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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의석 Jul 02. 2016

주체적인 생각이 옳다

판단하라 그리고 실행하라

'니콜라스 카’가 집필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며 삶을 바꾸는 가운데 사람들이 이전에 비해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렸다는 내용을 담고 있죠. 실제로 주변을 보면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의존하는 거죠. 

일반적으로 뇌는 효율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주 사용하는 영역을 다른 영역에 비해 더 많이 발전시킵니다. 그래서 대개 무언가에 몰입한 사람은 다른 이들에 비해 특정 능력이 뛰어납니다. 글을 오래 쓴 사람은 대개 블로거나 작가가 되고, 운동을 많이 한 사람은 선수나 트레이너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정보를 받아들이고 익히는 능력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더 쉽고 빠르게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 능력은 거의 대부분 읽고 해석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 세상이 읽기 능력을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원래 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오랫동안 생각하고 의미를 분석하는 일인데, 인터넷이 발달하다 보니 이에 몰입할 수 없는 환경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실례로 스마트폰의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어보면 우리를 유혹하는 다양한 종류의 링크가 있습니다. 광고나 신문기사, 자극적인 사진 등을 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생각할 힘을 잃어버립니다. 

우리는 항상 스스로의 미래를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잠시 책을 덮고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그려봅시다. 만약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 이외에 다른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지금 이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하는 일을 평생 해야만 합니다. 물론, 직업에 따른 수익이나 미래 전망이 지속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일에만 역량을 집중하는 행위는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물론 주체적으로 판단을 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잘못된 판단으로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낸 경우가 많습니다. 임진왜란 시기에 탄금대에 진을 치며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던 신립 장군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전투의 패배로 인해 왜군은 한양까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진군할 수 있었고 선조는 의주로 몽진을 해야만 했죠. 장수 하나의 잘못된 판단이 수많은 사람들을 사지로 내몰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온전한 사람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실수를 할지도 모르지만 이 과정을 거치며 개인의 역량이 향상되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실수를 거의 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사람이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죠. 무엇을 할지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만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사람이 함께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학생들은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기획하기 어렵습니다. 어른들이 학생들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은 모두 시험으로 인해 얻는 성적입니다. 당연히 학생들은 주어진 것만 잘하면 됩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인생을 스스로 책임질 수도 없죠. 

반면에 유럽 선진국의 부모가 자녀를 기르는 방식은 우리와 전혀 다릅니다. 일례로 프랑스에서는 15살 자녀에게 50유로(우리돈 5~6만원 가량)를 주고 사막에서 한 달 동안 살아남으라는 미션을 줍니다. 이 미션을 받은 자녀들은 비록 목표달성이 어려울지라도 부모의 말에 순종하며 사막에서 나름대로의 생존 기술을 터득합니다. 사자가 새끼를 혹독하게 기르는 과정이 떠오릅니다. 

만약 위의 사례에 속한 두 학생이 서로 겨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유리한 쪽은 어느 곳일까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대답은 쉽게 나올 것입니다. 저는 한국의 이런 공부방식이 하루 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는 상생의 시대기도 하지만 극도의 긴장감 속에 서로의 능력을 겨뤄야 하는 경쟁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학생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는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런 학습방식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도 개인과 사회에 훨씬 더 유익합니다. 교육의 목표는 지식을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육의 목표는 학습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주체적인 인생을 사는데 도움을 주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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