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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아델 Jan 14. 2021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바르셀로나 쉐어하우스

나의 바르셀로나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는 유럽 교환학생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로 바르셀로나의 쉐어하우스에 함께 모여살게 된 7명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이다. 바르셀로나의 모습과 함께 스페인의 쉐어하우스의 형태를 엿볼 수 있다.


영화에서는 7명이 한 집에 모여살지만 일반적으로는 3명이 제일 많고 집 크기가 조금 큰 경우 4명에서 5명까지 한 집을 쉐어한다. 집을 소유하고 있는 A가 B에게 3년 동안 월세를 받는 조건으로 집을 렌트해 준다. 집 전체를 빌린 B가 자신이 사용할 방을 제외한 나머지를 C, D에게 렌트해 준다. 방을 렌트한 C와 D는 방에 대한 월세를 B에게 지불한다. 세명은 방을 제외한 거실, 부엌, 화장실을 함께 사용한다. 쉐어하우스의 기본적인 운영방법이다.






왜? ¿ Por qué?



수도 마드리드 다음으로 큰 스페인의 메트로폴리탄인 바르셀로나 역시 다른 대도시들처럼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이 가장 큰 문제이다. 스페인의 다른 지방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자리를 찾아오는 사람들로 바르셀로나를 차지하는 타지역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늘어난다.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를 갖고 있는 바르셀로나에 투자할 목적으로 집이나 건물을 사는 중국, 러시아, 북유럽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매년 바르셀로나를 찾는 수천만명의 사람들이 지내는 호텔, 에어비엔비, 게스트 하우스까지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실거주를 위해 소유할 수 있는 공간이 한없이 줄어들고 있고 그만큼 가격이 치솟고 있다.


서울의 집값과 비교하면 웃음이 나올 수도 있지만 끝을 모르고 높아지는 바르셀로나의 집값은 현지인들에게는 아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새롭게 리모델링한 방 두세 개짜리 아파트의 한 달 월세는 1300유로~1500유로, 한화로 200만 원 정도 한다. 스페인의 실업률이 10%대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바르셀로나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 박사까지 공부해도 한 달에 1000유로, 150만 원을 벌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88세대처럼 스페인에는 밀에우리스타 Milerurista, 한 달 소득이 1000유로 이하인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생겨난지 오래다. 혼자서는 300~400유로 하는 월세를 감당하는 것도 벅차기 때문에 30대가 넘어서까지도 집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밖에 없다.






첫 번째 바르셀로나 쉐어하우스 


바르셀로나 센터에서 가까운 위치, 아주 불편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낡고 오래된 집, 내 월급에 3분의 1 정도 되는 월세, 이 세 가지 조건이 처음 바르셀로나에서 쉐어하우스를 찾을 때 우선으로 떠올린 조건이었다. 매매, 렌트, 쉐어하는 집까지 한 번에 찾을 수 있는 어플에서 내가 원하는 조건 이외에도 들어갈 수 있는 날짜, 3~4명이 사는 집, 전기세와 월세가 포함되어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집주인에게 연락했다.


에익샴플라 지구의 왼편 Eixample esquerra, 회사 사무실과 바르셀로나 센터 가운데 위치에 내가 생각했던 금액에 맞는 방을 찾았다. 1853년에 지어진 건물은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집 안은 현대식으로 리모델링이 되어있었지만 방 문과 큰 창을 가리는 페르시아나는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어플에서 본 사진보다 훨씬 좁았던 방, 청소가 되어있지 않았던 집, 매일 파티만 할 것 같은 하우스 메이트 등등 여러 집을 거쳐 7번째로 본 이 집은 나에게 완벽했다. 바로 디포짓을 지불하고 다음 주에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8월 여름에 이사해서 그 다음 해 7월까지 딱 일 년을 이 집에서 지냈다. 사무실 앞까지 바로 가는 버스도 있었고 시티센터까지 가기에도 편리했지만 술집과 클럽이 주변에 많아 매일 새벽 술 취한 사람들의 난동 소리가 들렸다. 160년이 넘은 건물에는 엘리베이터를 놓은 자리가 없었는데 처음 한 달은 너무나 낭만적이었지만 3층에 있는 집까지 가려면 0층부터 4층 높이가 되는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집 문 앞에 도착하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무거운 물을 사야 될 때가 되면 계단이 너무 미웠다. 거리를 향해서 살짝 나있는 작은 테라스가 정말 마음에 들어 이 집을 선택했는데 겨울에는 구석구석 낡은 창문 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너무 추웠고 어쩌다 지나가는 차 한두 대의 소음이 거슬려 새벽 다섯시면 잠에서 깼다. 이때부터 이어플러그를 해야 잠이 오는 버릇이 생겼다.


