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나 카레니나>를 보고
존재를 뒤흔드는 거부할 수 없는 사랑!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사랑과 죽음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영화에서 사랑은 희망과 열정의 원천이지만 동시에 파국과 비극으로 몰고 가는 힘이다. 이 소설은 동명으로 여러 편 영화화 됐다. 그중 1997년 개봉한 소피 마르소가 나온 영화를 다시 봤다. 최근 리메이크된 다른 작품도 있지만 이 작품이 가장 아름답고 가슴 깊이 와 닿는다.
전편을 타고 흐르는 러시아 클래식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최고조로 이끈다. 마치 오페라를 감상하듯 음악과 주인공들 표정만으로도 극적인 감동을 준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이 주요 장면에서 흘러나오고, 시작 부분에서는 1악장이, 마지막 부분에서는 4악장이 감흥을 고조시킨다. 라흐마니노프의 ‘엘레지’는 안나의 불안한 심리를 너무도 슬프고 아름답게 드러낸다.
러시아 왕정 시대, 귀부인과 청년 장교의 비극적 사랑이 펼쳐진다. 안나는 대지주의 정숙한 아내로 8살 된 아들을 두고 안정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편안하지만 열정 없이 무미건조한 생활이다. 그러다 우연히 오빠를 만나러 모스크바에 갔다가 기차역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난다. 오빠 친구인 브론스키는 안나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안나는 이미 결혼한 몸으로 귀족 사회의 편견을 쉽게 넘어서지 못한다. 브론스키는 겉잡을 수없는 열정으로 안나에게 다가간다. 둘이 마주한 자리, 안나는 운명의 힘을 거역하지 못하고, 두 사람은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이들의 소문은 귀족 사회에 금세 퍼지고, 안나의 남편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안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브론스키에게 빠져 들었고, 남편에게 자신의 불륜을 고백하며 이혼을 요구한다. 하지만 남편은 이를 거부하며 외형적으로 결혼 관계를 유지할 것을 강요한다.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기를 임신했다가 유산하고, 브론스키는 몸이 아픈 안나를 데리고 이탈리아로 휴양을 떠난다. 잠시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몇 달 후 다시 러시아로 돌아온다. 두 사람은 안나의 남편이 이혼해줄 때까지 기다리며 사실상 결혼 관계를 이어간다.
귀족 사회의 따가운 시선으로 두문불출하며 아들도 만나지 못하는 안나는 갈수록 초조하고 불안해 아편에 의지한다. 브론스키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자유롭게 외부 출입을 하며 사교계 활동을 이어간다. 불안한 관계를 지속하던 두 사람은 결국 서로 심하게 다툰다. 안나가 브론스키의 어머니까지 비난하는 소리에 브론스키는 격하게 화를 내고 나가버린다.
모든 걸 버리고 사랑을 택했던 안나는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 벼랑 끝까지 몰린 안나는 아편을 마신 후 고통스러워하며 기차역으로 간다. 그리고 철로에 몸을 던진다. 안나의 비극적 소식에 브론스키 역시 모든 희망을 잃은 채 비통해한다. 그 또한 총알받이를 자처하며 전쟁터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두 영혼을 사로잡은 사랑은 비극적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이들의 사랑과 죽음은 무거운 질문을 무수히 남긴다.
사랑은 불완전성을 전제로 하는가.
사랑은 구원인가 파멸에 이르는 길인가.
사랑의 완성은 비극인가.
사랑과 죽음은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는가.
비극적 사랑의 종말은 파멸로 향하는 사랑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모든 걸 변화시키는 시간 앞에 안나는 죽음을 통해 해방을 택했는지 모른다.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사랑, 사회적 편견과 비난, 남편의 구속과 억압, 이 모든 것으로부터.
유난히 눈이 많이 쏟아지는 이 겨울,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 음악과 함께 인간의 삶을 깊이 탐구하게 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