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일기: 스파이스 카페, 코란 학교, 마라케시 미술관
Day 1. 첫날 일정
Café Des Épices
카페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하기
Madrasa de Ben Youssef
코란 학교 건물 구경하기
Museo de Marrakesh
마라케시 미술관 관람하기
Moroccan lunch
모로코 전통 음식 먹어보기
마라케시의 첫날 일정은 낯선 이슬람 문화를 만나보는 것으로 계획해보았다.
Captain Berdine
캡틴 버딘
본격적인 마라케시에서의 첫날, 마라케시를 다섯 번째 여행하는 버딘 Berdine이 가이드가 되어주겠다 해서 얘기를 하던 중, 스티븐 Steven이 숙소에 도착했다. 나만큼 모로코 여행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던 스티븐도 우리와 같이 마라케시를 돌아보기로 했다. 먼저 버딘이 가장 좋아하는 카페라며 추천한 스파이스 카페 Café Des Épices에서 커피와 함께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숙소 앞 좁은 골목을 살짝 걸어 나오면 바로 큰 거리가 나왔다. 마라케시의 중심지 자마 엘프나 광장 Jemaa el-Fnaa 과 수크 세마린 Souk Semmarine 전통시장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리는 아주 북적였다. 현지인과 관광객이 함께 거리를 채웠고 그 사이를 오토바이들이 바쁘게 지나갔으며 수레를 끄는 소나 말이 지나간 흔적(그들의 배설물)이 남아 있었다.
모로코에 도착하면서부터 완전 겁쟁이가 된 나는 복잡한 거리에 한발 한발 내딛는 게 무서웠는데 스티븐도 꽤 긴장했는지 눈동자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이런 우리를 버딘이 잘 챙겨주었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될 만큼 마라케시의 길을 익힌 그녀의 당당한 걸음을 따라 우리도 조금씩 마음에 여유를 가져보기로 했다.
샹송과 함께하는 마라케시의 아침
Café Des Épices
스파이스 카페는 분위기 좋은 곳에서 커피와 함께 간단히 아침을 먹기 위해 버딘이 안내한 카페이다. 작은 광장의 향신료 가게들이 카페의 창을 통해서 보였고 카페의 옥상에서는 향신료 시장과 함께 마라케시 메디나에 낮게 깔려있는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만두같이 생긴 달달한 빵과 함께 마신 카페라테의 맛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프랑스어 노래가 흘러나오는 카페와 카페의 열린 창문을 통해 바라본 작은 광장의 모습은 아직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너무나도 낯선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느린 노래들 덕분에 모든 게 평화로워 보였다. 친절한 사람들과 같이했기 때문에 마음이 더욱 편안해진 것 같기도 하다.
샹송과 올드팝이 많이 나왔는데 버딘과 스티븐과 이야기하고 잠시 넋 놓고 듣느라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만 영상으로 남았다.
카페 옥상에서 바라본 마라케시는 낮고 붉은 건물들이 우리 아래로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카페까지 오느라 지나온 좁디좁은 골목들 만큼 빈틈없이 모여있었는데 그 위로는 하얀 위성안테나가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사람들과 오토바이로 북적였던 골목처럼 마라케시의 건물 위도 전선들과 안테나들로 북적였다.
이슬람을 공부하는 곳, 코란 학교
마드레사 벤 유세프
Maderssa Ben Youssef
카페에서 여유로운 아침 시간을 보낸 후 버딘이 코란 학교인 마드레사 벤 유세프 Maderssa Ben Youssef에 같이 가자고 했다.
마드레사 Maderssa는 이슬람교의 고등교육 시설을 의미한다. 마드레사 벤 유세프는 14세기에 지어진 이 학교로 최대 800명의 학생들이 공부했던 모로코 최대의 이슬람 대학이었다. 학교의 이름인 벤 유세프는 12세기 마라케시를 성장시킨 술탄 알리 이븐 유세프 Ali ibn Yusuf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버딘은 우리에게 간단하게 ‘코란 학교’로 이곳을 설명했는데 학교와 기숙사였던 건물의 일부를 직접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건물의 중심에는 안뜰이 있었고 개방되어 있는 테라스가 기숙사와 함께 안뜰을 둘러싸고 있었다. 많은 이슬람 건축물과 같이 안뜰의 한 가운데에는 크고 얕은 못이 있었다.
