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푼줍쇼
‘동정심’ 이라는 단어를 보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아무래도 어렵고 불쌍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를 많이 떠올릴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에 처할 수 있고 누구나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직면할 수 있기에, 우리가 서로의 어려움에 대해 안타깝고 딱한 마음을 갖는건 필요한 일이다.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사람의 선한 본성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고, 우리도 어렸을 때 학교에서 어려운 사람은 돕는게 마땅한 일이라고 배워왔다. 물론 당연하게도 동정받는 위치에 놓이고 싶은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동정을 받는다는건 일단은 동등한 위치는 아니라는거니까.
나도 어렸을 때 티비에 나오는 불우이웃을 보며 안타까워하거나, 길거리 노숙인에게 적선을 하기도 했다. 몇 초 짜리 알량한 동정심으로 하는 행위는 윤리적으로 옳은 것일까, 위선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도 들었지만 말이다.
인권운동을 하면서는 내가 타인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걸 깨달았다. 어려울 때 서로 돕는건 여전히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누군가를 나와 동등한 사람으로 보는게 아닌 항상 도움을 받기만 해야하는 불쌍한 약자로 대상화하는건 위선일뿐더러 결코 진정한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장애인인권 활동가들이 이동권을 위해 지하철을 막고 투쟁하는 것에 대해 욕을 하는 비장애인들은, 그런 맥락에서 자신들이 평소에 장애인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장애인은 ‘배려’ 받아야 하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비장애인과 똑같은 권리를 가져야하는 동료시민인 거니까.
그런데 트랜스젠더는 어떨까? 동정심이 드는가? 배려하고 싶은가? 도와주고 싶은가? 동정심이 들고 배려하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느끼려면 일단 약자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트랜스젠더를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은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약자가 아니다. 술집이나 유흥업소 같은 곳에서 과도한 화장을 하고 과도하게 여성성을 수행하는 남자들. 그런 우스꽝스럽거나 기괴한 이미지를 사람들은 많이 떠올린다. 주위에서 트랜스젠더를 직접 볼 일은 흔치 않으니 미디어의 영향이 큰 것일텐데, 아무튼 결코 약자의 얼굴은 아니다. 오히려 체격이 크고 우락부락한 ‘여장남자’로서 일반 여성들에게 위협이 되는 강자의 존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일종의 ‘잠재적 가해자’인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사람들은 낯선 존재에 대해 기본적으로 두려움이 있는데 자신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고 여겨지면 관대(한 척)할 수 있는 것 같다. 성소수자에 대해 흔히 많이 나오는 반응인 “존중은 하는데 내 주위에만 없으면 좋겠다” 와 같이 말이다. 물론 이것도 당연히 혐오이고 무례한 말이지만, 이런 사람들에게는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직접적인 공격은 안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LGBT로 대표되는 성소수자 그룹 안에서도 LGB(성적 지향)의 문제냐, T(성별정체성)의 문제냐에 따라 차이가 크다. 사람들은 동성애자보다 트랜스젠더를 더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 애초에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부터가 어렵다.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들이 이성을 사랑하듯이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 이라고 하면 (완벽하진 않아도)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고, ‘사랑’ 이라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만고불변의 가치를 내세우는 방식으로 인식개선 캠페인도 가능하다. 그런데 트랜스젠더는? “당신이 왜 여자인지 나를 납득시켜보세요” 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건 마치 “당신은 왜 당신인가요?” 라는 말과 똑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려다보니 “나를 여자/남자/논바이너리로 느꼈어요” 라고 ‘느낌’에 빗대어 설명하게 되는데 그러면 또 공격을 받는다. 성별이 어떻게 ‘느낌’이냐고.
트랜스젠더로 살면서 워낙에 공격과 혐오를 많이 받으며 살다보니 차라리 동정이라도 받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불쌍하게라도 여겨줬으면 싶다. 트랜스 당사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지 알아줬으면 좋겠다.
인권운동을 해온 나는 주로 다른 소수자를 지지하는 활동은 많이 해왔지만 정작 내가 지지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지지까진 아니어도 종종 나(의 정체성)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아, 내가 사회적 소수자성을 가진다는걸 인정해주는구나, 내가 겪는 일들에 대해 약간이라도 알아주긴 하는구나, 싶어서. 여성들에 대해 ‘잠재적 가해자’로 여겨지는 트랜스여성인 나는 그래서 한때 무해한 이미지로 보이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었다. 주눅들어 있고, 위축되어 있고, 약해보이면 안심할 거 같아서, 덜 나쁘게 볼 거 같아서 말이다. 지금도 물론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지만 어느 정도는 내려놓기로 했다. 내가 나로 살기로 한 결정을 내렸는데 계속 내가 아닌 모습을 추구하는건 너무 슬픈거 같아서. 그리고 욕할 사람은 어차피 욕하니까, 그냥 하고 싶은거 하면서 때로는 강인하고 거친 모습도 보이면서 살아가고 싶다. 이런 내가 불쌍해보인다면 마음껏 불쌍해하셔도 좋다. 동정 한 닢 던져주고 가시면 감사하게 받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