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마살찐년 김짜이 Dec 12. 2018

쿠로시마 섬으로

오키나와 이시가키 옆, 소가 사람보다 많은 섬

정말로 오키나와를 가려고 한 건 아니었다.

에어서울에서 500원짜리 표를 푼다길래 적당한 날짜를 선택하고 접속했더니 재고가 남아있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표를 끊어버렸다. 왕복 표값은 천원. 유류할증료니 공항세니 붙어서 총 71500원을 냈다. 정작 끊어놓고 보니 뭘 할까 싶었다. 이미 여덟번이나 다녀왔으니 어느 정도는 둘러봤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고민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미야코나 이시가키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마침 또 얼마 전에 <프렌즈 오키나와>를 쓰신 환타님이 이시가키에 대해 극찬을 하시는 걸 들었었다. 결정은 쉬웠다. 이시가키로 가자.


나하 공항부터 파이누시마 공항까지 또 비행기를 타고, 이틀을 이시가키에서 보냈다. 친구와 함께였다. 열심히 구경하고 먹고 수영하고 친구는 나하로 다시 갔다. 오키나와가 초행이었으니 본섬을 더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어쩌다보니 앞서 쓴 글과 비슷한 상황을 쓰고 있다.

떠나는 친구를 공항까지 바래다주고 렌트카를 반납한 다음 숙소를 바꾸었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게 보이길래 고프로 타임랩스로 찍었는데, 어리석은 나란 인간, 타임랩스로 찍으면 뭔가 완성된 파일이 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사진을 일정한 간격으로 찍어주는 게 타임랩스였던 거였어... 어쩌면 이것조차 그냥 기능을 몰라서 하는 소리일 수도 있다. 전날은 약간 구름이 많았는데 많이 맑아졌다. 다행이었다.

방 키를 지정된 장소에, 그러니까 왕 큰 조개껍데기 위에다 반납하고 구석에다가 캐리어를 세워놓고 터미널로 걸어갔다. 이 날 이후의 플랜은 굉장히 빡빡하면서도 텅 비어있었다. 이시가키 섬에서의 이틀이 남아있었고, 첫날은 아무거나 하다가 저녁에 숙소를 잡아놓은 이리오모테 섬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은 이리오모테의 남쪽 항구부터 북쪽 항구까지 올라가며 구경을 한 다음 다시 이시가키 섬으로 돌아와서 이 숙소에 버려놓은 캐리어를 주워서 파이누시마 공항으로 가야 했다.

터미널로 걸어가면서 찍은 건물. 왜 찍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길게 생긴 게 신기해서 찍었던 듯.

그래서 이 날 무엇을 할지 끝까지 고민했다. 타케토미 섬은 전날 다녀왔으니 또 가기는 애매하고, 다음 숙소가 있는 이리오모테 섬을 미리 가볼까 하니 또 둘째날에 빡빡하게 짜 놓은 일정이 흐트러질 것 같았다. 버스 때문에 거의 분당 계산을 해서 짠 일정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는 이상한 고집이 피어올랐다. 결국 안 가본 섬을 가보기로 했다. 그게 쿠로시마였다. 검색해보니까 정말 뭐가 없는 작은 섬인 거 같아서 생각 없이 둘러봐도 좋겠구나 싶었다. 물론, 정작 가서는 생각없이 둘러볼 수 없었다.

터미널에 가서 3일 프리패스권을 보여주고 쿠로시마 행 배를 끊었다. 호다닥 뛰어가서 도시락도 사고, 바로 배를 타러 갔다. 아마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읽는 거겠지? 내가 탈 배 츄라상.

그리고 도시락. 계란 좋아하는 자의 선택이다. 얼마였더라... 120엔이었던가, 200엔이었던가. 아무튼 조그매 보이는데 양이 생각보다 되게 많다. 밥 한 공기를 꾹꾹 눌러 담은 느낌? 밥에는 적당히 찝찔하고 적당히 새콤한 간이 되어 있었다. 씹을수록 맛이 있어서 3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는데, 그러고 보니 배가 꽤 불렀다. 1개를 남겨 두었다가 나중에 먹었다.

