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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아델 Jan 05. 2021

동방박사의 선물, 바르셀로나 동방박사의 날

나의 바르셀로나

동방박사들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에서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와 1월 1일 새해의 첫날이 모두 지나고 난 후에도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지 않는다. 1월 5일 밤에 찾아오는 동방박사들을 맞이하는 동방박사의 날 Día de los Reyes Magos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에서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산타와 루돌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데 12월 25일에는 카탈루냐의 까가띠오가 1월 5일과 6일에는 동방박사가 선물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인 세 명의 현자 멜초르 Melchor (Melchior), 가스파르 Gaspar (Caspar), 발타사르 Baltasar (Balthasar)는 각각 말, 낙타, 코끼리를 타고 베들레헴의 동쪽에서 온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예수가 태어난 지 12일이 지난 1월 6일 동방박사들은 왕권, 신성 그리고 죽음을 통한 희생을 의미하는 황금, 유향, 몰약을 요셉과 마리아에게 선물했다. 이 날을 가톨릭에서는 에피파니아 Epifanía, 예수 공현 축일로 지정하고 기념한다.


바르셀로나, 스페인, 라틴 아메리카 문화권에서는 동방박사의 날에 선물을 주고받으며 크고 작은 퍼레이드들을 열어 12월 24일부터 이어지는 크리스마스 휴일을 성대하게 마무리한다.






동방박사의 퍼레이드


1월 5일 오후 4시 바르셀로나 항구에 도착한 세 명의 동방박사들은 오후 6시부터 시우타데야 공원에서 퍼레이드를 시작한다. 바르셀로나 시내 중심을 관통하는 퍼레이드는 람블라 거리, 카탈루냐 광장을 지나 오후 9시 몬주익에 도착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바르셀로나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에서도 각자 자신들만의 퍼레이드를 한다.


추운 날씨에도 퍼레이드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과 거리로 나와있다. 퍼레이드를 하는 날 아이들은 갖고 싶은 선물이 적힌 카드와 작은 비닐봉지를 챙겨 퍼레이드를 기다린다. 원하는 선물이 적힌 카드는 동방박사에게 전달하고 준비해온 비닐봉지는 동방박사와 그의 천사들이 던져주는 행운의 사탕을 받는데 사용한다.


바르셀로나에서 이 퍼레이드를 두 번 봤는데 모든 아이들이 퍼레이드의 동방박사와 천사를 진심으로 믿는 것 같았다. 퍼레이드를 하는 천사들에게 카드를 건네면서 자기가 얼마나 착한 어린이인지 얘기하고 원하는 선물을 꼭 전해달라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갖고 싶은 선물을 정말 동방박사에게 받을 수 있는지 걱정하며 엄마에게 속삭이는 아이들의 순수함이 예뻤다.


바르셀로나가 큰 도시인 만큼 퍼레이드 규모가 대단히 큰데 화려한 만큼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어른이 보아도 멋진 장면들이 끊임없이 연출되는 퍼레이드는 한 번쯤 볼만한 이벤트이다.






동방박사의 선물


퍼레이드에서 동방박사에게 카드를 전달해 주고 달콤한 사탕을 가득 받은 아이들은 카드에 적힌 선물을 받기 위한 준비를 한다. 동방박사의 행렬이 밤새 집 앞 골목을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동방박사들을 위한 음식과 물, 말, 낙타, 코끼리를 위한 풀까지 정성 들여 창문이나 테라스에 놓아둔다. 선물이 담길 신발까지 잘 닦아 놓고 잠이 들면 선물을 받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다.


다음날 아침, 동방박사를 위해 정성껏 준비해둔 음식과 물이 줄어있다면 그들이 다녀갔다는 뜻이다. 동방박사들은 착한 아이들에게는 원했던 선물을 주고 나쁜 아이들에게는 새까만 석탄을 준다. 달콤한 석탄이라는 의미의 까르본 둘세 Carbón dulce는 계란, 레몬, 설탕에 색소를 넣어 정말 석탄처럼 만드는데 재미로 하나씩 나눠 먹곤 한다.






가족과 함께하는 맛있는 행운, 로스콘


크리스마스 때처럼 동방박사의 날에도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다. 원래 전통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때에는 까가띠오를 통해 아이들에게만 작은 선물을 주고 동방박사의 날에 어른과 아이 모두가 선물을 주고받지만 지금은 집집마다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날에 선물을 주고받는다. 친구의 경우 크리스마스에는 어머니의 가족들과 함께 모이고 동방박사의 날에는 아버지의 가족들과 함께 모인다.


동방박사의 날 친구 아버지의 가족이 모이는 친척 집에 갈 기회가 생겼다. 친구 아버지는 11남매 중 다섯 째셨는데 11남매와 그 자손들까지 모두 모이는 큰 행사였다. 일 년에 한 번 모두가 모이는 날이라 한 달 전부터 참석 여부를 확인하고 다 같이 식사할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과 의자를 준비해 두신다고 했다. 여러 사정으로 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 날 76명의 친척들이 모였다. 76명이 한 공간에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커다란 집이 말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거대한 팬에서 요리된 80인분의 빠에야를 다 같이 나눠먹고 나서 테이블마다 로스콘이 놓였다. 로스콘은 커다란 링 모양으로 만들어 설탕에 절인 과일들로 장식하는데 최근에는 가게에 따라 생크림, 초콜릿 등을 추가해서 새롭게 만들기도 한다. 빵 안에는 동방박사 인형이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인형이 들어있다. 랜덤으로 나눠먹은 부분에 인형이 있다면 큰 행운이 따른다고 믿는다. 불운을 의미하는 누에콩 haba을 넣기도 하는데 콩이 들어있는 부분을 먹은 사람은 불운을 떨치기 위해 로스콘 값을 내야 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가 동방박사 인형을 받았는지를 알아보며 시끌벅적하게 게임처럼 즐겼다.


로스콘까지 다 먹고 나서 서로 준비한 선물을 받아보기로 했다. 친구의 가족들은 지난해 동방박사의 날 행사에서 친척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하나씩 뽑았고 그 종이에 적힌 친척의 선물을 준비해왔다. 친구 어머니가 나를 위한 선물을 미리 준비해 주신 덕분에 나도 친구와 같이 선물을 뜯어볼 수 있었다. 가족들마다 순서를 정해 돌아가며 선물을 뜯어보고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 누가 왜 그 선물을 해주었는지를 이야기했는데 작은 선물에 담긴 따뜻한 마음은 아주 컸다.


나에게는 최고의 동방박사의 날이었다.






크리스마스 연휴의 마지막


12월 25일에 시작된 크리스마스 연휴는 1월 6일 동방박사의 날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11월 말부터 거리마다 빛나기 시작한 크리스마스 장식 조명들이 1월 6일을 마지막으로 꺼지면서 바르셀로나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바르셀로나는 축제 기분이 사라지게 두지 않기 때문이다. 1월 6일 동방박사의 날 이후부터 바르셀로나의 모든 가게들이 어마어마한 세일을 시작하면서 바르셀로나에는 또 다른 축제 분위기가 이어진다.











나, 아델


한국 회사 생활을 정리한 후 3개월 동안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달을 보낸 바르셀로나는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고 한국에 돌아온 지 6개월 만에 다시 떠나 5년이라는 시간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사람들은 나의 또 다른 가족이 되었고 다양한 국적의 유럽 사람들은 내 회사 동료 혹은 친구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도시 자체를 너무 사랑했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미워하는 마음도 크기를 같이 하고 있다.


'나의 바르셀로나'는 이런 기억들을 조금씩 적어보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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