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발로
어디까지 가나 보자

평발에 무지외반증까지, 이 발로 되겠어?

by 역마살찐년 김짜이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참 많이도 걸어다닌다. 버스 몇 정거장쯤은 아무렇지 않고, 한강다리를 걸어서 건너며, 말하면서 걷고 마시면서 걷고 먹으면서 걷는다. 뿐인가, 주말마다 근처 산에 간다거나, 총 400킬로미터가 넘는다는 제주 올레길 완주에 도전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한 달 꼬박 걸어야 한다는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나기도 한다. 굳이 걷겠다는 이유로. 참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발은 280mm. 여자치고는 키도 엄청나게 큰 편이지만 발은 더 크다. 게다가 평발에, 선천적으로 관절이 유연한 편이라 심한 무지외반증까지 있다. 이런 발을 가진데다가 한때 토실하게 살이 오르기까지 했으니, 걷는 것을 싫어하는 건 당연했다. 어느 만화에서 본 “3보 이상 택시”(네이버 웹툰 선천적 얼간이들 6화)라는 말이 완벽하게 나를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구도 언제나 같은 취향을 고수할 수는 없다. 인생에는 다양한 사건이 있고, 그런 사건들이 사람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취향을 바꾸는 데는 영향을 미친다. 스무 살, 국내여행가이드 일을 시작하고 난 뒤 나는 최소한 ‘3보 이상 택시’를 고수하는 사람은 아니게 되었다. 전국 각지의 산을 돌아다니게 되었고, 무려 지리산 둘레길도 걸어보게 되었다.

산이라니, 둘레길이라니! 회사에서 산을 가라고 하면 입부터 튀어나왔다. 일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자처해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걷기 시작하자 조금씩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먼저 바뀐 건 산에 대한 시선이었다. 겨울 태백산 정상의 눈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지리산 둘레길의 여유로운 풍경이 얼마나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주는지 알게 됐다. 다음으로 바뀐 건 몸이었다. 하루만 산에 다녀와도 몸이 한결 가벼워졌고, 조금만 걸어도 뻐근하던 발목이 강해졌다.

결국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나는 내 두 발만 있어도 생각보다 멀리, 생각보다 높이 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스스로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결국 사고를 쳤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멀고 가장 높고 험한 곳, 히말라야에 가기로 한 것이다.


둥글둥글한 한국의 산과는 다르게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뾰족하게 날이 선 봉우리들, 그리고 그 위에 새하얗게 쌓여 한 번도 녹은 적이 없다는 만년설이 보고 싶었다. 얕은 계곡을 첨벙첨벙 건너며 깔깔 웃거나, 끝없는 오르막을 묵묵히 견디며 오르는 나를 상상했다. 한국과는 다른 꽃과 나무를 구경하면서 순수한 놀라움을 만끽하고 싶기도 했다. 어쩌면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동물들을 많이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겨운 고산지대 사람들과의 소박한 시간이라던지…….


상상을 이어가다 보니 나는 어느새 완벽한 등산장비를 맨 채, 가쁜 숨을 내쉬며 눈발을 헤치고 외딴 산장을 찾아가고 있었다. 힘겨운 상황을 함께 극복한 산악인의 우정, 만년설을 녹일 것처럼 뜨거운 열정, 성취감……. 상상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다. 내가 선택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푼힐 트레킹 코스는 분명 쉽지는 않은 코스였지만, 어린아이들도 어르신들도 올라가는 아주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저 어디서 본 것만 많은 초보자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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