쿠로시마로 가는 길은 멀어서 그런지, 좀 더 바깥쪽의 바다여서 그런지 예상보다 파도가 높았다. 동영상은 출발할 때쯤이어서 별로 안 느껴지지만 달리다 보니 제법 출렁출렁거렸다.

저기 보이는 저 섬이 아마 타케토미였을 거다. 섬들을 지나칠 때마다 무슨 섬인지 구글맵을 켜서 구경했다. 서서히 속이 안 좋아진다고 느낄 때쯤 배에서 내리니 쿠로시마 섬이었다.



앗. 점심시간이 끝나간다. 점심시간 중에 다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무슨 얘기든 길게 하는 몹쓸 병이 참으로 문제다. 이러니까 만사 마감을 못 지키지. 우선 사진들만 올려두고 퇴근 후 이어가도록 하겠다. 오늘은 어제 못한 빨래를 해야 하니까, 세탁기를 돌려놓고 그 세탁시간이 다 될 때까지만 쓰기로 한다. 두 번째 마감도 어기진 않겠지, 이 모자란 친구 역마살찐년 김짜이야.



섬이 하트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토 랜도 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터미널에 도착하고 나서는 자전거를 빌려 타기로 했다. 타케토미 섬처럼 자전거를 대여해주는 샵에서 픽업을 나왔길래 잡아 탔는데, 알고보니 전기자전거만 있는 샵이었고, 대여료는 이만 오천원이었다... 죄송하다고 백번 말하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왔다. 친절한 아저씨가 나를 다시 태워서 터미널로 데려다 주었다. 조그만 아기도 있는데 미안했다.

돌아와서 간 곳은 터미널 바로 앞에 있는 카페 겸 자전거 대여소. 마음이 급해서 자전거 대여료도 제대로 못 듣고 무작정 버스에 타서 이 사단이 났겠구나 싶어서, 잠깐 숨을 돌리기로 했다. 날씨도 더웠고.

발랄하기 그지없는 새끼고양이 두 마리가 더운줄도 모르고 뛰어놀고 있었다.

숨을 돌리는데는 커피가 최고지. 얼음에게도 이런 비유가 옳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신선해 보였다. 시럽 안 넣고 먹으려다가 당이 필요할 것 같아서 시럽을 다 들이부었다.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둘러본 카페는 아늑하고 조용했다. 연보라색과 하늘색이 적절히 섞인 듯한 내부 페인팅이 시원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한여름이 아니었던지라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아도 충분히 시원했다. 큰 창문 너머로 항구와 바다를 보며, 쿠로시마에서 뭘 할지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항구 앞 카페니까 당연히 섬의 지도쯤은 갖추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없었다. 항구에 가면 얻을 수 있다고 해서 검색으로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스노클링이 가능할 거 같아서, 적당히 자전거를 타고 전망대에 갔다가 스노클링을 하러 가기로 했다.

카페에서 빌릴 수 있는 자전거는 아주 오래된 것들 뿐이었다. 뭐, 브레이크만 잘 들으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안장이 너덜너덜한 자전거를 한 대 빌려 코앞 터미널로 왔다. 아, 가방도 맡겨놓고 가벼운 물놀이 도구만 챙겨서 짐바구니에 넣었다. 여객 터미널엔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었다. 관광 안내소로 추정되는 작은 테이블이 있었지만 사람이 없으니 뒤질 수도 없고. 사장님이 터미널에 지도가 있을 거라고 했는데... 내가 뭔가 챙길 수 있는 건 무인 기념품샵이 유일했다. 그냥 이 샵에서 파는 약식 지도를 한 장 샀는데...

그게 바로 이 엽서 한 장이다. 지도라기보단 그림에 가깝지만, 대충 섬에 뭐가 있는지 파악할 수는 있었다. 지도 대신 이 엽서를 보면서 섬을 돌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엽서 한 장으로 충분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항구 옆에 있던 토리이를 한 장 찍고 출발했다.

뙤약볕이 내리쬐었지만 자전거를 타니 살 만했다. 이 때 모자가 있었던가, 없었던가 잘은 기억이 안 난다. 모자가 없어서 수건으로 대충 정수리가 타는 것만 막았던 것 같다.

