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시간
어제는 모처럼 딸아이가 서울에서 내려왔다. 몇 달 만에 훌쩍 성숙해진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도심 홍대 같은 거리에서 마주칠 법한 이십 대 초반 여자의 모습으로 딸애는 짠하고 나타났다. 옅은 보랏빛이 도는 회색 머리카락이 어깨 너머로 흘러내렸다. 밤새워 일하느라 피곤했는지 머리카락이 유난히 푸석푸석했다.
얼마 전부터 딸애가 일하는 곳은 밤과 낮이 뒤바뀐 곳이었다. 동대문 의류전문상가에서 일하는 딸애는 그곳에서 일을 배우고 싶다고 자원해 들어갔다. 자정부터 이른 아침까지 일하고 퇴근했다.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걸 하고 있어 힘든 줄도 모른다고 했다. 어서 일을 배우고 독립해 쇼핑몰을 차리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사업 자금도 모아야 하고 시스템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열심히 일한다고 했다.
뭐가 됐든 목표를 세우고 가고 있으니 그저 믿어줄 뿐이다. 어딜 가나 잘 적응하고 씩씩하게 지내는 모습이 대견하다가도 사람들에게 치이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아직은 세상 물정 사람 물정을 잘 모를 텐데 딸애는 겁도 없이 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일어나는 중이다. 직접 부딪혀봐야 배우는 거라며 스스로를 거친 세상 속으로 내몬다. 누구도 서둘러 사회에 진출하라고 등 떠민 적 없었건만 아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어서 스무 살이 돼서 빨리 독립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그럴 때면 참견하는 대신 용기를 북돋아 줬다. 스스로 도전하겠다는 걸 말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일이 쉬운 게 어디 있을까. 아이는 때로 힘들다며 하소연을 하기도 하고 며칠씩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이 또한 다 스스로 길을 찾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직접 나서기보다는 한 발 떨어져 지켜보는 편이었다. 그게 정답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아이와 모처럼 어제 고깃집에서 밥을 먹으며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말을 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도록 충분히 들어줬다. 그러다가 버스터미널에 아이를 배웅하면서 짧게 한마디를 건넸다.
“이십 대는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시간이야. 지나야만 알 수 있는 …… 잘 지내.”
그러면서 아이를 꼭 안아줬다. 아이는 돌아서며 어느새 빨개진 눈으로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