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학점 주기

아내 인터뷰 3

by 라르마이

아내는 나의 어떤 점에 끌려서 결혼을 했을까 궁금해졌다. 이 대화를 통해 지금 내가 아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싶다.

내가 먼저 아내에게 끌렸던 점을 말한다.

"나는 당신을 처음 본 순간 거의 3초 만에 이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왔네. 당신을 처음 본 순간 당신의 장난기 가득한 눈빛과 통통 튀는 듯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네. 내가 없는 것, 내게 필요한 것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네."

아내와는 직장생활 초년생인 20대 후반에 대학교 후배가 주선한 미팅에서 만났다. 미팅 자리에서는 아내와 짝이 되지 못했다. 미팅 후에 따로 아내에게 연락해서 만남을 이어갔다.

아내에게 나의 어떤 점이 좋았느냐고 묻는다.

"이 사람이 웃으면서 내 말을 열심히 들어주는구나, 자상하구나 했어요. 당신을 만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못 느꼈던 기대감이란 게 있었어요. 차를 가지고 데이트하러 회사 근처에 온다고 해서 강남에서 종로까지는 차가 많이 막힌다고 했더니, 그 정도쯤 기다리는 건 괜찮다고 했던 것 그런 거에 감동받았어요"

나는 '내가 그런 적이 있었던가?' 하면서 약간은 흐뭇해진다. 아내는 그럴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듯 바로 팩폭을 날린다.

"그때 알았어야 하는데, 그게 내 얘길 잘 들어주는 척했다는 걸, 알았을 땐 너무 늦었었죠"

아내 말이 맞다. 아내는 내가 꾸민 사회적인 페르소나를 보고 진짜 나인 줄 알았던 거다. 나는 아내를 만날 때까지도 내적 불안이 심했다. 나의 드러나지 않는 내면은 자책감, 수치심, 자기비하와 같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자주 휩싸이곤 했다. 한동안 회사나 운동 동호회 등을 도피처로 삼아 일과 운동에 중독된 사람처럼 살았다.

나는 사회성이 부족했다. 모임이나 회사 회식에서도 어떤 주제로 어떻게 대화에 참여해야 할지 몰랐다. 에고가 강해서 타인에게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었다. 누군가 내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고 인정과 사랑을 갈구했다.

나는 부족한 사회성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기 계발 서적을 읽고, 스피치 학원도 다녔다. 타인들과 대화할 기회를 갖기 위해 독서토론 모임에 가입했다. 일부 모임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아내가 가끔은 '가족 같은 동호회, 동호회 같은 가족'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다.

아내가 끌렸던 내 모습은 나의 본성이라기보다는 대개 책에서 배운 내용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꾸며냈다고 볼 수도 있었다. 반면 아내에게는 본성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쾌활함이 있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우리를 가장 직접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는 바로 쾌활한 마음이다'라고 했다. 세월이 흐르고 아내는 가끔 말한다. "그땐 정말 내가 그랬는데 지금은 그걸 많이 잃어버린 것 같다."라고 한다. 아내가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데 쾌활함을 너무 많이 소진한 건 아닐까? 이런 아내에게 나는 무엇을 줄 수 있을까?

< 당신의 가능성에 대하여 >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벤저민 잰더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이자 대학교수이다. 그는 그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위해 'A학점 주기'라는 방법을 고안한다. 잰더 교수는 모든 학생들에게 A학점을 주겠다고 선언한다. A학점을 받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해야 할 것이 있다. 다음 해 학점을 받는 시기에 맞춰 "교수님께, 제가 A학점을 받은 이유는..."이라고 시작하는 편지 쓰기다. A학점을 받으려는 학생들은 미래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형식으로 1년 동안 얻게 될 통찰과 굵직한 사건을 편지에 적는다.

잰더 교수가 A학점 주기를 한 이유는 학생들이 수업 때마다 자신이 평가를 받는다는 생각에 늘 불안해했고, 그래서 연주를 할 때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잰더 교수는 매번 부딪히는 이런 장벽을 없애고 싶었다. A라는 점수는 우리가 맞춰야 하는 기대나 기준이 아니라, 삶 속에서 펼쳐나가야 할 가능성을 표현하는 점수다. 학생들은 A학점을 받을 미래를 그려보며 쓴 글은 통해 자신을 돌아본다. 경쟁과 비교라는 압박감에서 벗어난다. 학생들은 자신이 음악인으로서 진정 되고 싶은 모습을 그려보고 스스로 변화의 계기를 만든다.

나는 나에게 'A학점 주기'를 적용해보고자 한다. 나는 몇 년 후 아내로부터 평가를 받고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ㅇㅇ에게

내가 당신에게 A학점을 받은 이유는 다음과 같아요. 나는 지난 몇 년간 당신이 잠시 잃어버렸던 쾌활함을 되찾아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당신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매일 아침긍정확언을 실천했어요.

나는 당신과 일상의 소소한 대화를 자주 나누기 위해 노력했어요. 나는 내가 원하는 것보다 당신이 원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함께하려 노력했어요. 나는 심각해지지 않기 위해 목표에 도달하려 욕심을 내기보다 과정을 즐기고, 막연한 미래에 매달리기보다 현실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어요. 내가 당신을 위해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많이 희생하고 참아주고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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