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더 중요한가?
현대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핵심 요소는 돈입니다.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돈은 우리의 행동반경과 삶의 형태를 결정합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물론 돈보다는 다른 부분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이들의 삶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특정한 목적을 갖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세부적인 지침을 하나하나 실천해나가는 사람이 더 많은 게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산유국으로 유명한 아랍의 대부호들을 보면 우리가 왜 돈을 추구하는지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금으로 도배된 스포츠카, 거리를 수놓는 수억 원 대의 고급 자동차를 흔하게 볼 수 있는 도로, 100층이 넘는 건물 옥상에 지어진 테니스장 등 이곳의 부자들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기행을 벌입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의 방송에서 해외의 유명 사례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며 사람들의 욕망에 불을 지폈습니다. 저렇게까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개인이 공통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와 편의가 있다는 생각이 가슴속에 자리 잡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돈을 추구하게 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된 사례를 본 사람들 중 일부는 천민자본주의라는 말을 사용하며 현 상황을 비판합니다. 판단의 근거는 '그들이 돈을 올바르게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것보다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에 자본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사회에 이런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러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사회가 구현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천민자본주의라는 말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요?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막스 베버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을 집필한 사회학자입니다. 그가 이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유럽 경제사에서 상인, 금융업자로 특이한 지위를 차지했던 유대인의 경제활동을 비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베버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은 남들이 고생하여 만든 상품의 유통만 담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이러한 행위가 건전한 자본주의 문화 형성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했죠. 이후 이 단어는 정경유착을 통해 이익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며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기업을 비판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베버는 유대인이 경제활동을 하는 이유가 금전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들의 가치관은 주어진 직업에 최선을 다하며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의 견해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금융업은 생산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본의 순환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사업형태이기 때문에 해당 업종이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그리고 이런 행위가 성행하면 이후에 큰 자본이 들어와도 기득권층의 권위가 상승하여 자본주의 문화가 후퇴된다고 주장했죠.
잘 살펴보면 그의 주장은 한국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6.25) 이후 급격한 속도로 경제규모가 커졌지만 이에 준하는 건전한 자본주의 문화가 형성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특히 기업가가 아닌 개인의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합니다.
베버는 자신의 힘을 기반으로 노동력을 발휘하며 사회에 봉사하는 일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입장에서 보면 유대인이 주로 했던 금융업은 가까이해서는 안될 천한 직업이었습니다. 물론 요즘은 이런 생각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현대는 실물경제 못지않게 금융경제의 중요성이 큽니다. 시대가 달라진 거죠.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외부에서 얻은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준을 확실하게 정립해야 합니다. 과거의 지식을 익힐 때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지식이 현대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일입니다. 과거의 지식은 현대사회에서 100% 적용될 수 없습니다. 베버의 의견도 마찬가지죠. 이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현대 지식인에게 부여된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의 말이 현대 자본주의에는 적용되기 어려운 내용이 많지만 삶을 유지하는 규칙의 차원에서는 이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다른 부분은 제외하고서라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사회에 봉사해야 된다는 그의 의견만큼은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발전하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뤄낸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입니다.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돈이 있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특정 목적을 빠른 속도로 달성하려면 돈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돈으로 이룬 성과가 전부 내 것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돈으로 이룬 것은 돈이 없으면 쉽게 무너집니다. 특히 그것이 공부나 개인적인 능력과 연관되어 있으면 이 원칙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작용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돈을 주고 고용할 수는 있지만 돈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저절로 똑똑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또한 돈으로 행복을 살 수도 없죠.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커너먼 교수가 연구한 국민행복지수에 따르면 개인소득과 행복은 처음에는 비례하지만 연 소득이 7만 5천 달러를 넘어가는 순간부터는 큰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이는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사례로 작용합니다. 물론 실제 연 소득이 7만 5천 달러가 되기 전까지의 행복을 살 수 있다는 의견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보다 더 큰 범위에서의 행복입니다. 오히려 행복은 돈보다는 개인의 성취감이나 주도성 같은 무형적 가치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돈으로 산다고 해도 금방 한계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혹은 세상의 어려움을 꿋꿋이 버텨낼 수 있는 개인적 역량을 쌓는 일입니다. 이는 돈보다는 개인의 노력과 열정을 통해 만들 수 있는 가치입니다. 저는 유대인이 그토록 열심히 공부했던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은 다른 사람에게 주어도 그 가치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돈과 뒷배경이 없는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인 셈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공부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먼저 내가 관심이 있는 분야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모든 걸 돈에 의존하는 태도보다는 오히려 이 방식이 훨씬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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