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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 아델 Jan 13. 2021

말라가를 지배했던 사람들의 흔적

스페인 여행: 말라가 로마극장, 알카사바

말라가를 지배했던 사람들



기원전 8세기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세워진 말라가는 스페인의 주요 도시들처럼 유럽에서 아주 오래된 도시들 중 하나이다. 페니키아인들이 물러가고 난 후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는 도시였으며 8세기 이후에는 이베리아반도를 통치했던 무어인들의 수도로서 네 번이나 선택된다. 1487년 히브랄파로 성에서 가톨릭에게 항복할 때까지 말라가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다른 도시들과 같이 7백 년 이상 아랍인들의 문화가 꽃피웠던 곳이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동안 큰 도시는 물론이고 올리브 나무들이 가득한 들판 사이에도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수도 교와 로마극장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안달루시아 지방에서는 아랍인들의 목욕탕인 하맘이 남아있는 곳도 많았고 그들이 쌓아올린 알카사바는 웬만한 규모의 도시라면 다 남아있었다.


스페인을 지배했던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말라가에서는 그 흔적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었고 시간을 내어 둘러볼 가치가 충분했다. 알카사바의 성벽 바로 아래에 로마극장이 위치하고 있다. 매끄러운 대리석으로 정리된 광장에서 두 유적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아직 자신들이 말라가의 주인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로마극장



기원전 1세기 말라가가 아우구스트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건설된 로마극장은 기원후 3세기까지 사용되었다. 그 뒤 711년 무어인들이 안달루시아에 정착할 때까지 오랫동안 로마극장을 폐허로 남아있었다. 무어인들은 뒤에 있는 알카사바를 짓는데 로마극장의 바위를 사용한 다음 다시 방치해두었고 세월 속에 묻히게 되었다.


5백 년 동안 잊혀있던 로마극장이 1951년 말라가 문화회관을 건설하던 현장에서 발견되었지만 로마극장 위에 그대로 문화회관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1995년에 문화회관을 철거하고 극장의 발굴을 완성한 다음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복원이 시작된 지 27년 만인 2011년 9월에 로마극장이 다시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는데 로마극장에서 사라진 많은 부분이 알카사바의 주요 부분을 이루고 있어서 복원이 더 어려웠다고 한다.


극장은 일반석, VIP석, 무대 세 부분으로 나눠져있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순서대로 위치한다. 가장 높은 일반석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복도를 따라 들어가서 좌석과 무대가 내려다보였는데 로마시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무대를 향해 환호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무려 이천 년 전에 만들어진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니 영화에 보았던 로마시대 모습들이 극장 주변에 그려지면서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알카사바




로마극장 뒤로 높게 쌓여있는 알카사바는 무어인들이 궁전을 방어하기 위해 지은 요새이다. 말라가에는 히브랄파로 성과 함께 알카사바 이렇게 두 개의 무어인 요새가 있는데 그중 알카사바는 스페인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요새라고 한다. 756년에 건설을 시작해 780년에 완성된 이 요새는 해적의 침략을 막기 위한 용도로 지어졌다. 무어인들이 로마극장의 바위들을 알카사바 요새를 짓는데 사용했기 때문에 알카사바에 로마식 기둥이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었다.


11세기 말라가의 술탄에 의해 다시 지어진 요새는 두 겹으로 지어져 히브랄파로 성까지 연결이 되었고 14세기에는 알카사바 궁전의 내부까지 새롭게 단장했다고 한다. 말라가의 알카사바는 세비야의 알카사바,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보다 3세기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형식에 있어 많은 차이를 보인다. 스페인이 무어인을 몰아낸 15세기 이후 1933년 복원이 시작될 때까지 5세기 동안 알카사바의 많은 부분이 부식된 채로 버려져 있었기 때문에 복원은 계속 진행 중이다.


가톨릭 문화가 지배적인 유럽의 도시에서 나에게는 완전히 낯선 아랍문화를 만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근대의 유럽 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있는 말라가를 떠올렸을 때 아랍인들이 세운 투박한 성벽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그대로 지키며 말라가의 일부가 되었다.


알카 사바의 투박한 겉모습 때문에 내부가 크게 기대되지 않았는데 해변에서 낮잠을 자고 돌아오는 길에 알카사바 입구 옆에 빨갛게 핀 장미를 보고 충동적으로 들어가 보게 되었다. 겹겹이 쌓인 벽과 지그재그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누군가의 비밀의 성에 들어가는 듯했다. 시야가 트이는 것 같아 고개를 들어보니 말라가와 지중해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무가 심어진 가파른 경사를 올라 안으로 더 들어가니 작은 분수를 가운데에 놓고 빨간 장미들이 예쁘게 피어있는 정원이 나타났다. 흙먼지 날리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초록색 식물들이 요새 안을 둘러싸고 있었고 담이나 문 옆 작은 틈에도 꽃들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었다. 거친 벽돌을 뚫고 피어난 꽃들은 더욱 싱그럽게 보였다.


아랍 문양으로 나있는 창을 통해서는 파란 지중해가 펼쳐져 있었고 기왓장이 올라간 지붕 너머로 구시가지의 집들이 보였다. 그라나다의 알람브라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알카사바 내부의 초록색 나무와 색색깔의 꽃들이 뜨거운 여름날의 오후를 보내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이천 년 전 그리고 천년 전에 말라가를 지배했던 그들의 위대함이 남겨놓은 건물을 통해 여전히 우리에게로 전달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위대한 건물을 직접 둘러보고 만져보면서 오랜 시간 버텨준 것에 감사했다.











스페인 여행일기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먼저 산 후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스페인 말라가를 시작으로 모로코와 포르투갈을 거쳐 이베리아반도를 100일 동안 여행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났다. 낯선 곳에서 홀로 보낸 시간은 나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고 처음으로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주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최고의 여행이었다.


스페인 여행일기에서 그 여행의 추억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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