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치원을 떠나며1

일본의 교육시스템에 대한 단상

by 너 거기서 뭐하니

일본에서의 조금은 단조로운 생활이 5년에 가까워질 무렵, 생후 6개월 무렵에 접어들 즈음 함께 일본살이를 시작한 아들이 넨츄상에 접어들었다. 일본의 유치원 학제는 넨쇼年小, 넨츄年中, 넨초年長로 학년이 올라간다. 넨츄상은 유치원 3년 과정의 중간 학년에 해당하는 나이로, 우리 아이는 집 근처에 있는 구립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다.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다닐 무렵에 사귄 동네 일본 엄마가 귀띔해준 바에 따르면 공립유치원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은 공무원으로 더 어려운 자격 시험을 통과해야 하므로 수준이 더 높은 경우가 많다고 했다. 마침 집 근처에 거주 구에서 단 하나 남은 구립유치원이 있었다. 공립유치원은 10만엔에 달하는 입학금이 없고, 기타 잡비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그 곳은 마침 한 학년이 20명이 채 안되는, 규모가 작은 유치원이었다. 아이 한명당 선생님의 손길이 더 미칠 수 있다는 점이 커다란 장점으로 다가왔다.


일본의 유치원에도 여러 결이 있다. 사립 소학교 입시준비에 도움이 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립 유치원이 있는가 하면 일체의 문자 교육 없이 놀이를 통한 배움을 지향하는 노비노비(한국말로 하면 놀자놀자 쯤인가?) 유치원이 있다. 그리고 그 중간쯤을 지향하는 유치원들도 있다. 구립유치원은 보통 노비노비 쪽이었는데 무, 감자를 캐러가고 아이 스스로 어떤 놀이를 할건지 결정하게 하는 등의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해주어 나의 유아 교육 철학과 일치했다. 아이는 매일 매일 즐겁게 유치원을 놀러갔다가 꼬질 꼬질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운동화 속에는 늘 모래가 수북했다.


전반적으로 유치원은 우리 부부의 기대에 부응해 주었고 우리는 꽤 만족하고 있었다. 문제는 소학교를 기점으로 그러한 놀이를 통한 교육은 자취를 감추고 한국과 같이 주입식 교육과 입시전략이 전면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마치 “그동안 실컷 잘 놀았지? 자 이제부터는 진지하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자” 하며 태도가 바뀌는 식이다. 우리에게 미뤄두었던 장기적 플랜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아닌게아니라 내년이면 지역 공립 소학교 입학 통지서가 날아들 터였다. 슬슬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거였다. 남편은 한국, 일본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튀니지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대학, 대학원은 프랑스에서 마쳤기 때문에 한국을 비롯 일본의 공교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개념이 없었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봤을 때 교육 시스템도 어련히 훌륭하겠거니 생각하는 것이 역력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 입시에 질려버린 나로서는 혼자서 속이 문드러져가기 시작했다. 그간 안되는 일본어로 살며 이리저리 나름의 조사를 마친 결과, 일본의 교육 시스템이라고 한국보다 나을 것이 별로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모든 것이 수능에 의해 결정되는 한국과는 달리 수험을 선택하는 시점이 다양해서 약간의 선택권이 더 있다는 것 뿐이었다.


이를테면 유명 사립 대학 밑에 있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입학 수험을 빨리 치뤄버리고 내부진학을 통해 수험에서 해방되거나, 최대한 입시를 미루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남은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가 알만한 아주 유명한 사립 대학들의 경우 대학 부속으로 고등학교, 중학교, 소학교, 유치원까지 갖추고 있는데 유치원에 들어가 자리를 맡아두면 큰 문제가 없는 한 대학까지 내부 진학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케이오 유치원을 들어가 학비를 꼬박 꼬박 내고 일정 성적을 유지한다면 케이오 대학에 큰 문제없이 입학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에스컬레이터 시스템이라고 한다.

모두가 어리버리한 유아 시절에 ‘쉬운 입시’를(중학생, 고등학생 대상 수험에 비해 쉽다는 거지, 상대가 유아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쉽다고만 볼 수 없다) 준비시켜서 미리 유명 대학의 자리를 맡아두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률도 치열하고 유명 사립학교들인 만큼 대학까지의 학비를 감당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 중간쯤을 선택할 수도 있다.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소학교 4학년 즈음부터 중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중고일관교라는 곳을 지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등학교를 올라갈 때 자동 내부진학이 되므로 고등학교 입시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아주 어린 아이에게 입시 준비를 시키는 ‘짠한’ 경험을 피할 수 있고 고등학교때 입시를 치르면 선택지가 적어지기 때문에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케이스로 보였다. 물론 수험을 하기 위해서는 주켕(‘수험’의 일본 이름) 학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 금액도 상당하다.


분명히 뭔가 선택권을 주는 것 같이 보이지만 무엇하나 흔쾌히 선택할 것이 없었다. 누군가 ”동전 앞면이 나오면 내가 이기는 거고, 동전 뒷면이 나오면 너가 지는 거야.“라고 제안하는 느낌이었다. 과연 선택권을 더 주고 있는 것은 맞나? 생각해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가 하면,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자유지만, 그 선택을 내리는 시점은 자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아이가 어릴 때 어떤 길을 갈지 선택해야 하므로 그 결정 과정에서 학습 주체인 아이의 의견을 반영하는 일 역시 불가능함은 물론이다.


혼자서 끙끙댈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일본의 소학교를 보냈을 때 우리에게 펼쳐질 미래에 대해 알려주고 함께 고민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히 잘 나가는 일본이니 교육 시스템도 그에 부응하겠거니 하는 환상을 박살내 주는 것이 급선무였다. 마침 남편은 일본의 유치원과 그간 부대끼며 교육 현장에도 스며든 일본 사회 시스템의 경직성에 대해 슬슬 불만이 피어오르던 시기였기도 했다.

많은 대화가 오가며 공유한 일본 공교육을 이용했을때 우리에게 생길 문제점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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