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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의석 Jun 15. 2016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교육의 관점에서 본 부모와 아이의 행복 찾기


주변을 살펴보면 마음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성적 때문에 슬프고, 취업 준비생은 생각보다 할 것이 많다는 것을 늦게 깨닫고 한탄하며 직장인들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각박한 세상에서 하루를 근근이 버티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들의 근심은 날로 커져만 갑니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안정적인 삶, 다른 하나는 이상적인 자녀교육입니다. 


학부모들은 가난으로 인해 손해를 보지 않도록 아이에게 관심을 많이 쏟습니다. 특히 가장 많이 공을 들이는 부분은 교육입니다. 더 좋은 교육을 통해 아이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앞에서 언급한 안정적인 삶을 아이에게 주는 길이 교육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이런 가치관은 아이의 생각과 배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은 자신의 생활을 일정 부분 포기하면서까지 자녀에게 열심히 투자했는데 자녀가 따라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아이들의 경우 하기 싫은 일을 돈을 들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들에게 강요하는 부모님에 염증을 느낍니다. 


이런 갈등이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비록 물건을 사는 행위가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모든 것을 채워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한국전쟁(6.25) 이후로 춥고 배고픈 환경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때 가장 필요했던 것이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급격한 폭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부분을 깊이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교육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로드맵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을 먼저 생각하는 일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센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에서 자본주의 윤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돈으로 살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의 가치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죠. 미국에서는 죄수들이 하루에 82달러만 내면 교도소 내 감방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습니다. 이마에 광고 문신을 새기면 777달러를 받을 수 있고, 제약 회사의 임상실험 대상자로 선정되면 7500달러가 수중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들의 삶이 과연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소중한 자신의 자원을 낭비했기 때문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세운 기준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만의 기준을 쫓는 것입니다. 문제는 첫 번째 기준을 따라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진 모르지만 자신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생각할 기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이 깔아놓은 아스팔트를 열심히 달려 원하는 목표를 성취했지만 이후에 공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짜 놓은 프레임에 따라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지 묻고 싶습니다. 삶의 행복을 느끼는 사람과 꿈을 성취한 사람들은 세상의 기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설계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행복은 남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치열한 노력 끝에 성취하는 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1845년부터 1847년까지 사회와 인연을 끊고 숲에서 혼자 살며 느낀 점을 기록한 수필집입니다. 이 책이 특이했던 이유는 주인공인 저자가 서른도 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음에도 불구하고 고향 숲 속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행복했을까요?


먼저 저는 책을 읽으며 저자가 삶을 진지하게 관찰하고 사색하는 것에 감탄했습니다. 행복을 생각하고 인생을 오롯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다양한 것들을 고민하며 저자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조금씩 바꾸어 나갑니다. 빠른 것보다는 느린 것을, 바쁜 것보다는 평화로운 것을 추구하게 된 것이죠. 


저는 이런 그의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더라도 그 사람을 파악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직업과 하는 일에 더 관심을 보입니다. 미팅에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려면 다른 사람들이 정한 규칙에 따라야 합니다. 그 규칙이 내가 정한 것이 아니어서 많이 불편할 텐데도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위안을 삼습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행복은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만족감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 상태는 주관적일 수도 있고 객관적일 수도 있지요. 대개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주관적인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면 자신만의 기준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세상의 기준을 강요합니다. 그 기준이 어떻게 설정되었는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죠.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실수를 자주 저지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누군가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북소리가 박자에 맞든 종잡을 수 없든 간에 자신의 귀에 들리는 북소리에 맞춰 걷도록 하라.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처럼 빨리 성숙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남들과 보조를 맞추려고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꿔야 하는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 사람마다 잘할 수 있는 분야는 다릅니다. 잘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면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종류도 다양해야 합니다. 부모의 불행은 아이들이 이처럼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기준을 주입시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이렇게 해서 성공할 수 있는 학생들의 수는 지극히 적습니다. 부모의 기준에 맞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마음은 불행한 경우도 많이 발견됩니다. 


부모는 아이의 꿈을 인정해주고 그들의 꿈을 믿고 격려하는 것을 통해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 부모들은 확고한 교육관을 갖추고 아이의 성장과정을 인내하며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부모 역시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왜 우리는 지금까지 내가 강요하는 일을 아이가 하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기록된 월든의 한 구절이 생각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면 합니다. 


“나는 숲에서 경험한 삶을 통해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 우리가 꿈꾸는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며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평범한 삶을 살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것들을 잊고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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