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데몰리션》에서
영화 포스터를 보고 액션물인 줄 알았다. 영화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일순간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고군분투기다.
어느 날 갑자기 곁에 있던 누군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그 상실감을 나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하다고 썼다. 세상을 떠난 엄마의 부재는 내게 그렇게 밖에 표현될 수 없었다. 발 딛고 선 땅이 푹 내려앉는 느낌이었고, 나라는 존재마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내 일부가 사라져버린 듯 위태롭기만 했다.
영화 속 남자는 이를 행동으로 표출한다. 남자는 무언가 부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아내의 흔적을 모두 파괴한다.
그렇게 파괴해서 현실이 바뀔 수 있다면, 사고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함께 차를 타고 가던 남자와 아내는 냉장고에 물이 새니 고쳐 달라는 둥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러다 눈 깜짝할 사이 트럭에 받혀 아내는 죽고 남자는 살아남는다. 큰 부상을 입지 않은 남자는 얼떨결에 장례를 마치지만 현실 감각은 돌아오지 않는다.
남자는 무심한 표정으로 병원 자판기에서 초콜릿 바를 꺼내 먹으려 하다가 동전만 삼킨 자판기를 쾅쾅 두드린다. 그러고는 자판기 고객센터에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편지에 자판기 문제 뿐 아니라 그날 하루 자신이 겪은 모든 일을 세세하고 담담하게 적는다. 자신이 사고를 당했고 아내가 죽었으며 초콜릿 바를 먹으려 했지만 나오지 않았다고 구구절절 쓴다. 편지 속에는 남자가 관통하는 현재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어쩌면 남자가 쓴 편지는 생의 난파선에서 보낸 구조 신호인지도 모른다.
남자의 일상과 생각을 자세하게 적어내려 간 편지를 읽은 고객센터 여직원은 글 속에서 깊은 슬픔을 느낀다. 한편으로 남자가 걱정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진다. 여자는 늦은 시간 편지를 읽다가 남자에게 전화를 건다.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된다.
고통과 슬픔을 주체할 할 수 없던 남자는 우연히 길을 가다가 공사장 인부들 작업을 보며 공짜로 해주겠다고 작업에 뛰어든다. 그러고는 망치로 건물을 부수는 일에 온 힘을 쏟는다. 집에 돌아온 남자는 아내의 흔적이 묻은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부순다.
그러다가 아내의 화장대에서 나온 태아 초음파 사진을 발견하고, 장모에게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비밀을 전해 듣는다. 혼란스러운 남자는 아내와 함께했던 시간을 고통스럽게 회상한다. 자신과 아내의 관계를 하나하나 되짚어본 남자는 마침내 결론을 내린다. 자신과 아내는 정말 사랑했었다고.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여자는 남자가 겪는 고통과 상처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해 준다.
아내의 흔적을 모두 부숴버린 남자는 유일하게 여자와 대화를 이어가며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연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를 떠나보낸 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남자는 아내의 기억을 고통스럽게 떠올리며 차츰 현실로 돌아온다. 여자가 내민 실낱같은 끈을 붙잡고서.
우정과도 같은 두 사람의 관계는 상처를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방식을 생각하게 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일은 누구나 마주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상실을 겪는다.
상처의 치유는 공감에서 시작한다. 누군가 내민 작은 손길이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서로 다정하기를, 우리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