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훌』을 읽으며
어제 샘플 테스트를 하나 끝냈다.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소설처럼 자연스럽게 번역하려고 애썼다. 오늘 아침 번역문을 다시 읽어봤다. 나름 술술 읽히기도 하고 살짝 재미까지 있으려고 한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오늘은 어제 읽다가 놓기 싫었지만 운동갈 시간이 돼서 접었던 『훌훌』의 마지막 장을 읽었다. 두서너 문장 간격으로 자꾸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렇게 가슴을 쿵 치며 이야기는 끝났고 나는 먹먹해졌다. 이런 이야기를 나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웹브라우저에 키워드로 ‘문학 번역’을 쳤다. 주르륵 나온 글 중 한 군데 타고 들어갔다. 즐겨 찾는 카페에 올라온 글이었다.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문학을 사랑해 걸려든 저주가 곧 번역이다.’ 뭔가 한방에 꽂히는 문장이었다. 번역이 어쩌면 조정래 작가가 이야기했던 글 감옥 같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모두 같은 맥락이다.
문학 중 특히 소설 번역가를 검색했다. 너무 감동했던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번역한 번역가를 검색했다. 번역 작품도 있지만 작가가 직접 쓴 책이 있어 미리보기로 열었다.
『아무튼 사전』 - ‘우리에게는 더 많은 사전이 필요하다’
‘나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데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서 비슷한 말을 반복한다. 높은 곳에 손을 뻗을 때처럼, 노래를 할 때 높은음에 한 번에 가 닿지 못해 ‘사랑했지만~’이 아니라 ‘사랑했지므안~’이라고 부르는 사람처럼 더듬거린다. 아니면 마음만 급해서 물에 가라앉지 않으려고 물수제비뜨듯이 혼자 저 너머 발화의 종착점을 향해 달리다 청자의 손을 놓치고 만다. 나는 일부러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늘 사실에 부족한, 어쩌면 진실에 닿지 못하는 말을 한다.
'나는 집 안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을 드높이는 장려한 단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또 내 마음속에 늘 어지러이 떠다니는 감정을 딱 집어 고정해 놓을 단어도 있었으면 좋겠다.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돕고 싶은데 용기가 없어서 돕지 못하고 마음에 남은 짐, 누군가를 현실에서 만났을 때보다 꿈에서 만났을 때 더 반갑고 애틋한 현상, 예전에 내가 저지른 어떤 실수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늘 지금의 일처럼 떠오르는 것 등. 그런 마음을 가리키는 단어들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쓴다면, 나만 그런 것은 아니구나 생각하고 안심이 되기도 할 것이다.’
책 앞뒤 표지와 미리보기가 되는 데까지 읽었다. 역시 단어와 문장이 팍팍 와 닿는다. 그래도 아직 마음이 출렁거려 다시 『훌훌』 작가의 말로 돌아갔다.
‘『훌훌』은 한 입양 가정의 어머니를 인터뷰하면서 시작됐다.
……
소설 속 등장인물의 슬픔이 나의 사연과 맞물릴 때, 우리는 위로를 받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한다. 나만 괴로운 게 아니었다. 유리도 그랬다. 세윤도, 할아버지도, 고향숙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우리에게 닥친 슬픔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듯이 『훌훌』의 그들도 괴로운 일들이 밀려올 때 비켜서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모두 애쓰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나는 가만히 미소 짓곤 한다. 딸과 함께 내 안에 성큼 들어서 버린 불안이 무서워질 때, 나는 딸 옆에 있을 누군가를 상상한다. 내가 딸을 떠난 뒤에도 누군가가 딸에게 손을 내밀어 주리라 생각한다. 『훌훌』을 쓸 때 나는 손을 생각하곤 했다. 친절하게 내미는 손, 당겨 주고 토닥이는 손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촉촉하고 따스한 손이 백 마디의 말, 천 개의 눈빛이 되어 퍼져 나가기를 바랐다.
깨어질 것 같았던 우리의 유리가 훌훌 털어 내고 훌훌 날아가기 시작한 것처럼, 이 소설을 읽은 당신께서도 훌훌 하시기를 바란다. 당신만 힘든 게 아니었다.’
책 뒷표지에 실린 리뷰다.
‘나는 이 작품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쉽사리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의 덩어리들을 어쩌면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저 입을 벌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 유영진(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훌훌』을 읽고 난 내 마음이 유영진 평론가의 말과 정확히 일치했다. 나는 마치 손등으로 눈물을 쓱 닦고 환하게 웃는 ‘유리’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가슴이 뻐근하면서도 하얀 햇살에 눈이 부신 느낌이었다.
그동안, 남들도 다 그래, 그냥 받아들여. 별 수 있어? 그대로 사는 거지 이런 체념이 싫었다. 내 슬픔과 고통은 내 식대로 토해내고 싶었다. 그러면 나도 훌훌 털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럴수록 늪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어디서 물꼬를 터야할 지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만 들끓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감정, 특히 슬프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공감할 때 홀가분해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토록 절묘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문장에 감탄했다. 예리하고 정확하게 감정의 결을 짚어내는 작가의 글이 마음을 치유하는 처방전 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아플 땐 이런 증상이니 이렇게 해보라고.
좋은 작품을 읽으며 차츰 내가 어떤 글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번역이든, 내 이야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