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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최초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배우는 인생을 살아가는 힘

by 정의석

지금은 흔치 않지만 예전에는 할머니가 손자들을 모아놓고 난로 앞에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당시 딱히 놀 것이 없던 아이들에게는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간식과 따뜻한 불이 최고의 낙이었습니다. 물론 요즘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제 많지 않습니다.

이처럼 이야기는 대부분 한 사람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입으로 전해지는데 이런 방식을 구전(口傳: 입으로 전한다는 의미)이라고 합니다. 대개 옛날이야기나 전설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우리가 전해 듣는 소문도 엄밀히 따지자면 구전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고대에도 이처럼 구전으로 전해진 작품이 있었습니다. 바로 호메로스가 정리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입니다.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지요. 그렇다면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의의는 무엇일까요? 먼저 고대 영웅 아킬레우스의 이야기를 담은 『일리아스』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리아스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야기와 연관된 신화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작품의 배경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혹은 트로이아 전쟁)이기 때문이지요. 이 사건은 불화의 여신 에리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테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그녀가 혼인 잔치 중 하객들을 향해 황금사과를 던졌던 것입니다. 사과만 던졌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었겠지만,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라는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세 여신인 헤라와 아프로디테, 아테나가 서로 그 사과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제우스는 세 여신들을 이데 산으로 데려간 뒤 그곳에서 양을 치던 목동, 파리스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고르도록 합니다.


여신들은 파리스에게 선택받기 위해, 그에게 좋은 것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헤라 여신은 권력과 부를, 아테나 여신은 전장에서의 명예와 명성을, 아프로디테 여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제안을 선택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나머지 두 여신과는 적이 되었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이미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그리스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였습니다. 그러나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그녀를 꾀어낸 뒤 궁궐에서 빠져나와 트로이로 가버렸습니다. 이튿날 헬레네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메넬라오스는 격분했습니다.


사실, 그녀는 결혼 전에도 구혼자가 많았습니다. 구혼자들은 그녀가 남편을 선택하기 전, 구혼자 중 하나인 오디세우스의 제안에 따라, 누가 뽑히든 모두 힘을 합하여 이 여성을 보호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양치기 한 명이 헬레네를 납치(?)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겁니다. 결국 모든 그리스가 연합하여 파리스의 나라를 치기로 결심합니다.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은 이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트로이를 치기 위해 그리스에서 속속 조력자들이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를 제안한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라는 여인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었기 때문에 참전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치광이 흉내를 냈지만 거짓이란 게 들통나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일에 말려든 그는 자신처럼 자진해서 나서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했고, 특히 테티스의 아들이었던 아킬레우스에게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결국 그를 설득한 오디세우스는 그와 함께 전장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철저하게 준비했지만 그리스 함대가 항구에서 움직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원인은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이 사냥을 나갔다가 죽인 사슴 한 마리였습니다. 그 사슴은 달과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에게 봉헌되었던 제물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아르테미스는 그 벌로 전염병을 퍼트려 군대의 수를 줄이고, 바람을 멎게 하여 출항을 방해했습니다.


아가멤논은 예언자 칼카스를 통하여 아르테미스 신의 분노를 잠재울 방법은 처녀를 제단에 산 제물로 바치는 길이라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꼭 죄를 지은 자의 딸이어야 했기 때문에 그는 오랫동안 방황합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그리스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결국 아가멤논은 자신의 딸인 이피게니에를 제물로 바치는 것에 동의합니다. 딸을 데려오기 위한 구실은 전쟁영웅인 아킬레우스와 짝지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운명은 아르테미스에게 바쳐질 제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물로 바쳐질 순간 아르테미스 여신은 가여웠던지 처녀를 거두고 그 자리에 암사슴 한 마리를 놓은 뒤, 이피게니에를 자신의 신전에 기거하는 여사제로 만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죽지 않았지만, 이 때문에 총사령관인 아가멤논과 아내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또한 아가멤논은 전쟁 중에 더 큰 악재를 만납니다. 휘하의 장군이었던 아킬레우스와의 사이가 멀어진 것입니다. 승전 중에 얻은 전리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긴 것이지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전리품으로 넘어온 처녀인 크리세이스 때문이었습니다. 아가멤논의 소유가 된 크리세이스는 원래 아폴론 신관의 딸이었습니다. 신관은 딸을 풀어줄 것을 원했지만 아가멤논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신관은 자신이 믿는 아폴론 신에게 자신의 딸을 돌려받을 때까지 그리스 군에게 본때를 보여줄 것을 기도했습니다. 기도에 응답한 아폴론은 그리스 군에 전염병을 창궐시킵니다.


아가멤논은 어쩔 수 없이 크리세이스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크리세이스를 풀어주면서,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이었던 브리세이스라는 처녀를 빼앗아갑니다. 아킬레우스가 전염병의 원인이 크리세이스를 풀어주지 않은 아가멤논에게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그의 기분이 상했던 것이지요. 아킬레우스는 이에 응하는 대신 전쟁에 관여하지 않을 것을 선언합니다.


이후 그가 전쟁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친구인 파르토클로스의 죽음이었습니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그는 친구에게 갑옷까지 빌려주며 승전을 기원했지만 적장인 헥토르의 손에 전사하고 맙니다. 분노에 찬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참여하여 적장인 헥토르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마차에 매달아 끌고 다닙니다. 그리스에서는 죽은 사람에 대한 장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는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국 보다 못한 제우스 신의 개입으로 시체는 트로이의 왕이었던, 프리아모스 왕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이후 그는 아들인 헥토르의 장례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일리아스가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후에는 우리가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트로이의 목마로 인해 전쟁이 종식됩니다. 트로이의 목마를 고안한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다음에 이야기할 작품인 『오디세이아』에서 다루게 됩니다.


일리아스를 읽는 동안 우리는 여러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황금사과를 놓고 싸우는 여신들, 헬레네를 놓고 벌어진 트로이 전쟁,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갈등, 헥토르의 시체를 놓고 벌어진 프리아모스 왕과 아킬레우스의 대립 이외에도 우리가 일리아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갈등은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트로이 전쟁의 씨앗이 불화의 여인 에리스였기 때문일까요? 그 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무래도 그 사건의 당사자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람의 본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확인해야 될 것들은 무엇일까요? 먼저 우리는 이익에 따른 사람의 행동 패턴을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사람들이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사람들의 행동 패턴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결국 자신의 이익이나 다른 사람들의 이익 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대개 철학자들은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냐에 대한 논쟁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때 중요한 것은 사람의 본성을 보는 자세입니다. 어떤 이는 선으로 보고 또 어떤 이는 악으로 판단합니다.


사람들이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일은 매우 생산적입니다. 냉정하긴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이익을 위해 움직입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확인하는 일은 이런 이유에서 중요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과거의 사건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저는 과거의 사례를 참고하여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실제 일리아스의 배경이 된 그리스 신화는 이후 다양한 작품의 소재가 됩니다. 내일 제가 이곳에 기록할 오디세이아,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쓴 파우스트와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이야기를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그 내용을 삶에서 적용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는 가장 큰 목적은 지식과 행동의 일치(知行合一) 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유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무언가는 교훈일 수도 혹은 단순한 즐거움일 수도 있습니다. 그건 받아들이는 우리의 역량에 따라 결정됩니다. 끊임없이 공부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만이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앞서 얘기한 내용을 이해하고 최선을 다해 배우고 익힐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제가 쓴 책 중 21세기 공부법의 일부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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