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

당신의 찰나는 언제인가요

by Erebus


그는 사진작가이다. 공모전에서 대상을 몇 번 수상했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 스스로 사진작가라고 생각한다. -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 그게 사진작가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생각하고 있지만 – 라이카(Leica)를 가지고 사진을 찍어보는 것이 소원이지만, 현실은 보급형 Dslr도 애지중지하는 것이 전부다. 아기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렌즈를 감싸 카메라에 부착한 뒤에, 목에 걸고 집을 나선다. 한가로운 토요일의 5시, 밖의 햇살은 눈부시다 못해 따갑다. 더운 날씨지만 사진을 찍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리라. 거리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길을 가고 있다.


목적지가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고 즉흥적으로 길을 나선지라, 딱히 바쁘거나 급하진 않았다. 일단 사진기를 집어 든 순간, 그는 예술가가 된다. 사진은 그 어떤 예술보다도 ‘찰나’의 미학을 담고 있는 영역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들은 대다수가 ‘역사의 찰나’를 포착한 사진들이다. 누군가에겐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사건의 현장이 사진가들에게는 예술이 현장이 된다. 존경하는 프랑스 현대 사진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래송도 "나에게 사진은 순간과 순간의 영원성을 포착하는, 늘 세심한 눈으로부터 오는 자연스러운 충동이다."란 말을 남겼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그는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자연스러운 반발로 “모든 일상은 예술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예술이 일상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는 말 또한 부정하지 않는다. 생각을 해 보라! 예술가들의 자신의 눈 뜨면서 잠드는 그 모든 순간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산다면, – 물론, 그런 사람이 있을 테지만 – 그것만큼 피곤한 인생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사진기를 들면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을 볼 수 있다. 그것이 길에 흔하게 피는 들꽃이든, 잡초든 벌레든 간에, 평소라면 지나쳤을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찰칵! 찰칵! 찰칵! 사진을 찍는 순간에 나는 셔터 음은 언제나 기분 좋은 소리로 그에게 남아있다. 사진기 몸체에 있는 네모난 프레임 안에선 그는 신이 될 수 있다. 그 모든 풍경을 찍어내는 것은 오롯이 그 자신의 몫이었다. 날이 좋아서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아주 잘 보였다.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가지는, 비 오는 날, 가지 끝에 매달린 물방울만큼 매력적인 존재다. 빛과 그림자가 혼재하는 아름다움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요즘 같이 작은 액정만을 들여다보는 세대들은 더욱 그렇다. 그들은 나무에 붙어있는 작은 무당벌레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그런 점에서 그는 자신의 직업이 누구보다 마음에 들었다.


조금 돌아다니다 보니, 목이 말라왔다. 여분의 물을 챙겨 온다는 걸 깜빡하고 식탁에 놓고 와 버렸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 전망 좋은 자리에 앉은 다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목이 마를 때 차가운 아메리카노만큼 목을 시원하게 축이는 음료는 세상에 몇 되지 않는다. 밖의 풍경을 보며 연신 셔터를 누른다. 커피가 왔고, 풍미를 채 느끼기도 전에 단숨에 마셔버렸다. 차가운 커피는 언제나 금방 마시게 된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랬다.


잠시 사진기를 옆에 놓고, 가방에서 연필과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끄적인다. 그는 사진작가 이면서 동시에 시인이기도 하다.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하는 목적으로 쓰는 것은 아니다. 잠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목적으로 그는 시를 쓴다. 언젠가 그는 등단한 프로 시인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운데, 자신의 시가 부끄러운 것도 있지만, 시를 쓴다고 하는 그 어마어마한 행위가 더 부끄럽다고 말이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보아주지 않는 시를 계속 쓰는 것이 맞는 일이냐고도.


그는 고등학교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였다. 막연히 시는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랬더니 그 시인이 해준 답장이 걸작이었다. 시(詩)적인 것이라는 것은 곧 신(神)적인 것이다. 궁금한 그가 물었다. 대체 그것이 무엇이냐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오늘날에는 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곧 시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마음의 위안을 주는 존재이다. 그러나 당장의 현실에는 쓸모가 없는 것이다. 시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시를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감동을 받고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네 시를 아무도 읽지 않는다 하더라도 너는 이미 시라는 것을 쓰고 있지 않느냐고. 시를 쓴다는 행위 자체로,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을 이미 하고 있다는 것에서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잘 쓰든 못 쓰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 말은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기쁨이 되기도 하였다. 누군가에게 시로 인정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 일이 동력이 되어, 꾸준히 시 쓰는 작업을 해왔다.


시와 사진은 닮아있다. 둘 다 순간을 기록하는 행위이다. 사진이 직접적인 대상을 포착한다고 하면, 시는 그 대상이 직접적이거나 눈에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다르지만 말이다. 시를 쓸 때 대충 쓴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사진을 찍을 때와 같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 생각한다. 마구잡이로 쓰는 것은 일기에나 할 일이기에 그렇게는 할 수 없다. 이따금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그는 여태 찍은 사진들을 본다. 사진들을 보며 생각을 멈춘 뇌를 깨운다. 문득 참 많이도 찍고 많이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다시 종이에 써 내려간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할 준비를 한다. 시계를 보니,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어두워진 거리의 카페 문을 나서는데 누군가에게 전화가 온다. 휴대전화에서 익숙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같이 저녁이나 먹자는 친구 녀석이다. 마침 카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기도 했고 특별하게 할 일이 없는 그는 흔쾌히 받아들인다.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저녁을 먹었다. 소주를 거하게 걸치고 담배를 피운다. 점점 줄어드는 담배를 보던 친구가 몸에도 좋지 않은 것을 왜 피우냐며 핀잔을 준다. 우습게도 그는 흡연자였고, 친구는 비흡연자였다. 담뱃재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담뱃재에는 약간의 불씨가 남아있었고, 약간의 촉매제만 있다면 불을 피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남자는 떨어진 담뱃재를 바라보며 자신이 사진을 찍고, 시를 쓰는 것 또한 떨어지는 담뱃재와 같다고 느꼈다. 옅은 불씨라도 세상에 남겨보고자 몸부림을 치는 그런 모양새였다.


친구와 헤어지고 난 뒤, 남자는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8시. 거리에는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져 있었고, 유독 거리의 구석에 있는 등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백열등이 가운데에 있었고, 그 주변에는 무성한 나뭇잎들이 빛을 친구 삼아 춤추고 있었다. 남자가 술에 취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카메라를 들고 설정을 맞추더니, 사진을 찍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사진을 바라보다가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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