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포티즘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전쟁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던 명장에는 누가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시기에 바다를 누볐던 명장인 이순신이, 고대 중국에서는 76번의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오기가 있습니다. 그들이 전쟁에서 이토록 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마 그들은 능력이 뛰어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전술이 있었을 것이며, 가치관 역시 보통사람들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순신은 군함 10여 척으로 왜의 함선 300여 척을 물리치는 큰 성과를 냈습니다. 물론 이로 인해 정부의 시기를 받기도 했죠.
그렇다면 오기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중국 전국시대의 군사 지도자이며 정치가였습니다. 군대를 이끄는데 재능을 보이며 노, 위, 초나라를 섬겼지요. 뛰어난 능력이 있었지만, 이를 인정해주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고초를 겪습니다. 다시 말하면 네포티즘의 희생양이었다고 할 수 있죠.
네포티즘은 지역연고주의 또는 족벌주의를 뜻합니다. 실력이 확실한 사람들 중 아는 사람을 쓰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네포티즘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바로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지역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척을 받는 데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오기 역시 네포티즘 때문에 많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노나라에서 대장군 후보로 올라갈 정도로 능력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국가에서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기의 아내의 국적이 자신이 충성을 바치기로 한 나라와 적대관계에 있는 제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기는 아내의 목을 베고 이를 노나라의 관료들에게 가져가는 초강수를 통해 그들의 신임을 얻습니다. 이때 오기가 느꼈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요? 사랑하는 아내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몸부림쳤을 수도 있고, 혹은 아내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야망을 이룩하려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오기는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노나라의 뿌리 깊은 연고주의를 저주했다고 합니다. 이후 오기가 노나라에서 승승장구했다면 그는 나름대로 만족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장군이 되어 전쟁에서 승리하는 혁혁한 성과를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노나라는 오기의 출생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고 결국 오기는 노나라를 떠나서 위나라로 가게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위나라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약 25년의 기간 동안, 가진 바 능력을 펼칠 수 있게 됩니다.
오기는 다른 시대에 살았던 훌륭한 군사 지도자인 손자와 많은 면에서 비교됩니다. 둘 모두 주장하는 것은 비슷하나,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약간 다르기 때문입니다. 손자가 스파이와 지형을 활용하거나, 군대를 운용하는 방법을 통해 적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을 주로 이야기한다면 오기는 자국 군대의 힘을 이상적인 방법으로 키운 뒤, 정공법으로 공략할 것을 주장합니다 (물론 손자가 훈련을 강조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혹자는 그래서 손자병법이 도가의 사상과 비슷하고 오자병법이 유가 혹은 법가의 사상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오기가 활약했던 시기가 유가와 법가의 중간 시기이기 때문에 이런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손자병법이 오자병법보다 사람들에게 더 유명한 이유가 '손자병법'이 갖는 특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사람들은 시간이 걸리는 것보다는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임기응변 류의 지식을 선호했을 것입니다. 하루가 지나도 왕이 수시로 바뀔 수 있는 위험이 있는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낭독과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보다 더 빨리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한국사람들처럼 이들 역시 짧은 시간에 성과가 나오는 것을 선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임기응변보다는 정공법을 택했고, 사람에게서 나오는 힘을 강조했습니다. 지형과 천기가 전쟁에서 중요하다는 손자의 입장과는 약간 차이가 있지요.
