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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대출해 드립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은행에는 뭔가 다른게 있다

by 정의석

우리의 삶에서 돈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최근에는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비슷한 내용의 책도 있습니다. 마이클 센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는 책에서 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한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지만, 예시로 기록된 내용들을 살펴보면 사람의 존엄성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도 많습니다. 돈을 더 많이 낸 죄수에게 더 좋은 방을 주거나, 부자들은 전쟁터에 나가지 않는 것 등이 지금 제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돈이 필요 없는 곳에서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한 섬 핀지랩, 190명 남짓의 사람들이 사는 이곳의 연간 1인 소득은 500달러 (55만 원 내외)가 안됩니다. 반면에 삶의 만족도는 매우 높습니다. 자연환경이 좋지 않아 매번 치열하게 미래를 걱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있으면 함께 모여 해결하며 서로 배려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꼭 이렇게 살아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내용을 강조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삶의 질적 측면에서 비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죠. 데이비드 소로가 쓴 작품인 월든에서 주인공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혼자 살며 생각하고 기록한 내용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현대인이 이렇게 하려면 정말 큰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 글을 쓰는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제3세계에서도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합니다. 방글라데시에 살고 있는 무함마드 유누스는 우연히 대학 주변에 있는 마을을 다니다 작은 대나무 의자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을 만납니다. 그 여인은 재료를 사기 위해 필요한 돈을 고리대금업자에게 빌렸기 때문에 버는 돈을 모두 그에게 바쳐야 했죠.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 때문에 그녀의 삶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드는 중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그는 대학생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다 마이크로 크레딧 (무보증, 무담보 소액 신용대출)을 떠올리고 여러 은행을 찾아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대출 프로그램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은행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돈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상품을 만들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결국 유누스는 이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은행을 직접 세우고 ‘그라민’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방글라데시어로 ‘마을’이라는 뜻이 있는 이 은행은 자본금이 없어 물건이나 돈을 빌려 장사를 해야만 했던 극빈층을 대상으로 대출을 진행했습니다. 사회적 기업의 역할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목적 자체가 영리를 추구하는 일반 기업과 달랐던 것이죠.


그라민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절차는 간단합니다. 자신이 가난하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대출 승인도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지는 편입니다.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대출의 대상이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라는 것입니다. 방글라데시 전체 산업의 80%는 농업입니다. 농업 사회에서는 지역 간 결속력이 강합니다. 유누스가 주목한 것은 이점입니다. 그는 대출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5~10여 명의 그룹으로 묶어 공동 책임을 묻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대출금을 갚지 않는다면 나머지 사람이 남은 상환액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러니 집단 안에 소속된 사람들의 연대감은 자연스럽게 강해집니다. 그룹 내의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고 노력하며 그 결과로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게 되죠.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그라민 은행이 주는 것은 단순한 돈이 아닙니다. 비록 적은 금액일지는 모르지만 그 돈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 하나하나에 담긴 꿈과 희망의 불씨를 살리는 장작의 역할을 합니다. 이전까지의 삶에서 지독한 고통만을 느꼈다면, 이제는 열심히 하면 더 나은 인생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이는 통계상으로도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그라민 은행의 대출 상환율은 연평균 90%로 매우 높은 편입니다. 방글라데시 내의 다른 상업은행이 보증인과 담보를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돈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이런 노력을 여러 곳에서 알아준 탓인지 그라민 은행은 2006년 노벨 평화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선한 일을 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동중서의 저작인 춘추번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사람의 도리와 법도를 제정하고, 위와 아래를 차등지어 분별하며, 큰 부자는 교만에 이르지 않도록 하고, 크게 가난한 사람은 마땅히 삶을 길러 근심하지 않도록 인도한다. 이와 같은 바탕 위에서 제도를 만들어 균등하게 하고, 부자가 재산을 지나치게 모으지 않도록 하여, 위와 아래가 서로 편안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나라와 백성은 쉽게 다스려진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서는 성인의 제도를 버리고 각자가 욕심만을 채우고자 한다. 욕심은 만족을 모르고 풍속은 어지러워져, 그 끝을 알 수 없다.”


위의 문구는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역량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크게 가난한 사람을 지원해주어야 한다는 내용을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 일은 지도자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도움이 재정적인 부분이어야 할 필요도 없죠. 그라민 은행의 경우만 살펴봐도 이 점은 명확히 드러납니다. 그라민 은행이 실시한 대출은 큰 금액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씨앗의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재능을 바탕으로 주변에 베풀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돈 대신 그 능력을 활용해도 결과는 비슷하게 나올 것입니다. 중요한 건 주변을 돕겠다는 마음이죠.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이유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목적을 온전하게 달성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약자를 돕기 위해 그라민 은행을 설립하며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던 유누스를 떠올려봅시다. 우리가 비록 그처럼 큰 프로젝트를 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우리가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재능은 여러 사람들을 위해 쓰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해야 할 삶의 목적입니다.


P.S 안타깝게도 10년이 지난 요즘에는 그라민 은행의 실체라는 이름으로 좋지 않은 사례가 소개되기도 합니다. 함께 읽으며 객관적인 시야를 기르는데 도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기왕이면 좋은 가치를 본받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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