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버킷 리스트를 지우다.
10년 전, 나의 버킷리스트
여행의 매력에 빠지기 전, 중학생의 어린 나는 첼시 FC의 열렬한 팬이었다. 모두가 잠을 자는 새벽, 밤을 새 가면서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스리그와 같은 경기를 보고 등교를 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어릴 적 꿈에 대해서 쓰곤 하던 나의 '꿈의 노트'에는 버킷 리스트를 적어놓은 란이 있었고, 그중에는 첼시의 홈구장인 '스탬포드 브릿지 방문하기'가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유럽에 오게 되었고, 그중의 하루를 쪼개어 영국 런던을 일정에 넣었다. 그 어느 것 보다 나에게는 첼시의 홈구장인 스탬포드 브릿지를 가는 게 우선이었다.
Stansted 공항에서 런던 시내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는 신기하게도 무료 와이파이가 제공되었다. 첼시의 공식 사이트에 접속하여 투어를 예약하려고 했지만, 인터넷이 느린탓인지 자꾸 오류가 발생했다. 한 가지 팁은, 인터넷으로 미리 경기장 투어를 예약하면 3유로 더 저렴하게 예약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되면 미리 투어를 예약하자. 당일 투어도 예약이 가능하다.
How to get there?
스탬포드 브릿지에 가는 방법은 런던 지하철인 튜브(Tube)를 타고 District Line Fulham Broadway역에서 내리면 된다. 구글맵으로 검색해보니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며 꽤 복잡한 경로가 나오는데 튜브를 타면 간단하다. 역에서 내려서 약 5분 정도 걸으면 멀리서도 첼시의 상징인 파란색 사인이 보인다.
ChelseaFC, Stamford Bridge
스탬포드 브릿지에 도착했지만 투어를 하려면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몰라서 한참을 서성거리다 친절한 시큐리티에게 물어보았다. 그가 알려준 대로 가니 Stadium Tours and Museum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저기로 들어가면 표를 살 수 있는 곳이 나오고 투어도 저곳에서부터 진행된다. 나는 온라인 예매를 안 했기 때문에 카운터에서 22유로에 투어 티켓을 구매했다.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시간인 오후 5시 투어를 예약할 수 있었다.
아일랜드 결혼식에서 스코틀랜드 출신의 동갑내기 앤드류를 만났다. 앤드류는 런던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인턴쉽을 하러 곧 일본으로 떠난다고 한다. 일본으로 가기 전 자기는 스코틀랜드에 가서 정리를 할 것이 조금 있다며 어차피 자기가 쓰던 방이 비었으니 런던에 오면 자기가 쓰던 방에서 지내면 된다며 런던에 가게 되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렌트비가 비싸다는 런던에서 운이 좋게도 숙박비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
대학생인 앤드류는 인도계 영국인의 가족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고 숙소도 시티에서 한 정거장밖에 되지 않아서 위치상으로 아주 좋았다. 곧 스코틀랜드로 돌아가는 앤드류는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빴고, 사실 결혼식장에서도 오래 대화를 한 것이 아니라 아주 짧은 만남으로 알게 된 인연인 나에게 이런 선행을 베풀어 준 그의 마음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사실 런던에는 아침 7시에 도착했지만, 그동안의 일정으로 무리를 했던 탓인지 피곤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앤드류의 숙소에 짐을 풀고 나서 잠시만 눈을 붙인다고 하는 것이 잠이 깊게 들어버렸다. 일어나 보니 어느덧 오후 4시였다. 숙소가 경기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덕분에 급하게 서둘러 마지막 투어를 예약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평생 기다려온 이 순간을 영영 놓쳤을지도 모른다.
첼시의 역사가 담긴 박물관을 구경하고 있다 보니 유쾌해 보이는 가이드가 나와서 자기소개를 하고 실제 선수들이 사용하는 라커와 경기장을 둘러볼 것이라며 짧게 설명을 해 주었다. 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존 테리(John Terry)의 팬이었다. 그렇게 나는 첼시 팬이 되었다. 수비수이지만 공격수의 역할도 때로 하고 심지어 골키퍼가 부상을 당했을 때 골키퍼의 역할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며 정말 멋진 선수라고 생각했다. Player of the year의 명단에 존 테리의 이름이 보였다.
인터뷰 룸
선수들이 기자회견을 할 때 이 곳에서 한다고 한다. 유쾌한 가이드는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실제로 저기에 앉아서 기념사진을 찍으라고 시간을 주었다. 실제 선수들이 사용하는 모든 공간을 직접 둘러보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원정팀의 라커룸
어웨이팀(원정팀)들이 사용하는 라커룸. 레전드 선수들이 직접 기증하고 간 유니폼들이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원정팀을 위한 라커룸이 홈팀의 라커룸보다 작고 시설이 조금 떨어지는 이유는 원정팀들이 압박감을 느끼고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홈팀 라커룸
첼시 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가고 싶어 하는 첼시 선수들의 라커룸, 실제 선수들이 사용하는 곳이라 그런지 더 의미가 깊다. 실제로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미팅을 할 때 어떤 선수가 어떤 곳에 앉는지 알려주었는데 상당히 흥미로웠다. 선수들의 라커룸 앞에서 사진을 찍는 시간이 있었는데 존 테리에게 가장 많이 몰렸다.
'선수들 라커룸에 인스타 아이디 남기지 마세요.' 가이드가 신신당부를 한다.
Stamford Bridge
투어의 하이라이트이자 마지막 장소인 스탬포드 브릿지. 10년 전 어린 나의 간절한 꿈이 드디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초록색 잔디와 파란 구장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첼시의 경기를 정말 보고 싶었지만, 시즌이 아니라서 그런지 경기를 직접 관람할 수는 없어서 아쉬웠다.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더 웅장했다. 구단주인 로만이 어디에 앉아서 경기를 관람하는지, 선수들의 가족들은 어디서 경기를 보는지 자세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아주 유익한 투어였다.
좌석에 직접 앉아 볼 수도 있었으니 비록 경기를 보지는 못했지만 더 이상 아쉬울 건 없었다. 약 한 시간으로 짧은 투어이지만, 가이드분이 너무 잘 설명을 해 주셨고 그 어떤 투어보다 유익해서 후회가 없었다. 또한, 10년 전 나의 꿈을 이뤘다는 것에 감동이 가시지 않았다. 첼시의 기념품샵인 메가 스토어가 6시면 닫기 때문에 투어의 끝나는 시간과 애매하게 겹쳐서 결국 아무런 기념품을 살 수 없었던 것이 너무 아쉬웠다.
여행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고 그리고 꿈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다. 간절히 원하면 못 이룰 것은 정말 없다고 생각한다. 오랜 꿈을 이뤘을 때의 그 희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여행을 시작한 지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늘 꿈과 열정을 가지고 사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