이 길로 가는 게 맞는지 한참 고민하면서 페달을 밟자 첫 번째 목적지가 나타났다. 이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전망대였다. 그래봤자 15m밖에 안 된다. 기묘한 재질로 울퉁불퉁하게 만들어 놓은 모양새가 주변 풍경과 어울리는 듯 그렇지 않은 듯 애매했다.

짐이 실린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세워두고 전망대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선형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면서 굳이 전망대를 만들 필요가 있나 의아했지만,

올라가서 풍경을 보니 제법 만족스러웠다. 멀리까지 잘 보이는데 전망대가 그다지 높지 않아서인지 바다까지 볼 수는 없었다. 한 5m만 높았어도 바다가 보일 것 같았는데 아쉬웠다. 전망대를 내려와서 다시 페달을 밟아 온 만큼 달려가니 마을이 나왔다. 우체국도 있고, 집들도 몇 채 있고, 심지어 영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카페의 입간판도 하나 나와 있었는데 돌아와서 가자 싶어서 굳이 들르지 않았다. 여행자들이라면 알겠지만, 이런 마음이 들 때는 대부분 그 장소에 안 가게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결국 가지 못했다. 

마을 중간쯤의 거울에서 찍은 사진. 거울 속에 나 있다.

마침 지도가 있었다. 어딜 갈까 들여다보다가 맨 아래쪽, 그러니까 최남단의 등대를 보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을에도 뭔가가 있는 것 같기는 했는데 번역기 돌리기는 귀찮고 시간도 좀 부족할 거 같고 해서 등대로 곧장 내달렸다.

다음 목적지인 등대로 달려가는 길.

탁 트여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산 같은 건 아마도 옆 섬이다. 풀도 많고 소도 많은데 사람은 없다. 이 섬에서 만난 사람이라고는... 다 해서 열 명도 채 못 될 거다.

소. 엄청나게 맛있는 친구들이다. 미안하면서 동시에 미안하지 않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작은 섬의 표지판에도 나름 한글이 적혀 있다. 일본어-영어-한자-한글을 모두 병기하는게 우리나라랑 일본의 기본 표식인 거 같다. 비바람에 그냥 노출되어있어서 색이 바래기 십상인데, 교체한지 얼마 안 된 건지 제법 또렷한 모양새다.

드디어 등대. 꽤 달려와서 만난 것 치고는 너무나도 소박하게 생겼다. 몰래 담을 넘어가서 올라가볼까 잠깐 고민했는데 별로 부질없는 짓일 거 같아서 그만두었다.

등대 바깥으론 정말 야생의 바닷가가 펼쳐져 있다. 스노클링 하면 온갖 것들을 다 만날 수 있을 것 같게 생겼지만 동시에 바다에서 나오지 못해도 아무도 몰라줄 것 같아서 역시 그만두었다.

그냥 돌아가려다가,

나밖에 없길래 사진을 남겼다.

카메라를 어디다 기대어놓을까 하다가 쪼리를 벗고 그 위에 기대놓았다.

예상보다 사진이 잘 나와서 다행이다. 하도 바다 위에 엎어진 채로 떠서 스노클링을 하다보니 다리 뒤에가 새카맣게 다 탔다. 이 여행에서는 저 꽃무늬 바지만 입었는데 지금도 바지를 벗으면 딱 저 꽃무늬 바지를 입은 부분만 살이 허옇다.

너덜너덜한 자전거를 타고 다시 추울발.

가까이 가 보고 싶었지만 철조망이 무서웠다.

가다보니 토리이가 있어서 들어가보았다. 아무런 신상도 없는 신당이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이런 곳에서는 왠지 정면으로 바라보면 안 될 것 같아서 지나가는 척 하면서 곁눈질로 바라보게 된다. 아무도 없는데도 괜히 그렇다.

다음 목적지인 바다. 스노클링을 할 차례! 원래는 저 엽서 지도에 스노클링이 그려져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자전거를 달리다보니 호-넨-사이 라고 쓰여있는, 할아버지랑 우쿨렐레 비슷한게 그려져있는 곳까지 와 버렸다.

샤워장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옷을 갈아입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벗고 마을을 돌아다니지 말라는 정중한 부탁 같은 게 쓰여 있다. 

