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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아델 Jan 19. 2021

그라나다 마리나와 함께한 프라이빗 투어

스페인 여행: 그라나다 에어비앤비, 알바이신 지구 투어

이제는 떠나야 할 때



첫 여행지라 후한 점수를 준 것도 사실이지만 말라가는 나에게 모든 게 완벽했던 도시였다. 퇴사를 결심하고 비행기를 예약했을 때 내가 상상했던 여행의 모든 것이 말라가에 있었다. 처음 계획했던 일주일에서 3일을 더 머물렀는데도 여전히 떠나기 아쉬웠다. 그러나 이대로 안주하는 건 내가 원했던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음 도시로 가야 했다.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가 다음 목적지가 되었다.


다시 찾은 말라가 버스 터미널에서 그라나다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라가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며 섭섭한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옆에 앉아계시던 아저씨가 내 카메라를 바라보며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셨다. 마침 버스와 플랫폼 번호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던 나는 대답과 함께 부탁을 드렸다.


옆에 있던 터미널 직원과 확실히 확인해 주신 아저씨는 어떤 계기로 스페인을 여행 중인지 물어보셨다.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 중인데 결정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답했다. 내 답을 들은 아저씨는 나에게 말라가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는지, 지금 행복한지를 또 물으셨다. 말라가에서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고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웃으며 답할 수 있었다.


이런 내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아저씨가 이렇게 얘기하셨다. "이제 알겠지? 오래 고민할 필요 없어. 네가 원하는 게 있다면 하면 되는 거야. 지금처럼 스페인을 여행하고 싶다면 여행을 하고, 그라나다에 가고 싶다면 버스 티켓을 사면 되는 거야. 네가 원하는 일을 한다면 결과가 어떻든지 너는 행복할 거야."


퇴사를 결심하고 여행을 준비해서 스페인에 오기까지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내 마음을 가장 잘 달래준 이 이야기를 스페인어로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울컥해서 아저씨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바로 말을 이어가다가는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참았다.


내 스페인 여행에 행운을 가득 빌어주고서 아저씨는 동생이 살고 있는 세비야행 버스를 타셨다. 아주 잠깐의 대화였지만 아저씨의 따뜻한 눈과 환한 미소가 지금도 기어에 남아있다. 말라가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응원을 듬뿍 받았다. 그라나다행 버스에 씩씩하게 올랐다.






그라나다



그라나다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다른 도시들처럼 페니키아, 로마 그리고 이슬람교도인 무어인들이 지배해왔다. 하지만 그런 도시들 중에서 그라나다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마지막까지 이슬람교도들이 남아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8세기부터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했던 무어인들은 이베리아 반도를 탈환하려는 가톨릭 세력과 700년 넘게 전쟁을 벌였다. 반도 북쪽에서부터 내려온 가톨릭 세력은 1492년 마침내 그라나다에 남아있던 마지막 왕국을 몰아냈다.


1492 무함마드 12세가 알람브라 궁전의 열쇠를 페르난도와 이사벨 여왕에게 넘기그라나다를 떠나면서 가톨릭의 레콩키스타, 이베리아 반도 탈환은 완성되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무어인들이 지켰던 도시에는 이슬람 왕국의 가장 화려한 유적이 남아 여전히 그라나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너무나 화려한 알람브라 궁전과 헤네랄리페 정원, 좁은 골목이 구불구불 이어진 알바이신 지구와 같이 이슬람 문화가 가득한 그라나다에서 낯선 문화를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칸을 내어준 에어비앤비 호스티스였던 마리나 덕분에 로컬들의 그라나다를 즐길  있었다.






마리나 언니



그라나다에 도착해 터미널 앞 버스 정거장에서 에어비앤비 숙소 호스티스인 마리나를 만났다. 전 날 숙소를 예약하면서 잠깐 나눈 대화에서부터 마리나의 친절함이 느껴졌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혼자 찾아갈 수 있다고 했지만 그라나다와 스페인이 처음인 나에게 그럴 수 없다며 굳이 터미널까지 마중 나와 주었다.


꼬불꼬불 귀여운 곱슬머리에 선한 웃음을 갖고 있던 마리나는 나를 보자마자 아주 환하게 미소 지었다. 마리나는 영어가, 나는 스페인어가 유창하지 못했지만 처음부터 우리는  통했다. 내가 머무는 2 3 동안 마리나는 세심하게 나를 챙겨주었다.   없이 많은 배려들을 해준 마리나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언니 같았다.