조각, 타일, 목재 위에 새겨진 이슬람의 기하학적인 무늬들이 건물 전체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라나다의 알람브라궁전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장식들을 볼 수 있어 반가웠지만 학교의 시설들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많이 낡은 탓에 훨씬 화려하고 섬세했던 알람브라 궁전과 비교가 되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화려함과 편안함이 공존했던 곳
마라케시 미술관
Museo de Marrakesh
다음날 벨기에로 돌아가는 버딘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떠났고 스티븐과 나는 마라케시 미술관 Museo de Marrakesh로 향했다. 버딘 없이 단둘이 다닐 생각에 살짝 두려웠지만 연습이라 생각하고 씩씩해지기로 다짐했다.
코란 학교 옆에 있는 마라케시 미술관은 19세기 말 술탄이었던 물라이 메디 핫산 Mulay Mehdi Hassan에 의해 지어진 궁전을 개인 미술관으로 변화시킨 곳이다. 전통 모로코 양식으로 장식된 건물이 아주 아름다웠다. 전체 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안뜰은 전통 모로코 집과 같이 천장이 뚫려 있었으나 현재 미술관에서는 두꺼운 천으로 막아두었다.
건물의 중심으로서 섬세한 디테일들로 아주 화려하게 장식된 안뜰에는 천장의 천을 뚫고 햇빛이 은은하게 들어왔고 아랍어로 부르는 모로코의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뜨거운 바깥과 달리 시원한 미술관에서 전시품들을 아주 천천히 둘러보다가 안뜰의 차가운 타일 위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 미술관에서는 모로코의 가구, 의상, 보석, 무기 등을 볼 수 있었는데 종종 현대 미술 전시나 전통 의식들을 진행한다고 한다. 깔끔하고 쾌적했던 미술관에서 모로코의 예술품도 둘러보면서 더운 날씨를 피해 그늘에서 쉬어갈 수 있어서 너무 만족스러웠던 곳이었다.
상다리 부러지게 가득 먹은 점심
Moroccan Lunch
미술관을 구경하고 나서 점심시간을 훨씬 넘긴 우리는 모로코 전통 음식을 맛보기 위해 거리를 헤매다 어느 한 식당에 들어섰다. 배도 고프고 더위에 지친 우리는 모로코 전통 스타일의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고민 없이 식당 직원을 따라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큰 입구와 너무 넓은 내부 공간을 보고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과하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늦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세팅을 해주며 우리를 위한 메뉴를 추천해 주었고 주문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스티븐과 나는 메인 메뉴 하나를 나눠먹으려 했지만 웨이터는 양이 너무 적다며 꼭 두 개 이상은 주문하는 게 좋다고 했다. 그의 말을 잘 믿은 우리는 카레와 타진을 각각 주문했다. 그런데 기본으로 제공되는 반찬부터 테이블을 가득 채웠고 두 개의 메인 요리까지 양을 보니 최소 4~5명은 거뜬히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타진 Tajine은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 생선 등의 주재료와 향신료, 채소를 넣어 만든 모로코의 전통 스튜이다. 이 요리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흙으로 빚은 그릇인 타진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쿠스쿠스와 함께 자주 먹었다. 향신료도 많이 사용하지 않고 고기를 야들야들하게 요리해서 항상 맛있게 먹었다.
이 식당의 음식 맛이 괜찮았는데 낯선 모로코 전통 음식이라 정말 제대로 된 맛인 건지, 이런 맛이 맞는 건지도 몰랐다. 남기기 아까워서 최대한 노력했지만 결국 반 정도 남겼고 계산한 가격도 모로코의 물가에 비해서는 꽤 비싸게 나왔다. 음식도 나쁘지 않았고 뭐 아주 말도 안 되는 돈을 낸 것도 아니니까 괜찮다 했지만 스티븐과 호갱을 당한 거 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밥을 먹고도 더욱 지친 우리는 터벅터벅 걸어 숙소로 향했다.
아무튼 이렇게 마라케시에서의 첫날은 마무리되었다. 아침에 숙소 밖을 나설 때에는 겁이 났지만 해 질 녘 숙소에 돌아올 때에는 두려운 마음이 훨씬 사라졌다. 마라케시 거리를 돌아다녔을 뿐인데 무언가 큰일을 이룬 것처럼 뿌듯했다. 이때부터 조금씩 모로코에 대한 경계심이 풀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스페인 여행일기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먼저 산 후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스페인 말라가를 시작으로 모로코와 포르투갈을 거쳐 이베리아반도를 100일 동안 여행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났다. 낯선 곳에서 홀로 보낸 시간은 나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고 처음으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주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최고의 여행이었다.
스페인 여행일기에서 그 여행의 추억을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