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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Sep 28. 2019

장점을 살려주는 상담가가 된 엄마

사람여행

   글쎄 돌아보니 남편을 죽자고 좋아했던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결혼을 했을까? 하하. 우리 때는 그냥 그랬던 거 같아. 다 누구나 때 되면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자식 낳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로만 알았던 거지 뭐. 치열하게 고민하지도 않았는데 감사하게도 정말 편안하고 무난하게 잘 살아온 거 같아.      


   엄마의 역할로 가장 중요한 게 뭐가 있을까? 생명에 대한 책임이겠지 아마? 처음에는 결혼을 했어도 일을 놓지 않았어. 리포터도 하고 이것저것 하면서 아둥바둥 했었지. 일이란 어찌 보면 나의 정체성을 느끼게 해주는 거잖아. 사회와 연결되는 끈이기도 하고. 그런데 남편 직업 때문에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둘째까지 낳게 되니 나도 더 이상은 어쩔 도리가 없더구나. 그냥 엄마 노릇에나 전념하자 싶었지. 그랬어도 세상에 완벽한 엄마가 어디 있겠어. 늘 자괴감이 생기곤 했어. 그러다 보니 마음 한 구석이 늘 허전했지.     


   생활에 활기를 채우고 싶어서 꾸준히 뭔가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어. 요가, 퀼트, 골프 등등 말이야. 그런데 뭘 해봐도 이게 다 몇 년 만에 유야무야 시들해지는 거라. 난 왜 이렇게도 잘하는 게 없을까 싶어서 오히려 자신에게 불만이 생기더라. 일찍 결혼을 했기에 아이들도 빨리 컸지. 그러다 작은 아이가 외국으로 유학을 가버리고 나니 내 나이 마흔넷에 벌써 빈 둥지가 되어버렸지. 마음을 영 붙일 데가 없더라고. 그냥 나도 모르게 저절로 아무 때나 눈물이 흐르더라.      


   이런 게 우울증인가 싶어 어디 가서 정말 상담이라도 받고 싶었어. 하지만 어디 그런 델 선뜻 찾아가기 쉬웠겠니? 대신 카운슬링 과정에 등록을 했어. 상담을 받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공부를 시작한 거지. 그렇게 이 길로 들어선 지 이제 10년이네. 나에게 적성이 안 맞았으면 아마 그 십 년은 어려웠겠지? 처음부터 이제 뭐가 됐든 10년은 해보자고 결심을 했기도 했지만, 상담 공부를 시작한 건 정말 잘한 결정 같아.       


   처음엔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너무 알고 싶었던 거 같아. 배우면서 점차 자기 이해가 되더라. 이젠 그런 부분을 많이 해소하고 나처럼 답답했던 그 누군가를 위해 사회적 엄마 노릇을 하고 있어. 그 사람이 얼마나 답답하고 간절하면 나한테까지 찾아왔겠냐고. 누구에게도 위로와 공감을 못 받은 답답함이 있으니 상담실 문까지 두드린 거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혼자 고민을 많이 했겠어.     


   엄마의 경력에서 내가 배웠던 건, 사람에게 문제를 캐내고 그걸 고치려고 한다고 해서 변화되고 발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득한 걸 거야. 나는 상담을 하면서도 내담자가 가진 문제에 집중하기보다는 그에게 숨겨져 있는 장점을 발견하여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이끌어. 경험적으로 그런 게 훨씬 더 효과가 있다는 걸 알거든. 그런 걸 평생 아이 키우며 우리가 했었던 거잖아. 어떻게 잘 자라게 할까 늘 고민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그렇게 나에게 찾아와서 조금씩 변화되는 내담자를 보면 뿌듯해. 나 또한 그러면서 같이 성장하게 되지. 세상 보는 눈도 넓어지고. 옛날엔 나부터 나의 모자란 점을 생각하고 거기에만 집착했는데 이젠 저절로 나에게 너그러워지더구나. 돌아보니 참 감사한 삶이었구나 싶어서 겸손해기도 하구.           


   이전에는 뭔지 모르게 나에 대해서나 세상에 대해서 불만이 있었는데 내 일을 가지면서부터 세상과 나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 것 같아남편과도 예전보다 대화의 반경이 훨씬 넓어진 거 같고일과 삶이 점차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중이지지금 다른 분들과 함께 하는 상담연구소에서도 선배로서 해낼 몫이 있으면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굳이 앞장서서 주도하겠다는 생각은 안 해그냥 나이와 상관없이 함께 동행하는 정도지이제 뭔가 좀 용을 쓰지 않고도 가볍게 걸어갈 수 있는 나만의 속도에 안착했다고나 할까.     


   젊은 엄마들에게 할 말? 내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냥 완벽한 엄마가 되기를 포기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그런 건 없거든. 차라리 엄마 자신도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고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게 더 좋겠지. 나는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는 것이 성공이라고 봐.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렇고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고. 아이 키우면서 동시에 자기의 잠재력도 조금씩 발현시키고 성장하는 시간으로 살면 좋겠지. 그런데 나부터 그때는 그냥 헤매고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던 거 같아.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고 어떤 과정 안에 있다고 믿고 그런 갈등의 시간도 유용하다 생각하면서 너그럽게 살면 좋을 것 같애. 




2019 서울시50플러스재단 당사자연구 <엄마경력을 살려 자기 일을 찾은 50+ 선배주부 성공사례> 보고서의 일부로, 50+선배주부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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