그라나다 시내에 도착해 알바이신 지구 한가운데에 있는 마리나의 집까지는 가파른 오르막길과 계단을 한참 올라갔어야 했다. 계단도 쉽지 않았지만 울퉁불퉁 자갈이 박혀있는 거리는 캐리어를 끌고 가기 너무 힘들었는데 마리나가 끝까지 옮겨 주었다. 내가 하겠다고 가방에 손을 뻗으면 자기 힘이  다며  손을 뿌리쳤다. '그라시아스 Gracias" 반복하는 걸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마리나는 예쁜 눈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마리나의 작고 귀여운 집에 도착해 내 방에 캐리어를 넣자마자 마리나가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저녁을 먹고 그라나다 시내와 알바이신 지구를 소개해 주겠다는 마리나의 제안에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마리나는 스페인의 강한 자외선을 잘 막아야 한다며 엄마가 쓰시던 모자를 내 머리에 올려주고는 밖으로 나섰다.






마리나의 프라이빗 투어



알바이신 지구에 있는 숙소에서 나와 그라나다 시내까지 가면서 눈에 보이는 들은 모두 마리나가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해 주었다. 그라나다는 말라가와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완전히 다른 도시였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동안 도시마다 개성이 너무 강하다는 것에 감탄했었는데   번째 도시가 그라나다였다.



그라나다의 개성 있는 모습을 눈으로 정신없이 따라가던 나를 마리나가 곳곳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재밌는 설명에 센스 있는 사진까지 마리나는 완벽한 가이드였다. 신나게 거리를 걷다가 마리나가 아랍 스타일의 장식이 가득한 식당 앞에서 멈췄다. 팔라펠과 케밥을 파는 이슬람 패스트푸드점 같은 곳이었다.


병아리콩을 갈아 볼을 만들어 튀긴 팔라펠과 역시 병아리 콩으로 만든 후무스 그리고 샐러드가 같이 나왔다. 처음 먹어본 팔라펠과 후무스는 아주 고소하고 맛있었다. 채식이라 건강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마리나 덕분에 처음 먹어본 후무스는 이후 내 최애 안주 중 하나가 되었다. 후무스와 당근의 조합은 정말 대단하다.


든든한 저녁을 먹고 조금씩 해가 떨어지는 시간. 마리나는 알바이신 지구로 나를 안내했다. 알바이신 지구의 입구에는 작은 시장 골목이 있었는데 이슬람 스타일의 다양한 기념품과 가죽 제품들이 늘어져 있었다. 북적거리는 골목을 지나 동네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조용한 골목이 이어진다. 좁을 길을 올라가다 보면 레스토랑 하나, 작은 공방 하나, 꽃 한 송이나 나무 한 그루가 있는 광장들이 하나씩 자리 잡고 있었다.


무어인들이 살던 낡고 오래된 집들이 모여있는 알바이신 지구는 내가 상상해보지 못했던 모습이라 그 안을 걷는 게 더욱 재밌었다. 그렇게 조금씩 알바이신 지구의 골목을 따라 오르고 올라 전망대에 도착했다. 멀리서 알람브라 궁전이 빛나고 있었다. 아직 푸르스름한 하늘 아래 오렌지색 조명을 가득 받으며 서있는 알카사바와 궁전의 모습이 웅장했다. 이곳에서는 우리 둘 다 아무 말하지 않고 눈앞 풍경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마리나의 프라이빗 투어는 전망대 옆 광장에서 까냐를 마시며 마무리되었다.


버스 터미널에서부터 숙소까지 그리고 나를 위한 투어까지 반나절 동안 나를 위해 고생해 준 마리나에게 정말 고마웠다. 그라나다에서의 마지막 밤에도 나에게 타페오라는 문화를 소개해 주며 그라나다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멋진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세심하게 신경 써주는 마리나의 마음에 너무 감동하며 지냈던 그라나다였다.


그라나다를 추억할 때면 눈빛부터 너무 선하던 마리나의 미소가 떠오른다.











스페인 여행일기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먼저 산 후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스페인 말라가를 시작으로 모로코와 포르투갈을 거쳐 이베리아 반도를 100일 동안 여행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났다. 낯선 곳에서 홀로 보낸 시간은 나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고 처음으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 주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최고의 여행이었다.


스페인 여행일기에서 그 여행의 추억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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