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으로 얻은 것들
학창 시절 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남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해외에 대한 관심이 컸다. 어린 마음에 미국을 꼭 가보고 싶었고, 매일 미국 사진을 보고 미국 랩 음악을 들었다. 흑인 래퍼들을 좋아했는데, 한 친구의 아버지는 그런 나와 놀지 마라고 했다고 한다.
수학, 과학에는 영 소질도 없고 흥미도 없었다. 과학은 너무 싫어해서 30점을 받은 적도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미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영어에 흥미가 생겼지만 사실 영어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다. 여중을 나왔고, 어릴 적부터 운동 신경이 좋아 매번 운동회 때면 릴레이 주자로 나갔고 1등을 하곤 했다. 고등학교 때는 배드민턴 치는 것에 흥미가 생겨 쉬는 시간마다 애들이랑 배드민턴 채를 들고 쫓아다니며 배드민턴을 치고 다시 교실로 돌아오곤 했다. 고등학교는 공학을 나오고, 문과를 나왔다. 국어를 좋아해서 1등급 받은 적도 있었다.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
더 큰 세상을 보기 위해 대학 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유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여행이었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해왔는데 20살이 되어서는 적어도 1년 정도는 충분히 내 시간을 가지며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4년이란 긴 시간을 또 다른 학교에 투자할 만큼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이 없었기도 했고,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해도 결국은 내 수능 성적에 맞춰 원하지도 않는 과를 가야 하는 현실이 싫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 1년쯤은 해외에서 살아보자!'라고 다짐을 했다.
그러고는 호주로 떠났다.
인생을 80년이라고 생각했을 때, 1년이란 시간은 정말 짧다고 할 수 있다.
중학교 시절부터 정말 꿈꿨던, 해외에서의 생활이었다.
그 1년이 내 인생을 바꿔 줄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것은 안다.
그 1년이 나의 오랜 꿈인 '해외에서 생활하기'에 대한 환상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 1년이 나를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만들고, 대학을 가고 싶게 만들지도 모른다.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았다. 호주에서 1년을 지내며 외국 생활을 해 보는 것, 단지 그것만 생각했다. 그 1년 이후의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무모했지만, 1년을 지내고 나면 왠지 또 다른 길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공부는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그때 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미련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나온 해외에서 느낀 점은, 외국에서는 한국보다 학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맞다. 하지만 영어를 잘하고, 학력이 조금 더 높으면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나는 호주에서 청소부도 되어봤고, 웨이트리스도 되어봤다. 그런 기회를 갖는 것도 감사했다. 0으로 시작해서 해외에서 내 용돈을 벌고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힘들고 슬프고 행복하고 보람찼던 그 1년간의 추억들이 끝이 났고, 그 추억들은 나를 또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그 경험들이 모이고 모여 조금 늘은 영어 실력과 함께 나는 싱가포르에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리셉션이 되었다. 남들이 사용하고 간 호텔, 공장, 오피스의 쓰레기를 치우던 나는, 멋진 유니폼을 입고 구두를 신고 손님과 이메일과 전화로 예약 문의를 응대하고 미국, 마카오,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에 회사가 있는 큰 리조트 밑에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일을 하다 보니, 소수/다수의 손님들의 예약이 모이고 모여 회사의 세일즈를 높이는 것에 관심이 생겼다. 마케팅, 세일즈에 대한 공부가 하고 싶어서 그렇게 싱가포르에서 일을 병행하며 1년이란 시간을 관심 분야에 대한 공부를 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력서에 3년이란 해외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2015년, 내가 1년 워홀 생활을 했던 호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중학교 시절부터 현재까지도 나의 관심사인 '여행'을 6년째 쭉 해오다 보니 좋은 기회가 생겼고 현재는 호주에서 여행 관련 일을 하고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물론 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에 나오고 좋은 곳에 취직하여 행복해질 수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삶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더 큰 세상이 보고 싶었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오다 보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안다면,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계획하고 실천한다면 못 이룰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리고 공부가 꿈을 이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아니었다.
무엇에 미치면 못 이룰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