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괴물의 아이'를 봤습니다. 사실 평소에도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감독이라서 전작인 늑대아이, 썸머워즈,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열심히 봤던 사람 중 한 사람인데...아무튼, 이 작품을 다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가? 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답이 나올 수 있었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는 사회성과 정체성이라는 두 가지 답이 나왔습니다. 전작인 늑대아이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아니 이번 작은 제목부터가 그것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죠. '괴물의 아이' 말 그대로 사람이 아닌 괴물의 아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하죠. 괴물이 낳은 괴물의 자식을 말하는가? 그건 아닙니다. 주인공인 렌(큐타)는 엄연히 사람이거든요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괴물 손에 길러지게 됩니다. 그래서 괴물의 아이인 것이죠.
엄마는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아빠는 행방불명인 상태에서 거둬주겠다는 친척들의 도움을 뿌리치고 집을 나와 사는 렌은 어느 날, '쿠마테츠'라는 괴물을 만나서 그와 함께 같이 살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괴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쿠마 테츠는 자신이 수장이 되기 위해서, 큐타를 제자로 받아들이게 되고 둘은 삐걱삐걱하면서도 잘 지내게 됩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후, 청소년쯤 된 큐타는 우연한 기회에 다시 사람들이 사는, 그러니까 자신이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가는 문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곳에 발을 들이게 되고 거기서 카에데라는 고등학교 소녀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와 만나면서 문자를 읽히고 공부도 하고 책을 읽게 되는데, 이 책의 이름은 '백경(白鯨)'. 작중 내내 나오게 되는 '모비딕' 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성이라는 문제가 튀어나오는데, 큐타는 쿠마테츠를 만나고 나서는 쭉 괴물의 세계에서 살게 됩니다. (작중에서 인간의 세계와 괴물의 세계는 나누어져 있지요) 쿠마테츠와 만나서 하는 것은 오로지 강해지기 위한 수련뿐! 솔직히 말하자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진 않는 것들이지요. 물론 타타라나 햐쿠슈보와 같이 도움을 주는 좋은 괴물들도 만나지만, 그들이 큐타를 도와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적 역할일 뿐입니다. 큐타가 카에데를 만나 공부를 하게 되면서 인간이라면 당연히 익혀야 할 사회에 대한 것들을 배워나가게 됩니다. 즉, 우리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배우는 것들을 말이죠.
사회학과 심리학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인간의 사회화'입니다. '사회화'를 거치지 못한 사람은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특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실제로, 야생에서 자란 소녀를 박사팀이 거둬들여서 사람답게 살아보게 노력하였으나 결국 말도 별로 배우지 못하고 며칠이 지나 결국 죽어버린 사건은 다들 아실 겁니다. 사회화라는 게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요.) 쉬운 예로, 스타크래프트 테란 종족의 마린, 파이어뱃 유닛은 원래 범죄자들입니다만, 테란 내에서 교육을 거쳐서 강인한 해병인 마린과 파이어뱃이 되는 일종의 사회화를 거치게 된답니다. 물론 범죄자들의 교화를 그렇게 잘하는 테란이 대단한거지요.
작중에서 큐타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해 유치원생의 지식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중에서는 빠른 시간 묘사로 어느새 검정고시까지 칠 수 있을 수준으로 됩니다만..! (카에데의 일타 강사급 지도력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큐타는 카에데의 도움으로 인간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죠. 여기서, 인간적인 사회화를 거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중간에는 행방불명 된 줄 알았던 아빠와도 만나게 됩니다. 아빠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묘사는 안 나오긴 합니다만, 어쨌든 만나죠. 그리고 큐타는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해 화를 냅니다.(그럴 수밖에 없죠! 본인이 말을 안 했거든요) 아버지와 살 생각을 하는 큐타는 쿠마테츠와의 세계에서 갈등을 합니다. 쿠마테츠와의 시간은 자신의 생에서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으니까요
여기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나옵니다. 괴물의 손에서 길러진 자신은 과연 괴물의 아이인가 아니면 인간의 아이인가 하는 그 정체성 말이지요. 고민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큐타의 나이도 그런 생각을 할 만한 나이거니와, 죽은 줄 알았던 아빠가 살아있다니, 더욱 그러하겠지요. 여기서 반대인 대척점에 있는 존재는 쿠마테츠의 라이벌로 나오는 이오젠의 아들, 이치로히코 입니다.
