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박이소라는 작가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몇 년 전에 아는 화가님에게서 그 이름을 들은 것이 다였다. 으레 궁금해진 나는 곧장 인터넷에 그의 이름을 쳐 보았고, 본명인 박철호보다 박모라는 별칭이 더 유명한 한 남자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언뜻 보기만 했을 뿐인데 그에게서는 진한 예술가의 풍모가 뿜어져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그와 같은 느낌을(정확히 표현하기도 그렇고, 작품이 작가에게서 나왔으니 닮은 것도 당연하겠지만) 주고 있었다.
주로 설치미술을 토대로 활동을 해서 그런지 작품들이 하나같이 컸다. 하지만 내가 더 관심을 가진 것은 그의 작품을 설치하기 위해 그려 놓은 드로잉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 대해 그의 생각을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그가 남겨놓은 드로잉에는 그의 작품에 대한 모든 생각들이 들어있었다. 굳이 직접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게, 어떤 것은 한글로 어떤 것은 영어로 섞여 있었지만 가만히 그 글들을 읽다 보면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보통 작가들마다 성향이 다 달라서 그 드로잉 또한 다 다르지만 어떤 작가들은 간단하게 스케치 정도로만 드로잉을 남기는 한편, 박모처럼 자세하게 남기는 작가들도 있는데, 한 번에 어떤 의미인지를 파악하기 힘든 관람자들의 입장에서는 작가가 따로 남긴 글이나 작품에 대한 드로잉을 읽는 것이 하나의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그것들을 따라가다 보다 어떤 글귀 하나에서 딱 하고 멈춰버리고 말았다. 그 글귀는 "나는 그림 그릴 때마다 이 그림이 딴 사람들 맘에 들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요즘 세상에 가만히 벽에 붙은 그림이 뭘 할 수 있을까 하며 자꾸 한심해한다."라는 글귀였다.
어느 작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작품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도 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특히나 미술의 경우는 주관의 영역이 강한 부분이라 좋다/나쁘다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도 않고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나는 이 작가가 웃기면서도 동시에 그 애환이 서글펐다. 뭔가 하소연하는가 싶으면서도 왠지 모를 자학이 느껴지는 이 글에서 작가가 미술이라는 장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물질과 과학이 판치는 세상에서 인문학이나 예술의 가지는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람들의 교양과 지적 활동을 위한 존재가치는 있지만, 지금 현세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취업이라든지 돈, 생활에 필요한 모든 실용적인 것들에서 정신을 위한 활동은 거의 무쓸모에 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이소는 심장마비로 요절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처럼 그의 작품에서 깨닫는 바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그의 그러한 생각에 대한 고민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가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그를 좋아하고 그의 전시회를 찾아다니는 것 역시 그의 그런 인간적인 면모가 좋아서 그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 그에 대해 궁금한 사람은 지금 당장 그의 이름을 인터넷에 찾아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