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케터 아델 Jan 18. 2021

론다 누에보 다리 만나는 방법

스페인 여행: 론다 당일치기 여행, 누에보 다리

느긋한 여행 계획



퇴근한 후에도 커피숍에서 남은 업무를 처리하고 아침 7시에 일어나 부장님의 전화를 받으며 노트북을 켜는 주말을 끝내기 위해 퇴사를 했다. 일에 갇혀 바쁘게 지냈던 생활을 버리고 도착한 스페인에서는 최대한 느긋하게 지내보겠다고 다짐했다.


꼭 가보고 싶은 도시와 축제를 제외하고는 세부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시간 내에 미션을 완료해야 하는 조급한 마음을 갖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카페나 숙소 파티오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고 싶은 일을 몇 가지 골랐다. 스페인-포르투갈 론리 플래닛을 훑어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말라가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숙소 파티오 앉아있으면 한두 명씩 나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제는 어디를 갔었고 오늘은 어떻게 오후를 보낼지 이야기하면서 마음에 들었던 식당이나 흥미로운 것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중 호기심이 생기는 곳이 있다면 그날 내 목적지가 되었다.


숙소 주인인 라파 아저씨는 말라가 도시뿐만 아니라 말라가에서 갈 수 있는 주변 여행지에 대해서도 많이 얘기해 주셨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론다였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깊은 절벽에 세워진 거대한 다리 이야기가 인상적이었고 하루 다녀오기로 했다.






론다



시내를 다니다가 숙소까지 지도 없이 갈 수 있을 만큼 말라가가 익숙해졌을 때 라파 아저씨가 얘기해 주셨던 론다가 떠올랐다. 가는 데만 세 시간이 걸리는 곳이라 오전 중에는 꼭 출발하기 위해 아침에 부지런을 조금 떨었다. 덕분에 원했던 시간인 오전 10시 버스를 타고 론다에 갈 수 있었다.


말라가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론다까지 가기 위해 말라가 버스터미널에서 알사 Alsa 버스를 이용했다. 론다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마을을 다 들렀다 가느라 자동차로 가는 것보다 시간이 두 배로 더 걸렸지만 느긋한 나에게는 문제 될 게 없었다. 창밖 구릉 사이로 숨어있는 마을이나 거대한 바람개비 같은 풍력 발전기를 보는 것도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버스에서 어색한 눈인사를 나눈 것도 너무 재밌었다.


출발 한 지 세 시간이 지나 론다의 작은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론다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로마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하면서 아룬다Arunda 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에서 지금의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해발 740m 높이의 작은 고원지대에 3만 명이 조금 넘는 인구가 도시를 이뤄 살고 있다.


론다 시내로 들어와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니 화려하게 핀 꼿이 예쁜 정원이 있었고 그 앞 절벽까지 다다랐다. 버스를 타고 올라올 때는 몰랐는데 론다는 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아래로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바다를 바라볼 때와는 또 다른 시원함이 느껴졌다.






누에보 다리



과달레빈 Guadalevín 강을 따라 이어지는 120m 높이의 협곡에 만들어진 누에보 다리는 론다의 구시가지 La ciudad와 신시가지 Mercadillo를 연결하는 세 개의 다리 중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다리이다. 98m 높이로 타호 El Tajo 협곡에서 가져온 돌로 축조되었다.


펠리페 5세가 1735년에 처음 제안했던 다리는 8개월 만에 35m 높이의 아치형 다리로 만들어졌지만 아치의 부실공사로 인해 6년 뒤에 무너졌고 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1751년에 새롭게 착공이 이루어지고 42년 이 지난 뒤 1793년에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누에보 다리가 El Puente Nuevo가 완공되었다. 건축가 호세 마르틴 José Martin de Aldehuela이 설계했고, 후안 안토니오 Juan Antonio Díaz Machuca가 공사의 책임을 맡았다. 후안은 다리 건축에 필요한 큰 돌을 들어 올리는 획기적인 기계들을 고안해내면서 건설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누에보 다리는 조금 낡은 벽돌과 옛 디자인의 가로등을 제외하고는 흥미로울 것 없는 오래된 다리였다.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다리 위를 건너는 것 자체는 짜릿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에보 다리 한가운데서 내려다보는 론다의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배가 뚱뚱하게 나온 절벽들이 마주 보고 있는데 그 사이로 과달레빈 강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120m 높이의 절벽 위에 빼곡한 하얀 집들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누에보 다리도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지은 건물들도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는데도 주변 환경 덕분에 환상적인 작품이 되었다.






