜스여성에 대해서는 예외다. 시스여성들에게 있어서 트랜스여성은 여성도 아니고 소수자도 아니다. 그저 우스꽝스럽게 과도한 여성성을 수행하는 여장남자일 뿐이다. 그들이 떠올리는 ‘여장남자’는 주로 젠더바 같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트랜스여성들이다. 주변에서 직접 접할 일은 많지 않으니 아마 미디어의 영향이 클 것이다. 시스여성들에게 그런 트랜스여성은 여성이 아니라 잘 쳐줘봐야 제3의 성일 뿐이다.
그러한 시스여성들의 트랜스여성에 대한 인식은, 2016년 이후에 아주 큰 전환을 맞이했다.
<모두에게 완자가> 라는 레즈비언 일상 웹툰이 있다. 주제 특성상 독자들은 대부분 시스여성들인데, 트랜스젠더 편에 대한 댓글이 2016년 전후로 크게 차이가 있다. 트랜스여성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괴로울 것 같다’는 동정적인 시선이, ‘트젠을 여자로 인정해주면 안 된다’ 라는 적대적인 시선으로 바뀌었다. 어쩌다 이런 변화가 생기게 된 걸까?
2016년은 대한민국 페미니즘 운동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해였다. 바로 강남역 여성혐오살인사건. 남성이었던 범인은 남자들이 모두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여자를 표적으로 삼아서 죽였고, 실제로도 범행 동기를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이에 여성들은 ‘여자라서 죽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온·오프라인에서 강하게 결집하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많은 2030 여성들이 이 시기에 페미니스트가 되었고,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크게 대중화 되었다. 페미니즘 리부트의 운동적 의의와 긍정적 효과는 많겠지만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 한계도 역시 존재했다. 여성의 안전을 – 물론 너무나 중요하다 - 너무 강조한 나머지 여성의 존재를 피해자의 위치로만 환원시키는 것과, (트위터 등의)온라인 공간에서 간결하고 직관적인 메시지를 내세우는걸 중시하다보니 여성간의 차이를 지우고 여성을 단일한 존재로 상정한 것, 이 두 가지 지점에서의 한계가 컸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로 페미니즘적 구호를 내세우는 것에 방해된다고 여겨지는 여성들은 페미니스트가 될 자격이 없다고 여겨졌고, 더 나아가 ‘가부장제의 부역자’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전통적인 여성성(꾸밈노동,돌봄노동,감정노동 등)을 수행하는 여자들이 주로 그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이렇게 시스여성들조차 어떤 범주에서 탈락하는 마당에 트랜스여성이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트랜스여성은 여성인권의 주적이 되었다. 여성들은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여성성 수행을 거부하려고 하는데, 트랜스젠더들은 오히려 그걸 적극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킨다는게 그 이유다. 여기에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한계점과 맞물리면서, 트랜스여성은 ‘생물학적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공포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남성들이 트랜스여성을 ‘남자처럼 살지않는 남자’로 취급하며 조롱하는 것과는 반대로 여성들은 트랜스여성을 너무나 ‘남자같은’ 존재로 묘사한다. 어쨌든 시스남성집단이나 시스여성집단이나 트랜스젠더는 혐오의 대상인 것이다. 여기서 욕먹고 저기서 욕먹고 아주 동네북 같다.
유치원 시절부터 성인 이후 시기까지. 우리는 평생동안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과, 그에 따라 나뉘어지는 동성 집단에서 소속감과 유대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많은 것을 경험한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는 두 그룹 중 어디에도 마음 편히 소속되지 못하고 그 경계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번민하고, 고통스러워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