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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의석 May 18. 2016

인간은 노력하는 한 구원받을 수 있다

숭고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우리는 살면서 많은 유혹을 받습니다.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옳지 않지만 더 편한 방법을 권유하는 작은 수준의 유혹도 있고 나라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결단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자명고 앞에서 고민한 낙랑공주가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입니다. 슬프게도 그녀는 결국 나라대신 자신의 사랑을 선택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면 그 죄를 용서받기 힘듭니다. 나라를 팔아 넘긴 역적이니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이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세시대에서는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합법적인 길, '면죄부'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돈을 내고 면죄부를 사면 어떤 죄를 짓더라도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중세 교회의 도덕성이 땅바닥에 떨어진 대표적인 사건이죠. 하지만 죄는 돈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삶을 불행하게 만든 죄인을 진심으로 용서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죄값을 치르도록 하는 것이 옳은지 그 의견은 사람마다 각각 다를 것입니다. 


사실 이런 고민은 예전부터 있어왔습니다. 많은 작가들의 소재가 되기도 했지요. 그 중에서 저는 독일의 위대한 작가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가 거의 50년이 넘도록 열정을 기울여 집필한 '파우스트'라는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이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괴테는 독일의 대문호로 실러와 함께 독일 문학사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실제 독문학 수업을 듣게 되면, 수업의 40%는 괴테와 실러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괴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 '파우스트' 등이 그의 대표작입니다. 


파우스트는 우리가 한 번쯤 들어 봄직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신과 악마가 서로 내기를 하는 것이지요. 악마는 인간이 자신의 유혹에 넘어갈 것이라고 호언장담 하지만, 신은 인간을 믿는다는 말을 합니다. 서로 밀고 당기던 중 악마는 신에게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사람이 유혹에 빠지더라도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신은 수락했고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의 이념을 시험하기 위한 인간을 찾아 나섭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열심히 신을 설득하고 있던 사이 지상에서는 한 철학자가 고민합니다. 열심히 공부하며 진리를 찾던 중 절망한 것이죠. 아무리 노력해도 진리가 눈 앞에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 철학자의 이름은 파우스트였습니다. 철학, 법학, 신학, 의학 등 인간의 거의 모든 지식을 익힌 파우스트는 영적인 계시를 얻기 위해 지령까지 부르지만 이마저도 실패합니다. 절망에 빠져있던 그에게 찾아온 것은 개로 분장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였습니다. 그는 파우스트에게 하나의 거래를 제안합니다. 


거래의 조건은 이 세상에서 메피스토가 파우스트의 종노릇을 하며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파우스트가 현실에 만족하여 미래를 포기할 경우, 파우스트는 '시간아 멈추어라, 너는 정말로 아름답다!'라고 외치게 되고 그 순간 메피스토펠레스가 그의 영혼을 빼앗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인생의 즐거움이라는 거래를 받아들인 파우스트가 행복을 느끼며 삶에 만족하게 되면 그 순간 메피스토펠레스가 그의 영혼을 가져가게 된다는 것이지요. 파우스트는 진리를 찾기 위해 그의 계약을 받아들입니다. 


계약이 끝난 뒤 파우스트의 인생은 영화처럼 전개됩니다. 마녀의 비약을 먹고 젊어진 그는 하인리히라는 가명으로 그레트헨이라는 여성을 만나 구애를 하고 결국 좋은 관계로 발전합니다. 그러나 그레트헨은 메피스토의 음모로 인해 오빠 발로틴을 잃는 비극을 겪습니다. 더 슬펐던 것은 오빠를 죽인 인물이 바로 파우스트였다는 점이었습니다. 메피스토의 음모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레트헨은 자신의 손으로 어머니를 죽이고,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파우스트의 아이까지 갖게 되지요. 절망한 그레트헨은 아이를 물에 넣어 죽이고 감옥에 갇히게 되지만 마지막에는 파우스트를 용서합니다. 


그레트헨을 보내고 나서 파우스트는 그리스의 미녀 헬레나를 만납니다. 헬레나는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언급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여성으로 메넬라오스의 아내입니다. 파우스트는 조수인 바그너가 만든 인조인간 호문클루스와 함께 헬레나를 찾아가 사랑에 빠진 뒤 결국 아들인 오이포리온을 낳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날고 싶어했던 오이포리온이 부모의 발치에서 죽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파우스트는 상심했고 헬레나는 떠나갔습니다. 


이후 파우스트는 독일 궁성의 황제가 하사한 해안지대를 경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근심의 영이 그의 눈을 멀게 했어도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깊어진 심안을 바탕으로 평온해진 사회를 바라보며 '시간아 멈추어라, 너는 정말로 아름답다!'라고 외친 뒤 쓰러집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며 파우스트의 영혼을 가져가려 했으나, 하늘의 은총을 받은 그레트헨의 사랑이 그의 영혼을 구원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저는 먼저 유혹을 바라보는 신과 악마의 이념차이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악마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유혹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말하지만 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지닌 마음 속 가치를 믿었습니다. 사람은 이처럼 신이 인정한 가능성을 누구나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가능성을 현실에 드러내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여성적인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파우스트가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영혼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을 때 그를 구해준 것은 파우스트가 버렸던 그레트헨이었습니다. 버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고 아껴줘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녀는 파우스트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파우스트의 마지막에는 "미칠 수 없는 것,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형언할 수 없는 것, 여기에서 성취되었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리도다"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괴테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을 이상적인 가치로 삼았습니다. 아마 괴테가 말한 여성적인 가치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파우스트가 승천할 때 함께 있던 천사는 '언제나 갈망하며 애쓰는 자, 그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신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했던 말인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는 문구와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이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게 마련입니다. 실수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 귀에 박히도록 들리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해야 될지 마음이 복잡합니다. 성공을 하고 싶지만 실수하기는 싫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어서, 성공을 하더라도 실수는 최대한 줄이고 싶어합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임을 회피하고 도망 갈 수도 있고, 그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며 큰 비난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파우스트를 읽고 난 다음의 저라면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비난을 받는 것이 옳다고 말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일을 하려 했고 비록 그것이 좋은 결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나를 구원해주고 좋은 것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파우스트를 통해서 생겼기 때문이지요. 


물론 파우스트가 악마와 계약한 뒤 지은 죄가 정당화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그가 가졌던 '진리를 탐구하려는 아름다운 자세와 노력'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주변의 사물을 관찰하며 자신의 아이디어로 끊임없이 표현하는 자세를 지녀야겠습니다. 


만약 어느 날 당신에게도 메피스토펠레스가 계약을 하기 위해 찾아온다면 여러분들은 무슨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악마의 유혹은 무조건 나쁜 것이니 계약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도움이 필요할 때가 생길지도 모르니 계약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계약을 하던 하지 않던 인간이 가져야 될 자세는 삶에 대한 감사와 삶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스스로의 노력입니다. 아마 괴테는 우리에게 '이런 노력과 여성적인 사랑을 통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다'라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제가 쓴 책인 21세기 공부법 중 일부내용을 참조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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