그랬기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게 되면, 오기는 그 누구보다 솔선수범하여 군율을 지켰습니다. 병사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고, 병사들이 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자신도 잠을 청하지 않았지요. 대장군이라면 편한 침대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그가 가진 가치관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많은 병사들의 귀감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기는 병사를 아버지가 아이를 기르는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상처에서 피고름이 나고 있는 병사에게 가서 입으로 직접 고름을 빨아낸 일화는 매우 유명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통곡을 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대장군이 직접 아들의 상처를 몸을 사리지 않고 돌보아주었으니, 우리 아이가 전쟁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어머니의 남편 역시 오기가 고름을 빨아준 병사였고 전쟁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다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오기가 얼마나 병사들을 생각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기가 이토록 병사들에게 마음을 쏟은 이유는 전쟁에서 '정예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내용을 오자병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잘 다듬어진 군대는 평상시에는 상호 간 예절이 깍듯하고, 일단 움직였다 하면 위풍이 당당하여 공격할 상대가 없고, 후퇴하더라도 쫓아올 수 없다. (......) 상하가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 이런 군대는 한 덩어리가 돼 흩어지는 일이 없으며 전투가 벌어지면 지칠 줄 모르므로 어디에다 투입해도 당할 자가 없다. 이를 일컬어 '부자지병'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오기는 그러나 음모에 빠져서 위나라를 떠나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위나라의 왕인 무후가 임명한 공숙이라는 재상 때문이지요. 그는 위나라의 공주를 아내로 둔 부마였습니다. 주변의 측근에게 오기를 쫓아내기 위한 계획을 듣고는 왕에게 공주 (자신의 아내가 아닌 다른)를 오기의 아내로 줄 것을 권합니다. 만약 오기가 거절한다면, 의심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함께 하면서 말입니다. 이후 공숙은 오기를 자신의 집으로 초청합니다. 자신의 계략을 오기에게 실행하기 위해서지요.
저녁식사 중 공숙은 일부러 자신의 아내인 공주를 화나게 한 뒤 오기 앞에서 깔보게 합니다. 그 광경을 다 본 오기는 이튿날 왕이 제안한 부마(왕의 사위) 직을 거절하게 되죠. 이에 왕은 오기를 의심하게 되고 이를 알아챈 오기는 초나라로 망명을 하게 됩니다.
초나라 도왕은 한 번에 오기의 자질을 알아보고 그를 재상으로 삼아 국가를 개혁합니다. 오기는 이에 부응하여 열심히 일을 합니다. 연고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기득권층이 누렸던 특권을 모두 박탈하고 실력을 중시한 국가체계를 건설한 것이죠. 기득권층은 오기가 못마땅했지만, 그의 개혁이 불러온 성과가 뛰어났기 때문에 딱히 그를 몰아세울 구실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기의 운이 뛰어나지 못했던 까닭일까요? 초나라 도왕이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오기는 개혁을 열심히 주도했지만,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지는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의 개혁에 불만을 품은 반대파 귀족들에게 살해당하게 되지요. 네포티즘을 타파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지만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도 지역 연고주의였으니 오기의 입장에서는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그가 남긴 글과 생각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니 후대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이는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결국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이전에 오기가 겪었던 것을 우리가 겪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꾸준히 배우고 익히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오기는 어떤 생각을 갖고 전쟁에 참여했을까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전쟁에 참여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지만 그의 정확한 마음을 알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전국시대에 살아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다만 역사를 통해 추정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기록된 역사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요.
우리는 오기의 삶을 통해, 지역주의가 갖는 맹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현재 삶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급진적일 경우에는 반대가 매우 심하기 때문이죠. 아무리 개혁이 모두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하지만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을 빼앗아간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조치에 반대할 것입니다. 우리가 싫어하는 국회의원의 지지율이 이상하리만치 높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 국회의원은 누군가에게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주고 있을 것입니다. 높은 지지율의 출처는 바로 그곳이지요.
손자와 오기를 통해 살펴본 대로 우리는 삶에서 편견이라는 강한 적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려움을 만나다 보면 손자의 임기응변이 필요할 때도 있고, 몸을 낮추며 후일을 기약하고 힘을 키워야 하는 경우도 있지요. 이런 위기를 만날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사고력과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과거의 경험일 것입니다. 존 로크가 '인간오성론'에서 생각의 근거는 '경험'이라고 이야기 한대로, 우리는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공부하며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야 합니다. 이런 경험은 편견에 맞서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세상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맞선 오기를 잠시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인생에서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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