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그녀 이름은」을 읽고
그 순간 내 귀를 씻고 싶었다. 텀블러에 생수를 담으러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사무실 뒤 쪽 휴게실에는 그날도 두 사람이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몇 발자국을 걷는 동안 나는 듣고 말았다.
“니 신랑 많이 굶었겠다…….”
‘밥도 아니고 대체 뭘 굶는다는 거지?’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 뜻을 알아버렸다. 한 사람은 오십대 남자 상사였고 한명은 만삭인 삼십대 여직원이었다. 오후 세시 할 일 없는 상사는 임신한 배 때문에 부부관계가 힘들겠다고 여자를 희롱하고 있었다. 물을 담고 돌아서는 순간 여자의 얼굴은 빨개져 있었다. 자리로 돌아와서도 그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녀 이름은」이라는 책을 읽었다. 첫 이야기에서 왜 그 기억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마음속 어딘가에 박혀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장면이었다. 한편 씩 읽을 때마다 나 역시 삶의 여러 국면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왔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다. 책은 아주 평범한 소시민의 삶 속에서 일상으로 폭력과 억압을 경험하고 있었던 여자들의 이야기다.
얼마 전 ‘미투’ 운동이 한창이었다. 유명 정치인에서 연예인, 예술가, 교수 등 사회 각계 각층을 망라했다. 특히 권위가 있거나 유명세를 타는 사람의 경우가 많았다. 여러 사례를 보며 공통점 하나를 느꼈다. 가해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피해자의 우위에 서 있었다. 판결은 어떤 것은 유죄 어떤 것은 무죄였다. 구분은 위법사실을 입증하느냐 였고 못하면 무죄였다. 법적으로 무죄라고 죄가 없어지진 않는다. ‘미투’ 사례를 보면서 인간은 선과 악, 법과 도덕, 양심과 윤리, 그 경계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누군가는 폭력과 억압에서 자유롭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다. 특히 여성인 경우에는 더욱 더. 그 경계에서 사람들은 서성인다.
책은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한 후 회사와 싸우는 여자 이야기로 시작된다. 골리앗과의 지루한 싸움에 머리카락이 빠지고 수액과 영양제로 버틴다. 직장에서든 사회에서든 위치와 역할을 불문하고 여자는 언제라도 성적 대상으로 바뀔 수 있다. 어쩌면 항상 남자에게 여자는 처음부터 성적 대상일 뿐 인지도 모른다.
직장 내 성희롱 이야기를 읽으며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오른다. 오래 전 부서 회식 때였다. 자주 가는 식당이어서 여주인과는 친숙했다. 맛있는 음식에 소주가 몇 병 없어질 때 쯤 팀장은 여주인을 불러 술을 한잔 권했다. 지폐를 유리컵에 감아 따라 주면서 여주인의 손을 감싸 쥐었다. 또 한 손으로는 술병을 컵에 넣었다 뺐다 하며 남자가 말했다.
“이렇게 질퍽질퍽 해야 잘 들어간다니까.” 그러면서 클클댔다. 웃고 있는 사람은 팀장과 여주인 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어색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지금 책을 읽으며 이십 년 된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책속 그녀들은 나의 망각의 방에서 모욕당했던 기억을 소환해냈다. 곳곳에서 가슴이 먹먹했고 내 이야기와 겹쳐가며 읽었다. 여자로서 겪는 부당함과 억울함, 수치심과 모멸감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그녀들의 이야기가 덮어버렸던 상처를 끄집어내 돌아보게 했다. 수치심은 영혼을 갉아먹는 곰팡이다. 잠복해 있다가 수시로 떠올라 괴롭힌다.
전에 성폭력 방지 교육을 받을 때 봤던 동영상이 생각난다.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뱀이 온몸을 기어 다니는 것 같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큰 뱀이 누워 잠자는 여자의 목을 타고 넘어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가면서 온몸을 휘감는다. 육체적으로 당하지 않은 정신적 성폭력, 성희롱도 충격은 마찬가지다. 수치스러운 말을 들었을 때는 마치 말하는 사람이 내 치부를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언어도 신체적 폭력 못지않게 치유할 수 없는 상흔을 입힌다.
