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게 된 건 2017년 4월이다.
나에게 비행기는 기억도 희미한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 언니와 제주도 여행을 가면서 타봤던 것 그 정도였다. 이른 오전 항공편이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엄마 손에 이끌려 광주공항에 갔던, 부드러운 캔디와 종이컵에 담긴 물을 건네주던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분이 기억난다.
그 이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공항.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학생 때는 내심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가봤다는 게 부끄러워서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는 미국에 다녀와본 척 거짓말을 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게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모르겠다.
여행은 꿈도 꿔보지 않던 내가 여행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한 책을 읽고 나서부터이다. 고등학교 1학년 학교 도서실에서 보게 된 여행 에세이 <잠시멈춤, 세계여행>. 당시 여러 가지 일들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나는 여행만이 나를 힘든 상황 속에서 탈출하게 할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부모님, 선생님의 반대를 뚫고 학교를 자퇴했다. 하루에 많게는 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고 친구도 한 번 만나지 않으며 돈을 모았다. 눈만 뜨고 살았던 것 같다. 하루 종일 걷고 뛰며 일하다가도 삼사십분정도 되는 거리를 항상 걸어서 집에 갔다. 오직 여행을 가겠다는 목표만 있었다.
그렇게 3개월쯤. 통장에는 '이 정도면 여행 갈 수 있겠다.' 싶을 만큼의 돈이 모여있었다. 때마침 항공사 특가가 진행 중이라 일본 오사카행 항공편도 저렴하게 구매했고 숙소도 호스텔로 예약했다. 남은 건 가장 중요한 여권이었다.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에게 여권이 있을 리 만무했고 만 16세인 나는 혼자서 여권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했다. 결론은 엄마께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 엄마 나 여권 만들어줘 "
" 왜? "
" 나 오사카 가 "
" 언제? "
" 3주 뒤에 "
" 누구랑? "
" 혼자 "
덤덤하게 말씀드렸고 엄마도 덤덤하게 받아들이셨다. 사실은 엄마가 반대하실까 걱정하기도 했다. 혼자서 해외여행을 간다는 건 당시에도 흔치 않은 일이었으며 더군다나 내가 미성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도 나도 혼자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에 있어 크게 거부감이 없는 성격이고 이 전부터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해왔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렇게 여권까지 준비를 끝냈다.
첫 해외여행.
다른 사람들은 여행 전에 그렇게 마음이 두근두근 했다고 하는데 나는 꽤 쿨했다. 하지만 나도 조금은 기대하고 하루하루 기다렸던 것 같다. 책과 sns를 보며 맛집을 찾아보고 꼭 사 와야 할 기념품 리스트를 적어보기도 하고 인터넷 면세점에 들어가서 예쁜 가방을 사기도 했다. 여행 중에는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신기했고 이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사실이 더 이상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여행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쿨한 게 아니라 설렌다는 감정을 스스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는 2018년 어느 날 항공사 특가를 보는 데 한 여행지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다낭. 엄마가 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몇 번 하셨던 곳이라 곧바로 항공편 2인을 예약했고 엄마는 20년 만에 가는 해외여행이었기 때문에 말씀드리면 분명히 좋아하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반응은 무덤덤했다. 그래? 언제? 알았어. 당시에는 서운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엄마와 나 둘 다 기쁘다, 행복하다, 마음에 든다, 좋다 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게 서툴러서 그랬던 던 거지 내심 좋아하셨던 것 같다.
여행에 어떻게 진심으로 쿨할 수가 있을 까.
여행 가는 것쯤은 큰 의미가 없을 만큼 금전,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이 아니고서야(물론 그분들도 설렘을 느낄 수도 있지만) 여행이라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곳에 무엇을 기대하며 가던 설렘은 있을 것이다. 아직 나는 설렘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쿨 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여행 전을 설렘과 쿨함 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