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제나 바람처럼 Oct 21. 2024

조금 다르게 보는 법

국화축제를 다녀와서

  

이상기후로 가을 폭우가 예보된 주말, 어제는 정말 큰 비를 몰고 오려는 듯 아파트 뒤쪽 숲속 나뭇가지들이 심하게 흔들렸다. 어느새 바람이 을씨년스럽고 가을이 성큼 깊어진 느낌이었다. 오늘은 어제 바람이 세게 불어서인지 창밖으로 맑고 환한 햇살이 고개를 들었다. 이런 날씨를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우리 부부는 지난번 가보자던 국화축제에 가보기로 했다.  


   

차로 사십 분 정도 달려 축제 행사장에 도착했다. 주차하고 걸어가는데 안내표지판이 잘 눈에 띄지 않아 지도를 검색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가는 쪽으로 무작정 따라갔다. 곧이어 행사장을 가리키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입구부터 왠지 썰렁했다. 대문에는 커다란 초록 탑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위에 어두운 보라색으로 축제 이름이 쓰여 있었다. 눈을 씻고 봐도 글씨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국화가 만발한 축제장을 상상하다가 입구부터 약간 실망스러웠다. 우리는 글씨를 왜 저런 색으로 조합했는지 모르겠다며 안으로 들어갔다.     


행사장 안에는 좁다란 길을 따라 초록 화단이 곳곳에 조성되어 있었다. 가까이 보니 점점이 작은 꽃망울을 감싸고 있는 잎사귀들만 사방에 무성했다. 조금 더 안으로 가니 중앙 무대에서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근처에 특산품 판매장과 체험 코너가 있었다. 우리는 한바퀴 둘러보며 입장티켓에 딸린 쿠폰으로 떡을 몇 개 사고 국화 분재 전시 작품들을 구경했다. 전체적으로 꽃이 별로 없어 대충 둘러보고 서둘러 나왔다. 입구 밖에 있는 횡단보도에서 돌아보니 인도 옆 초록 화단에도 역시나 짙은 파란색 글씨가 세워져 있었다.


     

집에 돌아와 축제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훑어봤다. 국화는 아직 피지 않았지만, 곳곳에 핑크뮬리가 있어 그런대로 예뻤다. 그 순간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아! 꽃이 안 피어서 그랬구나! 대문에 축제 명을 알리는 글씨가 왜 어두운 보라색이었는지, 인도 옆 초록 화단 글씨가 왜 짙은 파란색이었는지 그제야 이해됐다. 노랗게 꽃이 만발했으면 진한 보라색과 파란색 글씨는 너무도 눈에 잘 띄었을 것이다. 축제장을 둘러보는 내내 그 생각을 미처 못했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지나치며 조금만 달리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내가 흘려보내는 작은 것들이 나의 일상을 채운다. 조금씩 다르게 보면 내 시선도 깊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시간은 밀도를 더해갈 것이다.      



축제 글씨를 디자인한 디자이너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물은 가장 진한 공감의 언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