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꽃송이 Jun 11. 2019

이제 날 위해 살고싶어

세계여행을 떠났던 이유

모든 건 사실이었다. 내가 마지막 이십 대를 지나 서른이 되었다는 사실. 

돈만 미친 듯이 벌어도 난 재벌이 될 수 없다는 것과 매일 걷는 길의 가로수가 언제 색깔이 변하는지도 모르는 채 쳇바퀴 같은 삶이 계속되고 있다는 건. 만약 그때 우리나라를 덮친 ‘메르스’ 여파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그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했었을 수도 있겠다. 


불쾌지수가 한창이었던 여름, 몇 년 전 즈음 일본을 강타한 쓰나미처럼 우리나라를 덮친 지독한 여름 감기는 관광상권에서 일하는 내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료함을 가지고 온 듯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에어컨 바람이나 쐬며 하릴없이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내고 또 그런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몇 날 즈음이 지나자 그동안 ‘먹고살기 바쁘다’라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살았는지 말해봐,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스무 살, 수능이 끝나고 한 달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을 들고는 어느 날 아침, 국립대 가기를 원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며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했고 각오는 했지만 서울은 마치 나를 시험이라도 하듯 이리저리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시베리아 대륙 한가운데에서 부는 바람처럼 혹독하고 차가웠으며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얼음 위를 걷는 듯했다. 어떻게든 난 여기에서 버텨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참고 더 버텨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게 필요한 건 학벌이 아니라 돈이라는 생각에 학교를 떠났다, 아니 버렸다. 자퇴서를 던지고 학교를 나오면서 ‘나는 꼭 서른 살엔 재벌이 될 거야’라고 다짐했다.  


스물네 살, 쓰리잡을 하며 미친 듯이 돈을 벌었다. 이 시절은 내 인생에 돈이 전부였던 시절이라고 생각해도 나쁘지 않겠다. 그러다 정말 문득, 난 일본에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일본으로 갔다. 1년간의 워킹홀리데이, 일하는 것은 한국에서 지내는 삶과 다름은 없었으나 다른 것이 있다면 난 아무도 없는 새로운 세상 안에 있다는 것과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언어와 문화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지내는 1년은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그때부터 나는 끝없이 어딘가로 떠나기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나는 그 갈망하는 것들을 꾹꾹 눌러 담으며 이십 대 중반에 접어든 부담감을 안고 학교도 편입하고 전처럼 내 삶에 마치 나는 없는 것처럼 살았다. 그리 해야 할 것 같았고 밑에서 치고 올라온다는 불안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매일 같은 길을 걸어 출퇴근을 하는 수많은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며 나는 그렇게 서른이 되었다.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해” 


그렇게 방황하던 사춘기 같던 그 여름의 난, 이렇게 지루한 삶을 살며 뭘 위한 것인지도 모르는 채 지내면서 내가 청춘이라고 부르던 시절은 이미 멀어져 가는 걸 그저 바라만 보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의 이런 식의 청춘과의 이별을 나는 원치 않았다.  


“청춘, 멀어지지 마. 내가 널 잡을 거야” 지독한 감기를 떨쳐내듯 홀가분한 마음으로 바로 비행기표를 샀고, 회사를 그만뒀다.  


혹독하게 추운 한겨울이 지나고 찾아오는 봄의 문턱에서 나는 길 위에 섰다. 

그리고 정확히 715일 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꽃프리랜서


      쓰고, 찍고, 소소한 행복을 사랑합니다


구독자 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