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Drawing)에 대한 광의(廣義).

소마미술관 소화(素畵) - 한국 근현대 드로잉전을 보고.

by Erebus
제목에 쓰인 '소화(素畵)'는 드로잉의 또 다른 말로, 이러한 고민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된다. 소화는 김동인의 소설 <신앙으로>(1930) 등에서 사용된 바 있는데, 당시에는 소묘와 동일한 의미로 쓰였던 것 같다. 그러나 소묘에서 '묘(描)'가 기술적 차원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라면, 소화의 경우 '화(畵)'라는 글자를 통해 보다 높은 창작의 차원을 표현함으로써 더욱 확장된 드로잉의 의미를 담아낼 수 있다.

- 소마미술관 소화(素畵) 전시 팸플릿의 설명 중에서 발췌.


꽤나 예전부터 우리나라 미술계는 드로잉(drawing)에 대해서 그저 단순한 아이디어 스케치 내지는 본 그림을 그리기 전 가볍게 그려보는 에스키스 정도로 취급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행스럽게도 드로잉 그 자체를 독립적인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하는 추세이다.


본래의 드로잉이란 것은 선으로 그려낸 거의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재료에 대한 구분은 거의 없으며 온갖 재료들이 드로잉 재료에 포함될 수 있다. 선이란 것을 그릴 수 있다면 그 무엇이든 가능하다. 현재는 그 의미가 더욱 넓어져서 단순히 그리는 개념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구현화할 수 있으면 그것 또한 드로잉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디오 아트로 유명한 故백남준 선생의 작품은 그 자체로는 선이 아니지만 드로잉이 될 수 있다.


결국 드로잉의 문제는 표현의 문제다.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문제. 작가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느냐의 문제. 그럼 이쯤에서 질문이 하나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림에 있어서 '완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드로잉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는다면 완성에 대한 기준이 있느냐.라는 것.


고전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드로잉은 절대 작품이 될 수 없다. 그러나 21세기를 넘어오면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와 아방가르드, 미니멀리즘, 포스트 모더니즘 등의 다양한 미술 사조의 등장으로 인해 그림이란 개념은 점점 더 그 범위를 확장해왔다. 그 과정의 가운데에서 이 모든 것을 통틀어서 프로세스 아트(Process Art)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프로세스 아트, 한글로 풀어서 쓴다면 개념예술. 즉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관점이 생겨난 것인데 완성된 작품이든 미완성된 작품이든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오히려 그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하나의 예술로 인정하는 것이 생겨났다. 오로지 결과만을 따지는 현대사회에서 결과 못지않게 그러한 행위를 한 과정을 중요시 여기는 반증으로 프로세스 아트는 인정받고 있다.


현대미술에서의 드로잉은 개념예술의 하나로 인정을 받고 있다. 아이디어 그 자체를 예술로 보는 입장에서 드로잉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작품이다. 물론 완성에 대한 것은 전적으로 개개인 작가의 몫이다. 드로잉은 작가의 즉흥적이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드러내는 매체로 충분히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드로잉이 충분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기에, 현재의 많은 드로잉 전시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소화 - 한국의 근현대 드로잉전은 한국의 많은 작가들의 그려놓은 드로잉 300점을 전시해 놓았는데, 하나하나가 그들 화가의 개성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었다. 드로잉이란 것은 작가의 수만큼 다 다르게 나오는 것인지라 보는 재미가 쏠쏠한 좋은 전시였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드로잉 또한 그렇다. 시작이 바로 드로잉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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