누에보 다리 만나는 방법



협곡만큼 나이를 먹지는 않았지만 오랜 세월 론다를 이어준 다리는 절벽과 하나가 된 것 같았다. 서있는 모습 만으로도 장관이었기 때문에 론다에서는 이 다리만 계속 바라보고 싶었다. 정보가 없었지만 운 좋게 헤매지 않고 누에보 다리의 멋진 모습을 많이 담을 수 있었다.


누에보 다리 위에서 협곡과 론다의 모습을 보고 다리를 건넜다. 다리 전체의 모습이 보고 싶어 무작정 아래로 내려가야겠다 생각했다. 길을 걷다가 절벽을 향해 테라스가 있는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샌드위치와 맥주 한 잔을 주문해두고 까치발을 들고서 담장 너머 모습을 보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절벽을 따라 이어진 길과 담장, 건너편 마을을 잇는 다리가 레고 같은 장난감처럼 느껴졌다.


협곡 아래에 있는 낡은 다리라는 뜻의 비에호 Viejo 다리를 건너 반대편에서 누에보 다리를 보면서 가파른 길을 올라왔다. 태양이 가장 강한 시에스타 시간에 가파른 언덕을 계단으로 올라가는 건 쉽지 않았다. 항상 챙겼던 선글라스도 두고 온 탓에 눈이 너무 부셨지만 잊지 않고 누에보 다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끝까지 올라와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건물의 형태는 중세 시대에 지어진 듯했지만 아주 잘 가꿔져서 깨끗했다. 역사가 오래된 동네가 너무 깔끔해서 놀이공원의 테마파크를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스팔트가 아닌 울퉁불퉁한 돌이 깔려있는 마을의 작은 길은 시에스타 시간이라 한적했다. 나 같은 관광객들 몇 명만 뜨거운 햇빛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니고 있었다.


마리아 광장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광장 한쪽에서 거친 숨소리를 내며 올라오는 커플을 보았다. 어떻게 저기서 나타난 걸까 생각하는 사이에 다른 가족이 올라왔다. 눈이 살짝 마주쳤고 질문을 드렸다. 더운 날씨에 조금 힘들지만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며 길을 알려주셨다. 일행 중 한 분이 꼭 가봐야 한다고 추천해 주셨다. 그러고 보니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 한쪽이 뚫려있었고 그 너머로 흙길이 나있었다.


뜨거운 날씨에 너무 멀지 않을까 싶었지만 거듭 추천해 준 그분들의 말대로 가보기로 했다. 등산로 같은 길은 경사도 제법 있어서 긴장되었다. 여름 샌들을 신고 내려가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올라오는 사람들이 조심하라고 걱정해 주기도 했다. 바닥만 보면서 슬금슬금 내려가 보니 작은 평지가 나왔다. 넘어질까 긴장했던 마음을 살짝 풀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스 신화 혹은 어느 판타지 영화에서 보았던 풍경 같았다. 누에보 다리 사이로 과달레빈 강의 물줄기가 폭포로 쏟아지고 있었다. 처음 누에보 다리를 보았던 풍경과는 또 다른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폭포 자체만으로도 멋진 풍경이었지만 누에보 다리가 있는 협곡의 모습 때문에 더욱 신비롭게 보였다.


엄청난 모습에 압도되어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오른쪽 작은 길에서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지 호기심이 생겨 이번엔 묻지도 않고 길을 따라 들어갔다. 절벽 바로 아래 있는 길을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이었다. 깊숙히 들어 갈수록 누에보 다리와 가까워졌다.


누에보 다리 바로 아래까지 도착했다. 최대한 목을 뒤로 젖혀 다리의 끝을 따라가보고 협곡의 좁은 틈 사이 론다의 모습을 보았다. 이 다리가 쌓아 올려지기 시작한 곳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 한 손은 내내 누에보 다리에 닿아있었다.


태양이 가장 뜨겁게 타올라 사람들이 낮잠을 자는 시에스타 시간에 누에보 다리를 보겠다고 양쪽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기운이 정말 바닥났다. 활기찬 론다 시내를 조금 더 보고 싶었지만 뜨거운 열기에 머리가 지끈거려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받은 론다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그때는 숙소로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뿐지만 지금은 해질 녘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론다의 모습이나 밤이 되어 오렌지색 조명을 받는 다리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게 많이 아쉽다.











스페인 여행일기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먼저 산 후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스페인 말라가를 시작으로 모로코와 포르투갈을 거쳐 이베리아반도를 100일 동안 여행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났다. 낯선 곳에서 홀로 보낸 시간은 나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고 처음으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주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최고의 여행이었다.


스페인 여행일기에서 그 여행의 추억을 정리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라가를 지배했던 사람들의 흔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