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규율을 만드는데 필요한 조건
2011년 3월 말에 출간된 한 서적 때문에 전 교육계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책의 이름은 ‘타이거 마더’. 미국 예일대 법대 교수인 에이미 추아 교수의 작품입니다. 책의 제목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그녀는 호랑이 같이 엄한 부모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이의 공부계획을 부모가 하나하나 세우고 실천하도록 도우며 말을 듣지 않으면 엄하게 지도해서라도 아이에게 주어진 것을 하도록 만든다는 내용도 함께 수록되어 있죠.
타이거 마더는 출간되자마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최고의 교육법이라고 극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짐승을 학대하는 것처럼 키웠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한 독자는 타이거 마더를 읽고는 서가에 보관할 가치가 없다며 서류 파쇄기에 책을 갈아버린 뒤 이를 박스에 곱게 포장해서 추아 교수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토록 강도 높은 비판을 받은 이유는 아마도 아이의 개성과 인격을 존중하는 서양 사회에서 이 책이 처음으로 선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토록 강경하게 그녀가 아이를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는 ‘애들은 스스로 공부하지 않는다’는 말로 압축됩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동양과 서양에서 바라보는 교육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녀가 인식하는 동양의 엄마들은 아이의 학교 성적을 부모의 성적표라고 여기고 아이가 성장하려면 창피함이나 모욕감을 이겨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그녀는 서양의 엄마들이 아이에게 학교 성적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 않으며 자녀의 자존심을 생각하여 평범한 성적을 가져와도 칭찬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입장 중 어느 쪽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각자마다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고심 끝에 그녀가 선택했던 것은 동양식 교육관이었습니다. 엄하게 지도하며 자녀가 많은 것을 연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해당 교육의 핵심이었죠. 사실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데는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추아 교수의 아버지 역시 그녀를 엄하게 지도했습니다. 일례로 그녀가 2등을 한 시험 성적표를 가져가자 아버지는 ‘내게 이런 수치심을 느끼지 말게 해달라’라는 말로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교육전략은 아이들이 실천하기에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타이거 마더에서 언급된 자녀들의 교육과정은 매우 혹독합니다. 곱셈 빨리하기 시합에서 2등을 한 딸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날마다 초시계를 들고 시험 전까지 매일 2000문제씩 풀게 하여 결국 1등을 만들어 낸 사례나 휴가 중에도 레슨을 받고 있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습시키며 자녀들의 집중력을 높이려 노력했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아이의 꿈과 흥미를 고려하지 않은 공부방식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염려했습니다.
실제로 그녀의 집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둘째 딸인 루루가 틀에 짜인 엄격한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엄마와 가족을 포함한 자신의 인생 모든 것을 혐오한다고 했던 것이죠. 결국 그녀는 기존에 시행하던 바이올린 수업을 중단하고 딸이 하고 싶어했던 테니스 수업을 시작합니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자녀의 흥미를 고려하지 않은 강압적인 교육이 갖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더라도 아이가 싫어한다면 이는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교육 전문가들도 이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타이거 마더의 저자인 에이미 추아 교수가 매정한 엄마인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지도 않고 선입견에 의거해서 사람을 판단한 뒤 낙인을 찍어버리는 일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녀 역시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으며 아이가 잘 되기를 바랬던 평범한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공감할 수 없는 방식일지라도 그녀는 딸을 사랑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서양의 부모들에게 너그러운 태도만을 가지고 어떻게 아이들을 올바르게 양육할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아이를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나쁜 길로 쉽게 빠질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깊게 들어가다 보면 결국 이 문제는 사람의 본성이 선하냐 악하냐로 귀결됩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이유는 아이들이 ‘부모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논어의 위령공편에는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慾勿施於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부모님이 먼저 공부를 즐긴다면 아이는 반드시 이를 본받아 열심히 공부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집을 잘 살펴보면 부모 역시도 공부를 즐기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타이거 마더인 에이미 추아는 우리와 달랐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자녀의 능력을 향상시키려 애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을 강조했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이를 교육 시킬 때는 이런 선례를 본받아 아이를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판단해보아야 합니다.
이 글은 제가 쓴 책인 '학부모의 진짜 공부'의 일부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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