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포트레이트와 호밀밭의 반항아.
최근에 인상 깊게 본 영화 두 편이 있었다. 둘 다 실존했던 예술가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들이었다. 하나는 자코메티의 삶을 다룬(정확히는 후반기의 자코메티의 삶) 파이널 포트레이트와 다른 하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유명한 샐린저를 다룬 호밀밭의 반항아였다. 그림과 글. 둘 모두 내가 사랑하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러니 안 볼 수가 있나! 맨 처음에 본 것은 파이널 포트레이트였다. 영화 시작할 때 영상 제공에 영화배우 소지섭 씨의 이름이 떠서 조금 놀란감이 있었지만 그가 예술영화에 관심이 많아 국내 개봉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관람을 했다.
파이널 포트레이트는 1964년 파리에서 당시 이름난 화가였던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그의 그림모델이었던 제임스 로드의 이야기가 실린 '작업실의 자코메티'를 토대로 만든, 그들 사이의 17일간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다.
자코메티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괴짜 이미지가 있는 화가인데, 배역인 '제프리 러시'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그의 삶에 잔뜩 찌든 자코메티의 연기는 자코메티를 실제로 만났을 리 없는 내가 보아도, 아! 화가 자코메티가 진짜 저랬을 거 같다고 느꼈을 만큼 좋았다. 세트로 만든 자코메티의 작업실 또한 그의 이미지와 매우 잘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그림의 모델이자 영화의 원작이 된 '직업실의 자코메티'의 저자 제임스 로드 역으로 나온 '아미 해머'. 이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나왔던 배우였던지라 어떤 배우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정말 감탄했다. 영화의 특성상 클로즈업 샷을 많이 보여주는데, 클로즈업할 때 그 얼굴의 비율은 그야말로 완벽한 남자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패션모델 못지않게 힘들고 피곤한 직업이 그림모델인데,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움직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바로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 예전 미술학원에서 미술을 배웠던 나도 친구들을 상대로 모델을 해 본적 있는데, 그때 자세도 묘하게 잡아서 1시간 30분 동안 그 자세를 유지했더니 다리에 쥐가 나서 죽을 뻔한 경험이 있다. 영화 속 아미 해머에게 얼마나 공감을 했는지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대사가 몇 개 있는데, 자코메티가 제임스 로드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한 말들이다.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해. 그러려고 노력하는 거지."
"초상화를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해.""그리고 깨알 같은 대사 Oh! Fuuuuuukkkk! 까지."
파이널 포트레이트 시점의 자코메티는 이미 그 본인 그림의 예술적 기술이 원숙했던 말년의 자코메티였다. 영화 내에서도 나오지만 그때 당시에 이미 카메라가 나와 있었던 시대였다.
카메라가 나와있다는 소리가 무슨 소리냐 하면, 그 이전까지 우리가 아는 고전 미술의 시대가 종말을 맞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영화 내에서 제임스 로드가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장면이 가장 좋았고 의미심장했다. 자신을 그린 그림을 카메라로 찍는다는 것.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을 이야기지만, 예전 화가들의 역할이란 것은 눈으로 보는 풍경들을 그대로 화지에 옮기는 마치 지금의 사진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궁에는 전속 궁정화가도 있었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수많은 화가들이 풍경화를 남겼다. 그것은 오로지 화가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사진기의 발명으로 한번 번쩍! 하기만 하면 자신의 본 풍경이 담기는 기계가 생김으로 인해서 화가들은 설자리를 잃었다.
그래서 화가들은 다른 방식으로 뻗어나갔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철학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른바 자신만의 '개성'을 찾는 데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뒤상, 마티스, 피카소 등이 그러했듯이.
이런 점에서 자코메티의 저 대사는 참으로 의미심장하기 짝이 없던 것이다. 물론 자코메티 정도의 화가라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말년의 피카소가 그러했듯, 일반적인 풍경화들을 못 그린 것이 아니다. 길거리의 풍경을 똑같이 그릴 순 있지만, 그렇게 되면 그게 자코메티의 작품인지 지나가던 길거리 화가 아무개의 작품인지 명확하게 구별이 안된다. 한 마디로 '차별화'가 없는 것이다. 개성이 없는 그림을 그릴 것인가? 화가의 의도에 맞게 그릴 것인가? 사이에서 화가 본인의 가치관에 맞게 그림을 그리자니 그것은 완성된 초상화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말년의 자코메티에게 있어서 있는 그대로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연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초상화(?!)는 모순이니, 그림을 완성할 수도 없다는 그의 말도 맞는 말이 된다.
날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하신 말 중에도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그림의 완성이란 것이 있을까. 나 역시도 그림을 그리며 수없이 생각한 것이지만, 항상 최종 결과물을 보면 아쉬움이 남았다. 언제나 부족한 부분만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물론 결과론적인 의미에서의 완성된 그림이란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어느 화가나 그렇듯이 화가 본인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그림은 많지 않다.
그가 수도 없이 Fuck! 을 외치며 고뇌했던 것도 아마 저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 감히 유추해본다. 완성도 할 수 없고, 자기 성에도 안 차는 그림을 계속 물고 늘어지는 것은 화가와 모델 모두에게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가 없는 그림은 없듯이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작품은 세상에 나오기 마련이다. 보면서도 과연 이 영화의 끝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는데, 조금 싱겁게 끝났다. 예상대로 작품은 나왔고, 그렇게 영화도 끝났다.
결과적으로 내게 이 영화는 한때 미술을 하면서 고민했던 것들과 그 시간들을 다시 떠오르게 해주는 추억의 영화였다. 아마 전국의 미대생 분들이 봤다면 영화를 보면서 과제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