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LOWER IS NOT A FLOWER.

류이치 사카모토와 르네 마그리트. 발상의 전환과 틀 깨기.

by Erebus


류이치 사카모토 하면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다 아는 음악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음악가이자 수많은 명작들의 ost를 담당하여 듣기만 해도 아! 이 음악~이라고 할만한 곡들을 여럿 남겼기 때문이다. 굳이 예시를 열거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중에서도 난 특히 playing the piano의 수록곡이자 이 글의 제목인 A FLOWER IS NOT A FLOWER라는 곡을 제일 좋아한다.


꽃이 꽃이 아니다. 찾아보니 당나라 당대 시인 백거이의 花非花(화비화)의 첫 구절에서 따왔다는 듯하다.


花非花, 霧非霧.(화비화무비무)
꽃이되 꽃이 아니고, 안개이면서 안개가 아니다.
夜半來, 天明去.(야반래천명거)

한밤 중에 왔다가 날이 밝으면 떠나가니
來如春夢幾多時.(내여춘몽기다시)
봄 꿈처럼 살짝 와서 잠시 머물다가
去似朝雲無覓處.(거사조운무멱처)。
아침 구름처럼 사라지니 찾을 길이 없어라.


라는 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제법 곡조와 맞는 시 같다. 그러나 내가 이 연주곡을 들으며 생각했던 사람은 당나라의 백거이가 아니라, 서양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화가. 르네 마그리트였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중에 이런 그림이 있다.

파이프 밑에는 프랑스어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고 쓰여 있다.

누가 봐도 파이프인 그림을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고 하다니. 이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미셸 푸코의 해석에 따르면 이것을 파이프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인식론적 관점 때문이라고 한다. 저 모양이 파이프이기 때문에 파이프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마그리트에게 있어서 저것은 파이프가 아니라 단순한 물감 덩어리의 무언가 일 수도 있다. 또 저것이 파이프라고 불릴 이유도 없다. 저게 파이프라는 보장은 오로지 우리의 인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 형태를 사과라고 부르든 컴퓨터라고 부르든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저런 모양의 형태를 파이프라고 부르기로 했기 때문에 파이프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상의 모든 시작은 인식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무언가를 구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의 인식은 틀에 박히게 된다. (정확히는 사회적인 틀 안에.)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이런 나의 인식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파이프이되, 파이프가 아니다. 꽃이되, 꽃이 아니라는 백거이도 마찬가지다. 시만 보면 백거이가 대체 무엇을 묘사하려 하였는지 알기가 힘들다. 백거이 하면 명쾌하고 직관적인 시풍으로 유명한 시인인데, 그의 평소 시풍과는 전혀 다른 시를 남겼다. (시의 정확한 해설은 없다고도 한다.) 미셸 푸코적 관점에 따르면, 저 시도 르네 마그리트의 그것과 같은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도.


세 작품 모두 있는 그대로를 보지 않고 발상의 전환을 하여 인식의 한계를 깨트려주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언제나 놀라운 작품으로 남아있다. 래서 듣거나 볼 때마다 뭉클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당사자들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고서야 진정한 답을 찾긴 어렵겠지만. 나는 이러한 작품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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