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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꽃송이 Jun 12. 2019

제주가 너무 예뻐서 나는 죽을 수가 없었다

제주

‘2년이나 공백기간이 있으시네요?’ 


수많은 면접관들을 만났고 내 마음에 드는 면접관은 없었다. 그리고 그 어떤 면접관도 세계 여행이라는 추가된 한 줄의 이력에 대해 묻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내가 2년이나 한국을 비우고 여행을 한 것이 나를 채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가장 큰 고민이라 했다. 


봄이 오고 있는 한국이었지만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는 꽁꽁 얼어버린 바이칼 호수의 늦은 오후처럼 내게는 너무 시렸다.


서른 셋, 살집 있는 여자, 2년간의 공백기간, 경력단절 등 나는 그저 한국에서 자발적 경력단절을 택했던 사람으로 가장 초라해지기 쉬운 줄 위에서 위태위태하게 서 있다고 생각했다.


‘제주나 갈까-‘


또 다시 나는 항공권을 뒤적뒤적 거리다 결국 제주행 티켓을 사버렸다. 스스로 쉼이라 핑계 댔지만 사실 은 도망이었다.


텐트 하나를 짊어지고는 해안가를 따라 올레 길을 걸으며 제주가 이리 예뻤나-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5월의 제주는 해와 바람, 그리고 바다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내 기분만 빼고.


 ‘나 이제 정말 뭐 먹고 살지’ 라는 숨막히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에 최근 들어 처음으로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죽음이란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는 모르나 이렇게 숨막히게 살아갈 바에야 죽는게 낫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 마음으로, 죽고 싶다는 마음으로 보름쯤 걸었을 때- 어느 해안 도로에 멈춰 서서 펑펑 울었다.


살고 싶다고 떠난 여행이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나 싶어서 

여행을 한 순간만큼은 후회없이 살아왔는데 후회를 할 것만 같아서 답답한 가슴을 움켜쥐고는 정처없이 걷기만 하던 내 앞에 보이는 청량한 에메랄드 색의 제주의 바다가 너무 예뻐서 나는-


죽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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