히코도 똑같이 이오젠의 손에 거둬서 키워졌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아버지인 이오젠처럼 코가 길어지고 뿔이 나오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고, 아버지에게 질문을 하지만 이오젠은 그저 너는 나의 아들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내 아들이라는 애매한 말로 그 모든 것을 피해나갑니다.(물론 이오젠의 태도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만, 본질적인 히코의 의문에는 결코 답이 될 수 없는 것이지요) 히코는 그런 이오젠을 무조건 믿고 언젠가 자신도 아버지처럼 멋진 존재가 될 것을 다짐합니다. 영화의 맨 처음 앞에서 수장 이야기가 나오긴 했습니다만, 수장이라는 것은 괴물 세계에서 최고의 존재쯤으로 인식되는 것으로 토끼인 수장이 차기 수장을 뽑기 위해 두 후보생을 지정했는데, 그 둘은 이오젠과 쿠마테츠 이었습니다.
그들은 대결을 해야 하고, 그 대결에서 이긴 사람이 수장이 되는 그런 것이지요. 이오젠은 힘 빼고 모든 면에서 쿠로 마츠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후보고, 쿠마테츠는 힘 빼면 남는 게 없는 후보이지만 큐타를 제자로 만나게 되면서 큐타와 쿠마테츠는 서로가 서로의 솔메이트가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큐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실, 이 갈등이 무겁게 묘사되거나 하지 않습니다. 결말 부분에 가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급의 전개로 인해 말이죠)
이는 전작인 늑대아이에서도 동일하게 나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쿠마테츠가 큐타의 정체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만, 작중에서 나오는 대사인 '자신의 갈 길은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라는 말에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어떤 길을 가든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쿠마테츠에게도 큐타라는 존재는 매우 큰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 티격태격 하긴 했어도 살아온 세월이 있지 않습니까? 큐타와 쿠마테츠는 스승과 제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 같은 사이이거든요.
시간이 흘러서, 수장의 자리를 결판내는 자리에서 쿠마테츠가 이기게 되고, 아버지인 이오젠이 진다는 결과를 상상할 수 없던 이치로히코는 흑화 하게 됩니다. 쿠마테츠에게 부상을 입히고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는 악에 뒤집어 씌어 인간세계로 사라집니다.
큐타는 그런 이치로히코를 막으러 가게 됩니다. 악에 물든 히코는, 엄청난 힘으로 시부야를 파괴합니다. 이때 그의 힘으로 나타나게 되는 형상이 바로 '고래(백경)'입니다. 왜 고래의 형상이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큐타가 카에데를 만나서 못 볼지도 모르니 이 책을 가지고 있어달라고 부탁하는 와중에 히코와 마주하게 되고 둘은 도망치다가 그 책을 놓치고 맙니다. 그때 떨어진 책을 본 히코와 함께 그의 힘은 고래로 형상화하게 됩니다. 고래는 어떤 의미일까요.
원작 모비딕에서 고래는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공포의 상징으로 나오게 됩니다. 인간이 감히 어찌할 수 없는 그런 것으로 그려지는 것이지요. 히코의 불안한 정체성은 결국 자기 자신을 좀먹는 것이 되었고, 악에 사로잡히게 되는 결과를 만들어버립니다. 고래는 그 혼란한 정체성의 상징입니다. 히코에게 있어서 거대한 공포 같은 것이지요, 게다가 히코는 인간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 나오지 않습니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 다시 이오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파도는 거세고 무섭습니다. 그야말로 두려움 그 자체지요
결국, 이 거대한 힘 앞에 큐타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자신을 위해 힘이 되어주는 ('가슴속의 검'이 되어주는) 쿠마테츠가 전대 수장이었던 토끼 수장님의 신이 될 기회를 양보 받아서, 큐타를 위한 큐타만의 정령신이 되어줍니다. 이때 나타나는 형상은 불이며 고래와는 반대되는 형상이지요. 불은 뜨거운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가운 파도와는 다르게 따뜻하고, 가슴속의 검이라는 말도, 다르게 말하면 심장 속의 검이라는 뜨거움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쿠로 마츠의 도움으로 큐타는 히코를 물리치게 되고 히코는 기억 상실한 채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큐마는 현실세계에서 해피엔딩을 맞지요.
앞에서 말한 정체성의 의미가 없었던 것은 이러한 것으로 쿠마테츠는 큐타의 가슴속에 영원히 사는 검으로 남았고, 괴물의 세계와는 그것으로써 마침표를 찍게 되는 것입니다. 아빠와 사는 세계에서 전혀 문제가 될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아까 말했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이것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쿠마테츠는 큐마와 함께 살게 되었고, 아빠와의 관계도 좋아졌으며, 카에데라는 여자 친구까지 사귀게 되었지요. 괴물의 아이는 어두운 내용도 아니고 감독이 전하고자 한 바도 잘 전했습니다만, 어쩐지 결말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끝나버리는 느낌은 지울 수 없군요. 12세 이용가인만큼 나쁘지 않은 결말이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