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인 이야기.

당신의 목소리의 형태는 어떠한가요?

by Erebus


몇 년 전, 나는 한 만화를 보고, 깊은 여운에 빠져 한동안 멍해진 기억이 있다. 그 만화는 아주 짧은 단편으로 어느 잡지에 올라와 있었는데, 내용은 신선하다 못해 뒤통수를 강하게 때려 버리는 수준이었다. 포스터의 저 그림들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학교폭력과 왕따에 대한 문제가 주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여자 주인공 니시미야 쇼코는 청각장애인이다. 장애인은 현실에서도 흔한 존재는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다. 그림체만 보고 청춘 로코물을 생각했던 나의 마음을 산산이 부숴버린 설정이었다. 영화의 포스터에서도 느껴지듯이, 학교폭력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이지 않은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실적이게,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쇼코는 왕따를 당한다. 이유는 예상하듯이, 그녀가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청각장애를 가진 쇼코기에 세상과의 소통 방식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수화를 하거나 몸을 쓰는 보디랭귀지를 하거나 공책에 글을 적어 필담을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무난한 필담으로 세상과의 소통을 한다. 성인의 입장에서 그것은 조금 불편하지만 문제 될 것은 없는 방식이다. 그러나 작중 초등학교 6학년들에게는 퍽 불편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절대로 이것이 학교폭력의 정당화가 될 수는 없다.)


흔히 어릴 때는 남들과 다른 것, 혹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반발심리가 있다. 그것은 아직 덜 배워서일 수도 있고, 타인과의 관계성을 생각하지 못해서 일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쇼코는 왕따를 당하게 된다. 그것은 쇼코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남자 주인공은 이시다 쇼야. 처음에는 전학 온 쇼코에게 큰 관심 없는 시큰둥한 학생에 불과했다. 그 나이 때의 또래가 으레 그러듯이 장난기가 많고 노는 것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당시만 해도 절친이었던 두 명 친구와 다리 위에서 강으로 뛰어드는 담력 시험'을 즐기는. 그러나 쇼코의 전학은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준 계기가 된다. 처음에는 어디까지나 장난에 불과했을 것이다. 적어도 본인 입장에서는. 쇼코가 쓰는 보청기(5개월 동안 8개를 잃어버렸는데 그 값만 170만 엔. 현재 기준으로 약 1700만 원어치의 고가다.)를 빼앗아 친구들과 장난치고, 무방비 상태에서 강제로 빼앗아 귀에서 피가 나오게 하는 (피는 의도한 것이 아니었지만) 등의 것이었다. 그러나 쇼코의 어머니가 지속된 보청기 분실을 학교 측에 알리고 학교폭력을 의심하는 순간부터 쇼야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쇼코의 어머니로부터 항의를 받은 교장선생님은 학교폭력의 주동자를 찾게 되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증언으로 쇼야가 학교폭력 즉, 왕따의 주동자가 되어버린다. 그 후로 쇼야는 쇼코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사실 영화에서는 매우 순화된 편이긴 한데, 원작에서는 영화보다 훨씬 더 사실적이고 잔인한 묘사가 나온다. 목소리의 형태 원작은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본 사람이라서 영화가 정말 무난한 수준으로 영화적으로 잘 표현했구나 하고 느꼈다. (사족이지만, 그런 점에서 '너의 이름을'을 잇는 제2의 애니라는 정말 누가 생각했는지 절로 몸서리가 처치는 표현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쇼야가 그렇게 같이 왕따를 당하는 와중에 그의 실내화가 사라지고 슬리퍼만이 실내화함에 남아있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자 가뜩이나 쇼코 때문에 왕따를 당한다고 생각하던 쇼야는, 쇼코를 의심하게 되고 어느 날, 자신의 책상을 열심히 닦던 쇼코를 발견하고 따지게 된다. 후에 밝혀진 사건의 진범은 사실같이 '담력 시험'을 했던 친구 중 한 사람이었지만, 당시에는 그 사실을 쇼야도 쇼코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재수 없던 쇼코를 쇼야는 몰아붙이게 되고, 언제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넘어가던 쇼코도 감정이 폭발하여 둘은 결국 몸싸움을 하고 만다.

이 장면은 원작에서나 만화에서나 주목할만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쇼코는 언제나 배시시 웃기만 한다.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그런 인물이다. 비단 장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통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의 최후의 수법은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체념하는 것이다. 거기서 깊어지면 진정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지만. 그리고 작중에서 쇼코가 가장 많이 말하는 말 중 하나는 미안하다는 것이다. 그게 본인의 문제든 아니든 쇼코는 미안하다고만 한다. 어찌 보면 그것도 일종의 방어기제다. 아무튼 이러한 쇼코가 처음으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낸 첫 장면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로지 쇼야 만이 보았다. 쇼코는 결코 바보 같거나 착해서만 웃는 타입이 아니라 속으로 묵히고 묵혀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휴화산 같은 타입이었다.