엄청나게 발달해있는 산호들을 봤다. 물고기도 역시 나하 본섬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이시가키 섬에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한참 구경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큼지막한 나비고기가 두 마리 왔다. 어쩐지 계속 고프로 근처를 얼쩡거리더니 갑자기 손을 콕 하고 쪼았다. 버터플라이 피쉬한테 물렸다! 바다의 깡패 같으니라고. 처음엔 두 마리던게 점점 떼로 몰려와서 한 7마리쯤 되었다. 그러고는 어쩐지 노골적으로 나를 노리길래 도망쳐 나왔다.

방문자 센터가 있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점심을 드시러 가신 건지... 건물 근처를 한바퀴 돌고는 그냥 나왔다. 이때쯤 시계를 봤더니 배 시간이 촉박했다.

안 들르고 바로 선착장으로 달려갈까 싶었는데, 죽어라고 페달을 밟으면 되겠지 하고 바다거북이 센터? 보호소? 육아소? 생태박물관? 같은 곳에 들렀다. 소정의 입장료를 냈는데 스티커 3종 세트를 주면서 입장권이라고 하더라. 어디서 왔냐고 해서 한국이라고 하니 반가워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안에는 이런 식으로 산호의 화석이라던지, 뭔가의 껍데기라던지 하는 것들이 잔뜩 전시되어 있었다. 하나하나 볼만했지만 역시 시간이 없어서 빨리감기식으로 둘러보았다.

유리문 밖에는 공작도 있었다. 꼬리깃을 한 번만 펴 달라고 외쳤는데 그는 듣지 않았다. 일본어로 말하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전시물들을 빠르게 둘러보고 안쪽으로 향하니 미묘한 비린내와 함께 바다생물들이 나타났다.

들어가면 가장 먼저 네모난 수조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기 거북이 두 마리가 있다. 어쩐지 자꾸 탈출하고 싶어하면서 자꾸 내 쪽으로 왔다. 안타까운데 만질 수도 없고 건져줄 수도 없고...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니 뭔가 캡슐 피규어 뽑는 기계가 보였다.

고러쿠만. 이게 목적이었어. 거북이 밥이 들어있었다. 200엔인가 주고 하나 뽑았다.

아주 잘 먹길래 하나 더 뽑을까 고민했지만... 결국 지나쳤다.

다양한 물고기 중 전날 바다에서 슬쩍 봤었던 타이탄 트리거 피쉬가 있었다! 바다에 들어갔는데 엄청나게 큰 물고기가 저 멀리서 나를 보고 도망가길래 진짜 깜짝 놀랐었는데, 알고 보니 이 녀석 무는 애라고... 호되게 물고 피도 난다고. 도망을 갔던 건 본인의 구역이 아니어서인 듯했다. 이가 사람 이 같아서 좀 징그러웠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정글에 법칙에서 봤을 법한 코코넛 크랩이 앞발을 얌전히 모으고 있었다.

바깥으로 나오니 많은 거북이들과 육지거북, 상어가 있었다.

몰랐는데 바깥에 나 있는 수로를 따라 밍숭맹숭하게 생긴 상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굉장히 당황했다. 민물 상어겠지. 수로를 따라 빙글빙글 헤엄치는 모습을 1분 정도 구경하고 서 있다가, 배 시간이 가까워진 것을 깨닫고 자전거를 타고 냅다 달렸다.

간신히 배가 출발하기 전에 도착했다. 허둥지둥 자전거 반납하고 맡겨둔 가방을 찾으면서 쿠로시마 스티커를 세 장인가 샀다. 목에서 쇠 맛이 났다.

그리고 그 와중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빠르게 기념품을 구경했다. 사람이 몇 명 나와 있는 터미널은 사람이 없는 것보다 괜히 이상하게 느껴졌다.

배에 타니 높이 싸여있는 방파제가 보였다.


이 날의 여행은 이것으로 끝은 아니었지만, 쿠로시마 여행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이름은 흑섬이지만 보이는 풍경은 온통 초록과 파랑이었던 조용한 섬. 딱 반나절이었고, 허벅지를 시커멓게 태우면서 자전거만 탔지만 이상하게 자꾸 그곳의 풍경이 아른거린다. 10월 말의 이시가키 여행의 모든 순간이 빛났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섬, 쿠로시마.

작가의 이전글 어쩌다 생각난 돌다다미길의 그 카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