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수 May 15. 2024

<나의 트랜지션 일기> 59장: 유리 벽장

숨을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59장: 유리 벽장]



흔히 성소수자는 벽장속에 있는 것으로 비유된다. 사회 분위기 상 자신을 드러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을 커밍아웃이라고 한다. ‘벽장 속에서 나오다(coming out of the closet)’에서 유래된 용어다. 성소수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자신의 어떤 비밀을 밝힐 때 ‘O밍아웃’ 이라고 갖다 쓸만큼 이 용어는 꽤나 대중적이다. 

성소수자 당사자와 주변인들에게 항상 빠질 수 없는 주제도 바로 이 커밍아웃이다. 언제 어떻게 커밍아웃을 했고, 언제 어떻게 커밍아웃을 받았는지. 거부당했던 아픈 기억으로 남거나, 지지받았던 고마운 기억으로 남기도 하는 등 희로애락이 있다. 각자의 사정이나 관계는 다양하므로 n명의 성소수자가 있다면 최소 n개의 커밍아웃 이야기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무언가 많이 다르다고 느껴진다. 내가 있는 곳이 ‘벽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슨 말이냐면 내 정체성은 숨겨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트랜지션을 시작하면서 안경을 벗고, 머리를 기르고, 호르몬치료와 각종 수술을 하게 되었으니 외형의 변화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옷이 제일 문제였는데, 남자로 살아오던 사람이 갑자기 치마를 입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나에게는 나의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숨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같이 사는 부모와 주변 사람들에게도 어쩔 수 없이 알려지거나 알릴 수 밖에 없다. 나에게는 커밍아웃이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아마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그럴 것이다. 성적 지향은 숨기려면 숨길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성별정체성은 대개 그렇지 않다.

따라서 나는 내가 ‘유리 벽장’에 있다고 느껴진다. 숨으려고 해도 숨을 수 없는, 문을 닫고 들어와 있어도 바깥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곳에 있는 것 같다. 의죠적 트랜지션과 법적성별정정을 다 끝낸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트랜스여성과 트랜스남성들이 모든 과정을 끝낸뒤에 커밍아웃하지 않고 평범한 여자와 남자로서 살아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티’가 나지 않는 경우는 그게 가능하다. 그런데 나도 전국의 모든 트랜스젠더들을 다 만나본게 아니니까 얼마나 그렇게 다시 안정적인 벽장 속에서 살고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나처럼 유리 벽장 속에 있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내가 유리 벽장에 있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목소리다. 외모나 신체는 옷을 입고 있어도, 혹은 벗어도(...) 사회에서 충분히 여성으로 보여진다. 내가 입만 열지 않는다면 아마 다들 내가 트랜스젠더인지 모를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성대수술을 하긴 했지만, 이전보다는 조금 올라가긴 했지만 여전히 나는 목소리 음역대가 낮다. 나는 허스키한 정도라고 생각하고, 나는 내 목소리가 좋지만, 사회에서는 남성의 목소리로 여겨진다. 그래서 여성적인 외양과 남성적인 목소리라는 이 간극 때문에 불편한 일들을 참 많이도 겪는다. 식당에 가거나 택시를 타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여자분인줄 알았어요”, “아가씬줄 알았네” 와 같은 말을 듣는다거나, 전화로 무언가 예약을 할때는 당연히 남성일 것이라고 여겨진다거나 등등. 병원이나 보험사는 내 주민번호를 알고 있으니까 종종 당황하기도 한다. “어? 여자분 아니었어요?” 라고 말이다. 최근에는 메이크업샵을 예약할 일이 있었는데, 나는 되도록 인터넷으로 끝내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전화가 걸려왔다. 샵에서는 당연히 나를 남성이라 인식하고는 “메이크업 받으실 여성분이 어떤걸 원하시나요?” 라고 물어왔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설명하기 귀찮아서 대충 말하고 끊었다. 전화를 끊고나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역시나 밝히지 않으면 내가 마음이 편치않을 것 같아서 결국 채팅으로 말했다. 긴장했던 것치고는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 살짝 김샜지만.      



못들은척 하는건가? 아니면 오히려 프로페셔널한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숨으려고 해도 숨을 수 없는, 바깥에서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 벽장. 트랜스젠더로 산다는건 이런 것 같다. 처음에 정체화하고 결심했을 때는 당연히 생각지 못한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 나는 한동안은 많이 자책했고 많이 부끄러워 했다. 보통 수술하고 성별정정까지 하고나면 ‘모든 고생이 끝난 것이고 이제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다’라고 여겨지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니까. 여전히 나는 일상에서 여성으로 ‘패싱되기’에 실패하고 내 성별을 부정당하고 있으니까. 내가 못나고 부족한 것 같아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내가 더 노력을 해야 하나? 싶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그저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고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누군가 나에게 무례하게 대한다면 그건 그저 상대방의 잘못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겪고 있는 이 불편함이 일종의 장애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잘못은 아니지만, 나의 어떠함이 사회적 기준과 맞지 않아서 생기는 불편함. 계속해서 나를 설명해야 하는 피곤함. 정신과 진단명도 ‘성 주체성 장애’ 였는데, 이런 불편함도 넓은 의미에서 장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