유럽을 꿈꿀 때마다 상상했던 그림만으로 고른 방은 불편한 점이 가득한 딱 400유로짜리 방이었다. 평일과 주말 항상 바쁘게 지내며 밖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잠만 자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살만했지만 일 년을 채울 때쯤 더 좋은 집을 찾아 이사하고 싶어졌다. 첫 번째 집에서 얻은 경험들로 리스트를 만들어 검색했다. 운 좋게도 처음 본 집이 내가 가장 원했던 부분들을 모두 만족시켜주었고 그다음 주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두 번째 바르셀로나 쉐어하우스


두 번째 바르셀로나 쉐어하우스는 그라시아 거리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걸어서 5분 거리에 까사바트요가 있었다. 회사에 출근하는 버스를 타려면 까사바뜨요 맞은편에 있는 버스 정거장으로 가야 했는데 매일 까사바트요를 보면서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집이 있던 에익샴플라 오른쪽 Eixample dreta은 반대편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동네여서 건물들이 모두 컸고 주로 바르셀로나 현지인들이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관광지와 시티센터와 아주 가깝고 좋은 레스토랑들이 주변에 많았지만 아주 조용한 동네였다. 어플에서 집을 검색할 때 이 주변에는 쉐어하우스가 거의 없었고 나와있는 방은 기본 600유로 이상이었다. 너무 좋은 동네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예산이었던 500유로를 훨씬 넘는 곳이라 포기하고 있었는데 에익샴플라 오른쪽 한가운데에 있는 건물에 500유로에 방이 나왔다.


7층 높이의 규모가 큰 건물에는 평일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건물을 관리하는 경비원 아주머니가 계셨다. 건물로 들어오는 문을 열쇠로 열어야 했는데 경비원 아주머니는 항상 미소 짓는 얼굴로 물을 열어주셨고 집으로 오는 소포도 다 받아주셔서 우체국에 택배를 찾으로 가지 않아도 됐다. 작은 경비실을 지나 로비 계단 뒤로 가면 성인 세명 정도 탈수 있는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로비가 있는 0층, 0층과 1층 사이의 엔뜨레솔 Entresol을 지나 1층에 있는 집은 이름은 1층이지만 층수로는 3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 덕분에 더 이상 숨차게 계단을 오를 필요가 없었다.


예전 집의 두 배는 되는 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에는 예전 집 크기만 한 거실과 방처럼 분리된 부엌이 있었고 오른쪽으로 방 4개와 화장실 2개가 있었다. 집주인은 개인 화장실을 사용했고 나머지 방을 사용하는 세 명이서 욕조가 있는 큰 화장실을 같이 썼다. 건물도 집도 큰 만큼 테라스도 아주 컸는데 한쪽은 거리를 향하고 있는 거실과 연결되어 있었고 다른 한쪽은 블록의 한 가운데로 향해서 내 방과 연결되어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가운데가 비어있는 ㅁ 모양으로 블록의 네 면을 둘러 건물들이 세워져있는데 블록의 중정에 해당되는 이 부분은 거리의 소음이 완벽히 차단되면서 아주 조용하다. 이전 집에서 자동차 소음에 너무 스트레스 받았던 나는 집 제일 안쪽 가장 조용한 중정을 향해 창과 테라스가 나있는 방을 찾고 있었는데 조용한 이 테라스가 내 차지였다. 집주인과 같이 쓰는 공간이었지만 서로 테라스에서 마주칠 일이 없었다. 서쪽을 향하고 있는 내방 테라스에서 하루 종일 햇빛이 들어왔고 예쁜 해 질 녘 노을을 볼 수 있었던 데다가 다음 블록에 있는 교회의 종소리가 매시간마다 들렸다.


커다란 붙박이장이 있고 집주인 방보다도 훨씬 큰 크기의 방을 이 동네에서 월세 500유로에 구한 나는 정말 행운아였다. 살짝 결벽증이 있을 정도로 깔끔한 집주인 덕분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장소가 호텔만큼 깨끗한 것도 너무 감사했다. 예전 집보다 방안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늘어났다. 요가 매트를 깔아놓고 유튜브 비디오를 따라 요가를 하거나 친구를 초대해서 큰 창문을 활짝 열여 놓고 노을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시기도 했다.


코로나 때문에 급하게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서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친구에게 부탁해 이삿짐센터를 불러 짐을 빼고 나오게 되었지만 3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까사바트요 근처 이 집은 나의 바르셀로나, 나의 집으로 남아있다.











나, 아델


한국 회사 생활을 정리한 후 3개월 동안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달을 보낸 바르셀로나는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고 한국에 돌아온 지 6개월 만에 다시 떠나 5년이라는 시간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사람들은 나의 또 다른 가족이 되었고 다양한 국적의 유럽 사람들은 내 회사 동료 혹은 친구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도시 자체를 너무 사랑했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미워하는 마음도 크기를 같이 하고 있다.


'나의 바르셀로나'는 이런 기억들을 조금씩 적어보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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