이 몸싸움 사건이 일어난 뒤 쇼코는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게 되고, 쇼야를 향한 아이들의 폭력은 더욱 심화만 된 채로 6년의 시간이 흐른다. (사실 쇼코가 위에서 열심히 쇼야의 책상을 닦아주는 이유는, 쇼야의 책상에 쓰인 욕설들을 쇼코가 닦아주었던 것인데, 쇼야는 그 사실을 쇼코가 전학가게 되어 자신이 스스로 닦을 때 처음 알게 되고 쇼코의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된다.)

6년의 시간이 흘러서도 여전히 쇼야는 왕따이다. 당시 같은 반에 있던 아이들이 6년의 시간이 흘러서도 왕따의 가해자임을 흘리고 다녔던 것이었고, 쇼야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포기한 상태였다. 늘 혼자였지만 쇼코에 대한 미안한 감정만은 가지고 있었고 그러나 용기가 없어 다가갈 수 없던 쇼야에게 같은 처지의 나가츠카가 나타나게 되고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친해진 두 사람은 나가츠카의 무시무시한 추진력으로 쇼야는 쇼코를 만나러 갈 결심을 한다.

작중의 시점은 전부 쇼야의 시점이다. 감정 표현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람도 쇼야이고 오히려 쇼코의 감정은 초중반부만 해도 지나치게 절제되어 있어 알기가 힘들다. 길게 설명했지만, 목소리의 형태의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과거 왕따 가해자였던 주인공이 왕따의 피해자가 되어 왕따를 시켰던 학생에게 사과하고 친구가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바로 '너의 이름은'과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는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너의 이름은'은 그냥 시작부터 판타지지만, 목소리의 형태는 학교폭력과 왕따라는 현실적인 소재를 선택하면서도 동시에 피해자가 된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라는 비현실적인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가해자의 사과라... 현실의 사건에서 그런 일이 있나를 생각해보면 선뜻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더 잘 살면 잘 살았지 말이다. 이런 전개에서 나는 뒤통수를 수없이 얻어맞았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이 아닌 만화적 전개임에 조금 슬퍼졌다. 저 아름다운 그림 뒤에 숨겨진 이 어두운 이야기가 말이다.

또, 작중에서는 남녀 주인공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이기적이고 위선적이지만 겉으로는 모범생 반장 카와이, 쇼코 때문에 반과 자신의 인간관계가 틀어졌다고 쇼코를 싫어하는 우에노,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쇼코의 편이었지만 개인의 무력함으로 결국 곁을 떠나버린 겁쟁이 사하라, 카와이의 남자친구면서 동시에 쇼코의 안티 체제인 마시바(이쪽은 왕따의 원인을 쇼코와는 반대로 가해자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꿈은 교사인데, 그 이유를 생각하면 이 녀석도 정상이라곤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제일 문제적 인물인 안경잡이 담임(무능력하고 의욕 없는 쓰레기 같은 교사의 표본이다. 쇼코가 학교폭력을 당함을 알고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고, 쇼야의 말도 듣지 않고 무작정 그를 주동자로 낙인찍는다.)까지 그 외에도 다양한 사람이 있다.


결국 이 주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관계에서 마음을 전할 수 없는 어려움이고, 내가 보았던 시네마 톡의 김세윤 칼럼니스트의 말처럼, 나는 저 많은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에 속한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솔직히 영화를 보고 찔리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 분의 의견 모두 맞는다고 생각하고 나 역시 동의하는 바이다. 이 작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부재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것을 전부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호기심에 한 번이라도 볼 것이고 만약 영화만을 보고 원작을 보려는 사람이라면 영화에서 보여준 것만을 생각하지는 말아달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그리고 '너의 이름을'을 기대하고 이 작품을 보려면 정말 비추천 하고 싶다. 전혀 같은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원작이든 영화든 이 작품이 가지는 의의는 변하지 않기에,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으면 좋겠다는 모순적인 끝을 맺는다.

사실 원작은 7권 완결로 되어 있고 그 분량을 두 시간 반으로 압축한만큼 중간에 잘린 부분들이 많습니다. 쇼코의 할머니 이야기 그 외에 스치듯 지나간 조연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많이 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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