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도, 방향도 없었다. 방황이었다. 사춘기가 조금 늦게 찾아온 것이겠거니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10대 후반 때의 내 머릿속도 그리 평온한 것은 아니었다. 그깟 게 다 뭐라고. 원망할 대상도, 상황도 많았지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대 때 나를 괴롭혔던 생각들과 지금 내 앞에 놓인 고민들이 뒤엉킨 채 왼쪽 관자놀이를 찔러대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편두통이었다.
청량리역 플랫폼. 노란색 선을 밟고 섰다. 반항이었다. 손에 쥔 것이라고는 정동진으로 떠나는 무궁화호 열차 티켓 하나와 옷가지 몇 개 아무렇지도 않게 찔러 넣은 배낭 하나. 정동진에서 해돋이라도 보면 이 복잡미묘한 감정을 정리할 수 있을까. 아니, 애당초 그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불안하고 초조했다.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성적이 그렇게 절망적인 수준은 아니었지만, 내 이마에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것만 같았다. 불안하고, 또 불안했다.
어른들이 그랬다. 살다 보면 수능,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대학이 네 인생을 결정해주지는 않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야. 희망 고문이라고 생각했다. 선명한 것이라고는 지금 앉아 있는 무궁화호 열차의 행선지가 정동진이라는 것뿐이었다. 아니, 그마저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왜, 대체 왜일까. 무엇이 내 머릿속을 이렇게나 뿌옇게 만들었을까.
덜컹, 덜컹.
음식을 파는 카트가 지나갔다.
덜컹, 덜컹.
누군가 화장실에 다녀왔다.
사방에서 나를 찔러대는 모든 감각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고 싶어서 올라탔던 기차인데, 도리어 날카로운 잡음이 더욱더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감각을 하나씩 차단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선 귀를 막아보기로 했다. 노래나 들어야겠다. 이어폰을 빼 양쪽 귀에 차례로 꽂았다. 친구들이 어른인 척하며 듣는 김광석도, 노래방에서 한껏 힘주고 부르겠다며 듣는 SG워너비의 노래도 아니었다. 에픽하이와 넬, 클래지콰이 그리고 서태지의 노래가 랜덤하게 흘러나왔다.
이제 눈을 가릴 차례. 노래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 것은 중학교 시절에 엄마가 라디오를 하나 사준 뒤로 생긴 내 버릇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청량리를 떠나면 객실 내부의 조도를 조금 낮춰줄 것이지. 유난히 밝은 조명 탓에 좀처럼 잠들 수가 없었다. 정말 조명 때문이었을까. 여전히 왼쪽 관자놀이를 찌르고 있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기차에 오르기 전에 삼킨 진통제가 아직도 말을 듣지 않았다. 청량리역 앞 약국이 문을 열었더라면 멀미약도 하나 사 왔을 텐데. 아니면 내 방 책상 서랍 세 번째 칸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둔 수면제라도 서너 알 들고 올 것을 그랬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안대라도 말야. 아냐, 안대는 어차피 쓰지 않았을 거다. 영 거추장스럽지 않나. 잠은 틀렸다. 정동진역에 도착하면 대합실 같은 곳에라도 앉아서 꾸벅꾸벅 졸아야지.
잠이 들었나. 아니면 그냥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인가. 멈춰 서는 역마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그 소리를 다 들었으면 잠을 못 잔 것 같기도 한데. 비몽사몽과 각성 그 사이 어디쯤에서 4시간 3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점점 느리게. 지긋지긋한 편두통이 좋았던 유일한 점은 복잡한 생각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왼손 검지와 중지로 관자놀이를 강하게 짓누르는 것 말고는 그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어지게 되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고통이라고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미묘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이번에 정차할 역은 정동진, 정동진역입니다. 내리시는 분, 안녕히 가십시오.
안내방송이 나왔다. 다들 정동진에 온 것인지 객차는 분주해지고 있었다. 어차피 다 내리는 거라면 조금 천천히 준비해도 되었다. 어차피 해가 뜨려면 멀었으니까. 객차 끄트머리에 달린 문이 열리자, 한기가 밀려 들어왔다. 벗어서 이불처럼 덮고 있었던 패딩을 입고는 지퍼를 턱 끝까지 올렸다. 이래서 겨울철에 해돋이를 보러 오면 안 되는 거였는데. 피곤함도 함께 몰려왔다. 찬 공기를 맞으면 잠이 온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패딩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고는 정동진역을 나섰다. 세 시간쯤 남았나. 카페도, 식당도 문을 연 곳이 없었다. 서울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쌀쌀한 날씨였다. 저 멀리 보이는 편의점 하나만 불을 밝힌 채 기차에서 내린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좀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들어섰다. 온장고에서 커피 두 개를 꺼내 계산한 뒤, 양쪽 주머니에 하나씩 넣고는 바닷가로 향했다.
거대한 모래시계가 설치된 공원 벤치에 앉아서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찬 공기 탓인지 눈이 건조해졌고, 눈을 살짝 감고 있기로 했다. 난생처음 해돋이를 본다며 호들갑을 떠는 한 무리가 지나가는 듯했다. 이 추운 날에 굳이 해돋이를 보러 와야겠냐며 투덜거리는 사춘기 학생의 목소리도 흘러갔다. 팔짱을 낀 채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추위를 이겨내 보려는 커플의 알콩달콩한 대화도 공기를 어지럽혔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편두통은 사라져 있었다. 진통제 두 알로 해결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다행이었다. 대신 서울에서부터 들고 왔던 잡다한 생각들이 다시 머리를 어지럽히려 들었다. 겨울 바다 한 번 보고 나면 머리가 어느 정도는 정리될 거라더니. 순 엉터리네.
같은 기차를 타고 와 고요한 정동진을 한껏 들썩였던 여행자들은 다들 어디에 자리를 잡았는지, 바닷가는 고요했다. 아직 해가 뜨려면 멀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적막과 고요. 그 사이에 스타카토로 들어오는 파도 소리가 좋았다. 미처 끄지 못한 음악 소리도 목에 걸린 이어폰의 작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달빛이 남아 묘하게 반짝이는 바다와 수평선을 따라 일렁이는 어선의 불빛들 덕분에 외롭지만은 않았다.
하늘이 점점 짙푸른 빛으로, 연한 보랏빛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