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깊이를 배우기
너 너무 무모해.
6년전에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했었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 6년전에 워홀을 하신거면 동안이신데요?" 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생각속에는 아직도 20살에 해외를 나온다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은 모양이다.
내가 20살에 한국을 떠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보다는 세상에 나가서 다른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것에 우려하는 시선도 물론 있었다.
사실 ‘20살에 해외를 나가야겠다!’라는 분명한 계획은 있었지만, 워홀이 끝난 1년후는 정확히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에 대한 해답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담 샌들러의 영화 클릭의 부제 ‘내 인생 내 맘대로’처럼 무모함도 가지고 있던 건 사실 이였지만 20살의 무모함이 내가 세상을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용감함을 만들어 주었다.
가족, 친구, 지인이 아무도 없는 호주 퍼스라는 낯선 도시에서 나는 워홀을 시작하게 되고, 불안정하지만 만족스러운 생활을 해 나갔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해외 생활의 특성상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게 되었다. 하나 둘 떠나갈 때 마다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어 나름의 위로를 했다. 하지만, 그들마저 떠나버렸을때는 나에게 퍼스는 심심한 곳이 되어버렸다.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봐도 금방 무료해졌고, 뭔가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호주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싱가폴'이란 나라로 가게 된다.
싱가폴이란 나라에 대해 하나도 몰랐고 그 곳에 대한 나의 상상 속 이미지는 사람들이 소를 타고 다니고, 농사를 짓고 있는 모습이였다. 그렇게 도착한 싱가폴 창이공항,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힐 정도의 습한 날씨가 나를 반겨줬고, 난생 처음 듣는 싱글리쉬는 여기가 어디지 하고 의문 짓게 만들었다. 차를 타고 본격적으로 도심으로 나갔고 그곳에서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었다.
흙밭 일거라 생각했던 곳은 포장이 잘 된 도로가 깔려있었고, 쓰레기 하나 찾을 수가 없었다. 잘 닦인 길에 뻗어있는 나무들과 높디 높은 아파트들이 보였다. 외제차들이 즐비하고, 좋아 보이는 음식점들이 빽빽하게 있었다.
싱가폴에 부는 한류 열풍 때문인지 싱가폴 사람들은 한국인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호주에서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어딜가나 한국 음식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렇게 21살에 싱가폴에서 내 인생 2막이 시작되었고 난생 처음 회사에 취직을 하여 해외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사회 생활을 하지 않아서 경험하지 못했을거라 생각했던 사회 생활도 이렇게 해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게 되었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사이가 틀어질 때도 있었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분명 많았지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 끝나고 동료들과 맥주 한잔 하며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이 소중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 일하며 정도 많이 들었다.
일과 싱가폴에서의 삶에 완전히 적응을 했을 때쯤, 호주에 대한 생각이 간절하게 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일에 치여 여유로운 호주의 삶이 생각났던건지 호주라는 나라가 그리운건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휴가를 내고 다시 퍼스로 일주일간 여행을 오게 된다.
매일 보고 갔던 장소들을 다시 갔지만 새롭고 행복했다. 일주일의 시간동안 나는 정말 호주라는 나라가 그리운것이구나 간절히 느끼게 되었고 여행이 끝난뒤 다시 싱가폴로 돌아왔다.
혼자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고 1년이란 기간을 준비를 했다. 그렇게 정든 회사 그리고 동료들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퍼스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물론 내가 다시 퍼스에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다른 많은 곳들을 여행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생각이 조금 큰 지금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녀왔나’ 보다는 ‘얼마나 깊은 여행을 했는지’의 중요성을 알게된 사람이 되었다. 다시 돌아온 이 곳에서, 일상이 여행이라는 생각으로 매 순간을 뜻깊게 보내려고 노력중이다. 올해는 이 곳에서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
by 헤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