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배낭여행 - 캄보디아, 코롱섬
아침에 일어났는데 여전히 배가 아프다. 약을 털어 넣다시피 하고 떠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백 번 고민을 했다. 이미 $26이라는 교통비를 지불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약기운이 살짝 돌길래 그냥 떠나기로 했다.
캄폿에서 시아눅빌까지 버스를 타고 시아눅빌에서 코롱 섬까지 페리를 타고 가는 여정이다.
시아눅빌에서 떠나는 페리는 11시라고 했는데, 시아눅빌에 도착하니 12시다.
이미 떠난 거 아니야 싶었는데, 나만 늦은 게 아니라 모두가 늦은 거였다.
다 함께 12시가 넘어서 출발했다.
약이 효과가 있는지, 배 아픈 게 괜찮아졌다. 페리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와 한참 이야기를 했다. 역시나 여행 정보를 나누고, 친구는 코롱 살렘에서 내리고 나는 한참을 더 가 코롱 섬에 내렸다.
섬답게 숙소는 비싸다. 물가도 비싸다.
코롱 섬 자체 물가가 비싼 데다 스쿠터 운전을 못하는 나는 선창작 근처로 숙소를 잡았다.
3박에 2만 5천 원인데, 10명이 쉐어하는 방에 선풍기 2대가 돌아가고, 방 하나에 있는 화장실이 전부다.
친절한 직원들이었지만 물가나 방 컨디션은 절대 친절하지 않았다.
다행히 바닷가 쪽이라 바람이 그대로 들어와 덥지는 않았다. 짐을 풀고 식사를 마치니 다시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2층에 올라와 흔들의자에 앉아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깨보니 친구들이 당구를 치고 있다. 시간을 보니 벌써 3시간이나 지났다. 밖은 이미 어둑해져 있다.
진통제는 다 떨어지고, 배는 아파오기 시작한다. 작은 약국에 들어가 약을 사고, 약을 먹기 위해 맛이 없는 볶음면을 꾸역꾸역 집어넣고, 다시 약을 털어 넣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약을 먹기 위해 거금을 들인 아침 식사를 하고 약발이 들 때까지 흔들의자에 앉아 바닷가 구경을 했다. 갑자기 저 멀리서 귀여운 아가들이 우다다다 달려 다닌다.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데 무슨 말인지 서로 모르겠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귀여운 아기들과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몸이 좀 괜찮아지자 씨엠립에서 만난 친구가 추천해준 롱비치에 가보기로 했다.
데이터도 안되고 사람도 없고 하얀 백사장이 아름답다는 곳이다.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좀 사고 오토바이 아저씨와 흥정을 했다.
아슬아슬한 길을 지나서 롱비치에 도착했다.
세상에, 정말이다.
하얀색 도화지를 펼쳐 놓은 듯한 모래사장과 사람이 없는 롱비치에 울리는 건 이따금 들리는 파도 소리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롱비치에, 입고 온 원피스를 벗어서 모래에 펼쳐놓고 자리를 잡았다.
평소 같았으면 동영상을 보거나 SNS를 하며 시간을 보냈을 텐데, 과일 샐러드 하나 집어 먹으며, 책을 읽었다. 휴대폰이 안되니 말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얼굴을 보며 통화하는 일은 상상 속에만 존재했던 일이다. 지금은 휴대폰 하날로 전 세계 어디에 있던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수천 킬로 떨어진 나라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심지어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시대다.
그렇게 휴대폰은 사람들의 손에서 떨어질 틈이 이 바쁘게 일을 한다.
배낭여행자인 내 휴대폰은 더 바쁘다. 말이 안 통하는 이곳에서 번역기가 내 개인 통역사가 되어주고, 덩그러니 길 한가운데 떨어진 나를 위해 길을 찾아주는 개인 가이드가 되었다. SNS에 나의 여행 기록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나 잘 지낸다 라고 항상 소식을 전하는 우체부 역할도 하고, 10시간이 넘어가는 무료한 버스 안에서는 영화도 틀어주고, 노래도 들려주는 진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오늘 하루 이 몇 시간 동안 휴대폰에게 휴가를 줬다.
노래 대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영화를 보는 대신 책을 읽으며 머릿속에서 내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 속 영상을 만들며 발가락을 까닥까닥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