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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Aug 23. 2019

혼자 사는 아비의 넋두리

사람여행

"아휴~ 열심히들 싸우소. 난 이제 혼자 사는 노인네라 이렇게 아비랑 딸이 아웅다웅 하는 소리가 노래처럼 들린다오. 나는 가끔 딸이 집에 오면 갸가 날 갈구는 소리가 어찌도 살가운지 일부러 그 소리 듣고 싶어서 약을 막 올린다우."


그러면서 그는 초대받은 식탁에 앉아 눈치를 봤다. '내 얘기도 함 들어보실라우?'하는 기분으로 은근히 말자락을 깔면서. 식탁에서 술이 무르익자 자연스럽게 그의 말 차례가 되었다.
 



내가 지난 해 여름에 우리 딸과 터키를 다녀왔다우. 아시잖소? 걔 중학교 때 우리 마누라 죽은 거. 그게 내내 미안하고 안쓰러워 내 딴엔 마음이 많이 쓰렸다우. 큰 맘 먹고 계획을 다 짰다우. 그 녀석 결혼하기 전에 이 애비가 여행 한 번 같이 하고 싶어서. 


미국서 공부하고 있는 놈을 터키에서 만나자고 불러냈다우. 내 딴에는 없는 돈에 얼마나 큰 결심을 한 거겠수? 터키로 가는 비행기표도 사고 5성 호텔도 미리 예약했지요. 늙은 애비랑 단둘이 하는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몰라서 내 딴엔 큰 돈을 썼어요. 


아, 근데 이 녀석이 터키 공항에서 상봉을 하고 보니 그리 밝은 얼굴이 아니더라구! 도착하자마자 차를 하나 렌트하재. 어이쿠, 이거 큰일이 났다 싶었어요. 하루 300불 정도 쓰려고 했는데 자동차 렌트비만 하루 200불이 넘었거든. 갖은 엄살을 떨면서 그것만은 겨우겨우 뜯어 말렸다우.


그 이후에도 말 마소! 그 녀석은 정말 자기 멋대로 하고 싶어 하더이다. 내 심중은 아랑곳도 안하고. 계속 핸드폰으로 남하고만 얘기를 나누더라고! 그게 얼마나 섭섭하던지 말유. 내 딴에는 큰 돈을 들여 저하고 여행 한 번 같이 오려고 얼마나 애를 쓴 건지 그 애는 정말 모르더라구!


하도 제멋대로 하고싶다는 게 많기에 묘수를 냈지 뭐유? 있는 돈을 홀까닥 뒤집어 걔에게 다 줬어요. '애비 돈은 이게 다다. 너에게 줄테니 네가 맡아서 여행 경비로 써봐라.' 하고. 그러고 나니 겨우 알뜰해지더라구.


그러고 난 다음에도 내가 얼마나 욕을 먹은 줄 아슈? 내내 불평을 하며 다니더이다. 자기는 5성호텔 하나 안 부럽다구. 왜 의논도 안하고 이런 델 덜컥 잡아서 여행 경비를 쪼들리게 했냐구. 걘 함께 하는 여행을 계획하면서 정작 자기와는 하나도 의논을 안 한 게 화가 났대유. 미리 물어봤다면 얼마든지 같은 돈으로 서로가 원하는 걸 잘 즐길 수 있는데 떡하니 시내에다 값비싼 호텔부터 잡아놓고 고마운 줄 알라는 태도가 더 괴로웠대유.


요샌 세상이 그렇게 변했드라고. 내 맘대루 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나? 나참!  그게 정말 힘들더만유. 섭섭하기도 하고. 그래두  워쩌겠어유.  요즘은 그런가비쥬. 나 올 여름에 딸이랑 그렇게 여행 한 번 갔다와서 깨달은 거 진짜 많았수! 갸들은 우리랑 너무 생각이 멀어. 내 심정을 너어무 몰라줘!


그래도 딸내미와 투닥거렸던 그 여행이 벌써 그립네요. 이 집처럼 모여앉아 아웅다웅 해가며 밥 먹는 모습이 얼마나 좋을 때인지 모르죠? 그거 다 지나고 나니 너무 허전합니다요. 요새 나는 가족끼리 싸우는 소리가 젤로 부럽습디다. 홀짝(소주 마시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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