다음은 힘과 권력 앞에 착취당하는 여성 방송작가의 이야기가 나온다. 보람 있고 재미있는 일이라는 이유로 착취당하는 노동과 배제된 보상, 나아가 유린된 꿈을 생각하게 한다. 창틀로 올라온 도둑에 놀라 신고를 했더니 범인을 떨어뜨려 죽일 뻔 했다고 경찰에게 혼이 난 여자의 경우도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이 황당한 상황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게 삶이다. 딸로 아내로 엄마로 살다가 늙어서까지 손주 양육에 삶을 고갈시키는 할머니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 결혼제도가 갖는 의미와 가치, 모순과 폭력을 되짚어보게 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다양한 삶 속에서 여자들은 더 고통 받는다.
그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다. 온몸이 저릿하도록 마음을 휘감았다. 지하 이층에 살면서 생리대 살 돈이 없어 학교에 일주일을 나오지 못하는 여학생 이야기다. 급기야 생리대로 댈 것이 없어 하수구에 쭈그려 앉아 피를 흘려보내는 대목에서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여자로 태어난 설움이 한꺼번에 북받쳤다. 아이는 부족한 돈을 아끼고 아껴 생리대를 살 때마다 자궁을 뜯어내고 싶다고 했다. 마치 내 살점이 뜯겨나가는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은 여자에겐 더욱 가혹하고 치명적이다.
이 책은 ‘강남역 사건’과 같은 사회적 이슈가 될 만한 심각한 성폭력과 성차별을 다루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불편한 진실들이 어떻게 여자들의 삶을 힘들게 해왔는지 보여준다. 약자에게 가해지는 강자의 위악과 폭력, 가족 사이에서조차 주고받는 수많은 상처들이 삶을 어떻게 옭아매는지 보여준다. 당하는 사람들은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파닥일수록 더 깊이 빠져든다. 사실 그 폭력과 억압의 경계도 삶속에서는 무척 모호하다. 물리적인 경우도 있고 내면의 상처만 주는 경우도 있다. 보이는 폭력은 최소한 겉으로 말할 수는 있다. 더 심각한 건 드러나지 않는 그러나 결코 작지 않은 폭력과 억압이다. 바로 그 경계에서 남성들은 모른 척 우위와 특권을 누렸고 여성들은 억눌리고 고통당했다.
책을 읽으며 그동안 왜 힘들었는지, 어디부터 어긋났는지 나와 그녀들의 삶을 볼 수 있게 됐다. 여자로 태어난 순간부터 어그러지고 뒤틀려 있었다. 균형이 맞지 않는 시소에서 무거운 상대를 올리는 건 늘 버겁고 힘들다. 밀어 올리는 걸 멈추는 순간 삶은 끝난다. 이 책은 균형이 맞지 않은 시소 위에 올려 진 여자들의 목소리다. 책을 통해 삶의 여러 국면 속에 마주했던 막막함과 아득함을 들여다보면서 공감 자체만으로도 나는 일말의 해방감을 느꼈다.
책을 읽기 전과 후 나는 조금 달라졌다. 그동안은 남성중심주의가 뿌리깊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주의나 페미니즘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현실과 일상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다. 책을 읽으며 독버섯처럼 사회 곳곳에 퍼져 있어 잘 드러나지 않은 채 여자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했던 그 모든 모순과 불합리들이 눈에 보였다.
생리혈을 하수구에 흘려보내는 여학생을 보며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생리대 살 돈을 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 성적 수치심을 만든 근원, 살 돈이 없는 경제적 환경, 최소한의 존엄도 보장 받지 못하는 사회 구조, 사회와 가족에게조차 외면당하는 여성의 인권 같은 것들이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고 고민되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인권 확보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혁명이 되길 바라진 않는다.
인간은 선과 악, 법과 도덕, 양심과 윤리, 그 모든 경계에 선 존재다. 경계가 모호할수록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삶의 진실은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요구한다. 제대로 보고 인정하는 일은 외면해온 남자에게도 덮고 눌러왔던 여자에게도 쉽지 않다. 정희진 여성학자는 칼럼에서 말한다. 바라는 것은 ‘여성 폭력의 근절이라기 보다 피해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이제 그 불편한 진실의 모습을 드러낼 때다. 수많은 모순과 불합리 속에서도 ‘공동의 삶’이라는 가치를 실현해나가는 것이야말로 모두의 의무다. ‘진정한 삶’이란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포기할 수 없는 유일한 가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