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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 Heather May 27. 2018

#9 서호주 로드트립을 마치며

피나클스의 사막의 밤

무계획으로 떠난 서호주 로드트립이라 그런지 각 지역마다 며칠씩 머물겠다는 계획이 없었다. 그저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여행을 즐겼다. 알람 없이 기상을 하고, 근사한 옷이나 메이크업 없이 복장은 늘 편한 쪼리와 나시와 반바지. 달력을 들여다볼 신경조차 쓰지 않았는데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북쪽에서 퍼스로 출발해야 할 날짜를 정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달력을 보니 어느덧 2017년 12월 31일. 1/2일 날 다시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몽키 마이어에서 퍼스까지 한 번에 내려오기로 했다. 몽키 마이어에서 퍼스 시티까지는 약 10시간, 일 년에 한두 번은 서호주 로드트립을 즐기기 때문에 편도 10시간 거리는 땅 넓은 서호주를 여행하는 동안은 '일반적인'거리로 느껴진다.

중간중간 주유소에 들려 간식을 사 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과정을 거쳐 결국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퍼스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서호주 북쪽에서 퍼스로 내려왔기 때문에 중간에 란셀린과 피나클스를 들릴 수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이라 퍼스 시티로 계속 달릴지, 피나클스나 란셀린에 들려 야경을 감상할지 고민을 하다 결국 란셀린 대신 피나클스로 가기로 결정했다. 차의 전조등을 켜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런 상황이었다.



The Pinnacles


피나클스 사막은 퍼스 시티에서 가장 가까운 아웃백이며, 남붕 국립공원(Nambung National Park)에 위치하고 있다. 이미 5번은 넘게 가 본 피나클스 사막. 이렇게 늦은 밤에 가는 것은 처음이라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어두워서 걱정이 되었다. 피나클스 사막은 차로 진입이 가능하다. 바닥이 모래이기 때문에 사륜구동차 같은 튼튼한 차로 들어가면 좋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도보로 진입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조리개를 많이 열고 사진을 찍어 이렇게 밝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밤에 불을 끈 방처럼 깜깜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피나클스 본연의 모습을 즐기려면 낮에 가는 것이 좋다. 해 질 녘의 모습도 아름답다.




조리개를 최대한 열고 사진을 찍으니 나의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이 나타났다. 마치 다른 행성에 와 있는 것만 같은 피나클스의 야경, 너무 고요해서 유령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아 무섭고 춥기도 하였지만 이런 멋진 풍경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피나클스'에 들리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자기의 방식으로 새해 전날을 즐기고 있을 시간에,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피나클스에 있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낮과 밤의 매력이 분명한 두 얼굴의 피나클스, 나에게는 너무도 평범해서 어쩌면 시시할 수 있는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면 멀리 여행을 가지 않아도 가까이 있는 것들을 특별하게 그리고 소중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피나클스 사막 근처에는 바다가 있어서 바람이 많이 분다. 특히나 밤에 이곳을 찾는다면 아우터를 꼭 챙기길 바란다.




전례 행사처럼 매년 크리스마스에 로드트립을 해 오고 있다. 늘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까지도 아무 계획이 없고, 어디론가는 떠나고 싶고, 비행기 표는 너무 비싼 바람에 여행 기분을 낼 겸 서호주 로드트립을 해왔다. 벽난로를 틀어놓고 스웨터를 입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것과는 다르게 벽난로의 열처럼 뜨거운 서호주의 땡볕 아래에서 여행을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과는 다르지만 남들과는 다른 것을 하며 보낸다는 것이 특별하다. 7년째 더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벽난로를 틀어놓고 스웨터를 입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About 헤더의 20살에 시작한 세계여행

헐리웃 배우 아담 샌들러에게 빠져 혼자 힘으로 미국을 가겠다는 생각에 20살이 되자마자 한국을 떠나 해외 생활 겸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그 후, 여행의 매력에 빠져 21살에는 호주에서 싱가폴로 건너가 3년간 거주하며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현재는 서호주 퍼스에서 살고 있으며, 해외 취업과 세계 여행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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