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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 Heather Aug 07. 2017

6년차 세계여행자의 생애 첫 명함



명함 (名銜) 
[명사] 1. 성명, 주소, 직업, 신분 따위를 적은 네모난 종이쪽.



어릴 적부터 자립심이 강해서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했다. 해외를 나올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면서부터는 아르바이트를 틈틈이 해왔고 내가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일은 옷 가게 아르바이트, 호텔 아르바이트와 같은 서비스직이었다.

상대가 먼저 다가오지 않으면 낯을 가리는 내 성격상 사실 나는 서비스직과는 매치가 잘 되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그래도 막상 하면 잘(?) 했다. 처음이 어렵다고들 하던가, 일이란 게 적응하다 보면 재미가 붙기도 하고 괜찮아졌다.  시간이 지나면 반복되는 일이 지겨워진다는 문제만 빼면 말이다. 

서비스직이라는게 그 어느 일보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보람도 많이 느끼는 일 중 하나라고 자부한다.


또래보다 어린 나이에 해외로 나와 6년이란 시간을 이리저리 다니며 여러 분야의 일을 해 보고 자유로운 나의 삶에 만족하며 살았지만 마음 한편에는 항상 나의 정체성을 찾고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존재했다. 이것은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지만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집같이 편한 곳이 있었으면 했다.


내가 하던 일은 레스토랑의 리셉셔니스트(Hostess)였다. 





서비스직이기 때문에 많은 자격조건이 부여되지는 않았다.


<회사의 직급 순서>


CHAIRMAN

CEO (Chief Executive Officer)

E.V.P (Executive Vice President)

S.V.P (Senior Vice President)

V.P (Vice President)

A.V.P (Assistant Vice President)

DIRECTOR

F & B MANAGER (레스토랑을 전체 관리하는 매니저들)

MANAGER (각 레스토랑의 매니저들)

ASSISTANT MANAGER

OPERATION EXECUTIVE

SUPERVISOR

CAPTAIN

TEAM LEADER

HOSTESS/RECEPTIONIST

SERVERS



OPERATION EXECUTIVE 포지션부터 Manager급이 였기 때문에 명함이 나왔다. SUPERVISOR 포지션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회사 메일 주소가 발급되었다. 내 직급은 HOSTESS였기 때문에 일반 서버(웨이터/웨이트리스) 들보다는 월급이 높고 직급도 높았지만 캡틴보다는 아래였기 때문에 나의 회사 메일 주소나 명함은 발급되지 않았다.

서비스직에 종사를 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인 다른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고 쉬는 공휴일이나 주말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해야 했고 바빴다. 싱가포르 친구들이나 서양 친구들은 주말마다 놀자고 연락이 왔지만 나는 항상 일을 해야 한다며 거절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거절 횟수가 많아 질수록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누구보다 내 일을 열심히 하고, 집에 있는 시간보다 직장에 있는 시간이 많고 친구들보다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내가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나는 결국 이 거대한 회사를 떠나면 누군가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몇천 명의 '직원' 중 하나일 뿐 이였다.



내가 없더라도 내가 떠나온 그곳에선 여전히 찬란한 햇빛이 비치고, 새 계절이 올 것이며 모두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오직 나만 홀로 떨어져 나왔으니 내가 그곳을 생각하는 만큼 누군가도 날 기억해주길 바랄 뿐. 하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내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도 세상은 어제와 같을 것이다. 단지 이렇게 조금, 아주 조금 변한 나 자신만 있을 뿐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김동영 작가님의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라는 책의 한 구절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이 과연 맞을까? 내가 이렇게 노력을 하여 일을 해서 남은건 무엇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고, 그렇게 나는 다시 호주행을 계획하며 사표를 쓰게 되었다. 


밉기도 했고 나 자신을 많이 성장시켰던 싱가포르에서의 3년.

사표 처리가 되고 비자 취소 신청이 들어가자마자  그 추억의 시간이 무색하게도 결국 나는 일주일 안에 싱가폴을 떠나야 하는 외국인의 신분이었다. 





그렇게 4년 만에 다시 돌아온 호주, 열심히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야 했다. 어떠한 일들을 했는지는 위의 포스팅에 써 놓았다. 그 일들도 단기성의 일이었기 때문에 소속감을 느낄 만한 일들은 아니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있으면 10년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포기하지 않고 그 길만을 믿고 간다면 좋은 기회가 온다는 것을 믿는다. 


그렇게 나는 작년 말부터 좋은 기회로 여행업에 종사하고 있다. 
처음으로 직장에서 나만의 명함도 가지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명함일지라도, 나에게는 자랑하고 싶고 상당히 뜻깊은 명함이다. 

고 2 때부터 해외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했던 숱한 아르바이트의 시간을 거쳐 좋아하는 것을 계속 해오다보니 드디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나만의 업무가 주어진다는 것, 정말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은 처음이라 모르는 것도 많고, 배워야 할 점도, 공부해야 할 것도 많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니 확실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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